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는데 마른장마인지 긴 비는 아직 없다 .
감자와 부침개와 국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
더우면 더워서 , 비오면 비와서 , 습하면 습해서 궁금해지는 음식들이다 .
대량으로 넘쳐나는 푸성귀로 만든 부침개 밥상이다 .
상추와 곰보배추와 깻잎
묽은 반죽을 적당히 입혀 한두 장씩 부쳐냈다 .
부추와 미나리 따위를 적당히 잘라 반죽을 하고 크게 한 장 부쳐도 내고 .
퇴근이 늦었던 날, K가 먹고 남긴듯, 냉동고에 굴러다니던 닭죽과 김치부침대 2장.
갑자기 덩치가 커진 호박 예닐곱 개를 따왔다 .
마땅히 먹어치울 방법이 없기에 역시 호박부침개
나머지 모두 잘라 건조기로 말렸다 .
찬바람 불면 불려서 역시 부침개도 해먹고 나물로도 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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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금 이야기
사춘기 아이와의 거리두기 , 지켜보기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던 술자리 .
내년 초 쯤 , ‘ 결혼할 예정이다 .’ 는 녀석에게 화제가 몰렸다 .
‘ 거 웬만하면 그냥 연애나 하지 ? 그거 진짜 철없는 짓이다 .’ ‘ 그래도 해볼 만은 해 ! 안하고 살면 늘 뭐 빠진 것 같거든 , 내가 왜 이러고 살지 ? 하면서 .’ ‘ 왜들 이래 ? 자라나는 새싹한테 , 야 해 ! 일단 해 , 괜찮아 !’ ‘ 근데 애는 낳으려면 빨리 낳고 얼른 묶어라 ! 장화 믿지 말고 . 나 봐라 ? 막내 이제 초딩이다 . 초딩 !’ ‘ 왜 늦둥이 키우려니 걱정 되냐 ? 언젠 애 때문에 좋아 죽더니 !’ 하는 야단법석 속에 .
“ 좋기야 . 좋지 ! 하지만 애 군대 갔다 오면 난 칠십이잖아 . 책임은 져야지 !” 하는 늦둥이 아빠의 푸념이 날카롭게 꽂혔다 .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 다시 막걸리 잔이 오간 후 , “ 근데 왜 낳았다고 책임져야 하는 거야 ? 어디까지 ? 먹이고 입혀 , 학교도 보내 , 이거면 된 거 아냐 ?” “ 충분하지 , 잰 학교를 못 마치잖냐 ? 막내 너도 부모한테 더 바라냐 ?” 는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
“ 저야 부모님한테 감사하죠 . 근데 결혼 얘기 나오니 , 은근히 뭐 좀 안 해주시나 ? 이런 생각은 들어요 .”
“ 도둑 놈 ! 너 그거 아냐 ! 부모가 널 낳은 게 아니라 . 네가 왔다는 걸 .” 하는 말에 “ 무슨 말이야 ? 우리가 해서 낳은 거지 , 그래서 책임지는 거 아냐 ?” 하는 물음이 나왔고 .
“ 그러니까 하긴 부모가 하지 . 하지만 그땐 완전하지 않았거든 . 반쪽이었잖아 . 근데 그 반쪽이 죽기 살기로 깝쳤잖아 . 지 반쪽 찾아서 . 그렇게 수억대 일의 경쟁을 뚫고 반쪽을 찾았는데 그 반쪽도 반겨주네 . 그래서 내가 나왔거든 . 그러면 부모가 선택한 거야 ? 아니면 내가 애쓰고 선택한 거야 ? 사실 부모는 서로 사랑했을 뿐이야 . 나머지 선택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는 거 ”
“ 하튼 저 새끼 구라는 ”
“ 이건 구라가 아니고 과학이다 . 그냥 버려진 단백질일거냐 생명체가 될 거냐 , 선택에 관한 …… .”
이어서 윤회에 관한 티벳불교 얘기도 나오고 ‘ 입덧에 대한 고찰 ’ 도 있고 자신의 유전정보를 오랜 기간 유지하기 위한 거라는 얘기들이 한마디씩 돌고난 후 , 결론은 ‘ 부모 계실 때 잘 하란 얘기와 너도 사랑한 죄가 있으니 늦둥이 둔 놈은 일찍 들어가라 ’ 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 늦둥이 갖다 주라며 유기농밀가루로 만들었다는 과자 한 상자 들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