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아직은 꽃이고 싶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깊은 밤 빗소리에 흐느끼는 가슴으로 살고싶다.
귀뚜라미 찾아오는 밤이면
한 권의 시집을 들고 촉촉한 그리움에 젖어
가끔은 잊어진 사람을 기억해 내는
아름다운 여인이고 싶다.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저무는 중년을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여인이라고 불러다오.
가끔은 소주 한 잔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이지만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거리는
가슴에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고 싶다.
아직은 부드러운 남자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나이.
세월의 강을 소리없이 건너고 있지만
꽃잎 같은 입술을 달싹이며
사루비아 향기가 쏟아지는 나이.
이제는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사랑하고 싶은 여인이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
관허스님
이웃아낙이 전화기 너머로 이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하네요.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그때 그시절의 그마음이니.
아줌마라고 불리우든
아무게 안사람으로 불리우든
누구 엄마라고 불리우든
뭐 저는 그저 그렇습니다.
아줌마이고
누구의 안사람이고
누구 누구의 엄마이니까요.
무어라 불리우는것이 우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무어라 불리우든 그냥 다 좋습니다.
아~ 울집 아들, 딸내미들이 " 엄마 "라고 부르는 소리가 제일 좋습니다.
아직도 친정아버지가 오십을 훌쩍 넘긴 딸내미에게 "에미야 " 라고 부르시는것보다
" 영숙아' 하시며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가 좋습니다.
옆지기가 어쩌다 " 여보 " 라고 부르는 소리보다
큰애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더 익숙하고 좋습니다.
어쩔 수 없는 ' 아줌마' 인가봅니다.
그래도 아줌마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지금 나이의 이모습이 좋습니다.
이 나이가 사루비아 향기가 쏟아지는 나이라고 하네요.
시큼한 김칫국물 냄새가 배어있는 나이면 어떻습니까.
집앞 할머니네 구멍가게에서 콩나물 떨이 해왔습니다.
이천원어치.
검정 봉다리에 꾹꾹 눌러 많이도 담아주셨습니다.
20년 단골 구멍가게 할머니는 여든이 넘으셨습니다.
이제 진열장에는 먼지만 뒤집어 쓴 유통기한 지난 물건들과
겨우 두부와 콩나물만 팔고 계십니다.
두부와 콩나물은
꼭 할머니네 구멍가게에서 삽니다.
콩나물을 다듬어 씻고
데쳐
입맛에 맞게 콩나물 밥도 해먹고
김치콩나물 죽도 끓여 먹었습니다.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데친 콩나물 얹고
먹다남은 훈제호리와 편마늘 볶아 고명으로 올려
양념장에 비벼 먹었습니다.
잘익은 배추김치도 적당한 굵기로 채 썰어 들기름에 볶아
김가루와 함께 고명으로 올려 양념장에 비벼 먹기도 하구요.
느타리버섯 양념하여 볶아 고명으로 올려 양념장에 비벼 먹기도 하구요.
대파, 양파, 청홍고추 송송 다져 넣고
들참기름, 깨소금,진간장,고추가루,후추
그리고
미나리도 있기에 송송 썰어 넣었더니
달래를 넣은 양념장만큼이나 상큼합니다.
시원하고 아삭한 동치미와
새우젓으로 간을 한 부들부들한 달걀찜과 같이~
새콤하게 잘익은 배추김치 적당한 굵기로 채 썰어 들기름에 볶다가
멸치,다시마 우린 육수를 붓고
찬밥을 넣어 푹 퍼지게 끓이다가
잘게 썬 황태와 콩나물을 넣고 한소큼 끓이고 다진마늘, 파를 넣고
김치국물과 액젓으로 간을 하여
칼칼하고 아삭한 맛의 김치콩나물 죽을 끓였습니다.
남은 콩나물은 무쳐도 먹고
볶아 먹고
국도 끓여 먹고
콩나물 국밥도 해먹고.
있으면 있는거 가지고
지지고 볶아 먹고 끓여 먹고.
동장군의 기세가 아주 당당합니다.
춥습니다.
시골아낙의 부뚜막에서
되는대로 해먹은
콩나물 밥과 김치콩나물 죽입니다.
그렇고 그런 특별한거없는 촌스러운 소소한 밥상이지만
든든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더이다.
따끈한 김치콩나물 죽은
속도 뜨끈하게 해주는거 같아
그제, 어제, 오늘처럼
추운날에는 그런대로 먹을만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