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오늘 제 행적에 대한 글을 읽으시면서, 혹시라도 저에 대해서 오해를 하실까봐, 미리 당부드립니다.
저..그렇게 착한 사람 아닙니다, 저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는 효부가 못됩니다.
'시금치는 어디까지나 시금치!', 제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우리 집도 다른 집 만큼 고부 갈등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부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해야할 도리는 다 하고 싶고,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공평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제가 친정어머니께 쓰는 마음에 비해서 시어머니께 쓰는 마음은 아주 인색합니다.
그러니까...혹시라도 저더러 효부 운운하는 댓글은 달지말아주시어요.
저, 아주 찔립니다. 저, 양심의 가책 받지 않게 해주시어요.

며칠전, 비록 김장 준비때문이기는 했지만, 친정어머니와 강화장이며 외포리, 대명항을 휘둘러 왔습니다.
단풍구경을 작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단풍구경을 잘 한지라,
시어머니도 단풍구경시켜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주중에 2교 교정지가 나온다고 하고, 또 이런 저런 일이 있어, 월요일밖에는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아,
지난주부터 오늘, 시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가야지 하고 마음 먹었더랬습니다.
어딜갈까? 파로호 주변을 드라이브할까? 아예 한계령쯤 가볼까? 아님 서해안쪽의 남당리, 뭐 그런곳엘 가볼까?
궁리만 많다가, 남이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단풍도 있을테고,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그러다가 문득, 그럴 것이 아니라,
지금쯤 어디를 가도 단풍은 있을테니까, 그 어디든 어머니가 가고 싶은 곳을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어머니, 바람 쏘여드리려고 하는데 가시고 싶은 곳 있으세요?"했더니,
"나야, 뭐...."하고 말끝을 흐리시던 분이,
"어디 성지라도 가실래요?"하니까, 1초도 안걸려서,
"나, 100년 동안 교회짓는다는.."하시는 거에요.
"천진암이요? 가세요, 천진암..."
천진암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이천에 출장 다니면서 천진암으로 나가는 인터체인지는 본 적이 있거든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위치와 전화번호 챙기고,
매일 12시에 미사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었습니다.
천진암으로 향하는데 어머니께서 어찌나 좋아하시는지...왜 진작 못 모시고 나왔나 싶더라구요.
사실 전 ,그곳이 저처럼 신자가 아닌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한 성지이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당연히 다녀오셨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는데, 성당에서 천진암을 갈때마다 무슨 일이 생기곤 해서 못가셨다는 거에요.

집에서 9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천진암에 도착해보니10시반도 채 안된 거에요.
미사 시간이 아직 멀어서, 이제 겨우 초석 몇개 놓여있는 천진암성당 자리를 둘러보고,
산길을 올라서, 우리나라에 가톨릭을 뿌리 내린 다섯분의 성현을 모신 묘소에 올라갔어요.
낙엽을 밟으면서 올라가는데 제법 운치가 있었답니다.
왕복 1㎞의 짧은 코스지만 아흔의 우리 어머니가 다니시기에는 다소 힘든 코스였지만,
거뜬히 다녀오셨지요.
내려오니, 11시45분.
어머니는 미사보러 성당으로 가시고, 우리 부부는 근처 찻집으로 차 마시러 갔습니다.

천진암 바로 앞에 천년찻집이라는 전통 찻집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양평에도 같은 집이 있는데 집 자체는 천진암에 있는 것이 더 예쁜 것 같았어요.
천년찻집은 예쁜 마당과 운치 있는 한옥에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진 찻집이었는데,
특이한 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한다는 거.
들어가보니, 바닥이 따끈따끈했습니다. 역시 한국사람은 따끈한 바닥에 지지는 게 최고라는 거.

테이블엔 이런 장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마에서는 물이 떨어지도록 해 더욱 분위기를 살렸고,
실내에도 작은 실내분수를 두어서 물소리를 즐기도록 했더라구요.

저는 대추차, kimys는 복분자차를 마셨습니다.
복분자차맛은 어땠는 지 모르겠는데,
대추차는 제가 집에서 대추를 푹 달여서 체에 걸러 만드는 딱 그 대추차 맛이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만드는 대추차, 재료도 많이 들고, 공도 많이 드는 거, 너무나 잘 알거든요.
차 한잔 마시고 다시 천진암으로 올라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건축성금도 살짝 내는 센스...
집에서 천진암 위치를 적은 메모와 붕어찜 골목 위치를 적은 메모를 가지고 왔는데,
보니까 두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그래서 붕어찜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가본 붕어찜 골목, 소문대로 붕어찜집이 길가에 쫙 있는데,
우리는 성수어부네집이라는 곳엘 들어갔어요. 어부네 집이라는 데 혹한거죠.
가보니까 붕어찜의 가격대가 여럿이라서 뭘 먹어야할지 몰라 하니까,
주문 받으시는 분이 붕어 두마리값(4만원)만 받고 세마리로 찜을 해주겠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더니, 아주 큼직한 붕어로 찜을 해다주네요.

이런 붕어를 한마리씩 먹었습니다.
밥은 한공기 다 먹지도 못했는데, 어찌나 배가 부르던지, 영 꺼지지를 않는 거에요.
붕어찜을 먹고 나서, 팔당호를 끼고 동쪽으로 양평쪽을 향해 갔습니다.
저는 그 길을 처음 가봤는데, 정말 경치가 아름다웠습니다.
가는 도중, 벌이 수정한다는 수정벌 찰토마토도 5㎏ 한상자에 1만3천원 주고 사고,
직접 수확한 배를 판다는 할머니에게 배 2만원어치도 샀어요.
아기 머리만한 배 다섯개에 1만원이라는데 덤을 2개 더 주네요.
호수를 따라 계속 드라이브하다가 양근대교가 나오길래, 그 다리를 건너서,
이번에는 서쪽, 양수리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온 김에 두물머리 구경 시켜드리려고요.
두물머리에 갔더니, 그 장관인 연꽃은 마른 가지뿐이지만, 가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곳에서 우리도 잠시 가을을 즐기다가, 왔습니다.
연꽃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좀 섭섭해서. 내년 여름에 연꽃구경 꼭 시켜드리겠다고 약속도 했지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곧장 오지 않고, 성남 사는 둘째시누이네 갔었어요.
시누이내외가 분당의 근사한 중국집에서 코스 요리 사줘서 잘 먹고 돌아왔습니다.
시어머니 덕에 멋진 길로 드라이브를 잘했는데,
어머니께서 "고맙다" "너무 잘 다녀왔다" "천진암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니가 신자가 아니라서 가자소리도 못했다" "정말 좋다" 연신 이러셔서...오히려 제가 쑥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보너스샷!
두물머리에서 찍은 저와 우리 시어머니이십니다.
저 살 너무 쪘죠? 무지하게 뚱뚱하죠?
kimys 말에 의하면, 제가 어머니의 딱 두배랍니다...ㅠㅠ...
마지막 사진은 딱 1시간만 놔뒀다가 삭제하려고 했는데..kimys가 그냥 두라네요.
그냥 둬도 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