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바람이 불어,션한 바람이...."
시원한 바람이 부니 슬슬 여름내 외면했던 뚝배기에도 눈길이 가더군요.
(한여름엔 뚝배기 뵈기도 싫더니 말이죠.-.-")
"어디 오늘 오래오래 불질 좀 해볼까?"
여름내 더운 게 무서워서(?) 잠깐씩 해 먹는 것도 "나는 주방 모르쇠" 모드로 꿋꿋하게 버텼었는데
어제는 시원한 바람이 부니 요리도 하고 싶고 갈비찜도 먹고 싶어서 갈비찜을 했지요.
"야...갈비찜이닷!!"
갈비 1.5K을 샀는데...?
너무 많은 거 같더라구요.
슬슬 여기서 들기 시작하는 불길한 예감
많아서 못 먹은 적 없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양이 많다."
왜 갑자기 많다는 느낌이 오는거지...?
.
.
.
기름기 떼고 저미고 씻어서 갈비 손질해 놓고..
좀 더 맛있게 해 먹겠다는 생각에 시판용 갈비찜 양념에 이것저것 더 넣고
갈비찜 양념을 했지요.
(제가 요즘 달라진 것 중에 하나가 예전에 안 사 먹던 걸 요즘엔 사다가 먹어 본다는 겁니다.
한 여름엔 육수 들어있는 냉면,그리고 병에 들은 양념류들.....)
간 보느라 찍어 먹어보니 너무 달더라구요.
맛있는 단맛이 아니라서 고춧가루 넣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결국 고춧가루를 넣게 됐지요.
고춧가루만 넣지 않았어도 덜 탔을텐데....
순순히 갈비찜 밥상이 내게 올 줄 알았지요.
순순히...
하지만 순,순,히 오지 않는 갈비찜..
30분 정도만 재워놨다가 찜을 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니 느긋하게 올려 놓고 다른 집안일을 좀 하다가 시간도 있고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메일을 썼어요.
갑자,을자,미자,떡자,순자,말자,가자,나자,다자,라자....등등의 친구와 지인에게 안부 메일을 오래오래 썼지요.
한참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짜장소스 볶는 냄새"가 나는거예요.
"아무개네 집에서 짜장해서 먹나보다."
"허긴 오늘 날씨는 지지고 볶아도 덜 더운 날씨이긴 하지..유후..."
내 집, 가스불 위에 갈비가 얹어져 있다는 거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한참 정체불명(?)의 짜장소스 냄새를 맡으며 메일을 다 보내고 아무 생각없이
부엌쪽에 눈을 돌리려는 순간 머리 쭈뼛...
"왜 불길한 예감은 적중할까?"
가스 불 위에서 폭발할 것 처럼 끓고 있는 오늘 저녁 메뉴였던 갈비찜...
벌떡 일어나 뛰어가 불을 끄고 뚜껑을 열으니...?
요만큼 탔냐고요....?
그럴리가요
작은 뚝배기에 요 만큼 건지고 끝...
1.5k 했잖아요....혼자 먹을려고 1.5K...
"이 정도는 태워야 잘 태웠단 소리 듣지 않겠어요?"
갈비찜이라 국물도 넉넉히 넣었는데 그게 졸고 졸아서 이렇게 새까맣게 탈 정도면
얼마나 오래오래 끓었단 말인지..-.-
평상시 유난스럽다 싶게 남들 다 알아채지 못하는 그 미묘한 냄새까지 맡아내는 제가
어찌 갈비가 이렇게까지 탔는데도 남의 집 짜장소스 만드는 냄새라고 알고 있었을까요?
참...희한하네요...참으로...
한 번 잘 먹어보겠다고, 한 번 제대로 먹어보겠다고 만든 갈비찜!!
탄내가 다 먹을 때까지 솔솔...
아무리 메일에 집중을 했다고 해도 꼬딱지만한 집에서 어찌 몰랐을까?
전에 건망증과 치매에 관련한 프로에 나왔던 얘긴데 참 남일같지 않고 저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시원한 가을 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지네요.
본인의 건망증에 대한 얘기를 각자 하시던데 이 얘기가 최고였어요.
엄마가 딸 결혼식 날 올림머리를 하러 미장원엘 갔데요.
갔는데 미용사가 "사모님 머리 하실 때 되셨네요."라고 말을 하니
"그런가? "그럼 파마 말아 주세요."했더랍니다.
딸 결혼식에 올림머리 하러 갔다가 머리 할 때 됐다고 하니 미장원엘 왜 왔는지 잊었던 거죠.
커피,잡지책 보면서 파마 잘 나오길 기다리셨겠지요?
딸은 엄마찾아 삼만리....아찔..
평상시 꽤나 총기가 있어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 홍길동 같은 사람은 분명 아닌데..
제가 남들보다 유독 미묘한 냄새까지 잘 알아내는데 어찌해 갈비가 저토록 타고 있는데도 누구네 짜장 해 먹는다고만 생각을 했을까요?
건망증이라고 믿고 싶은데 이게 혹 치매로 가는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