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다니시는 직업을 가지신 터라,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오실 때마다, 엄마는 식혜를 만들곤 하세요.
재작년에 아빠 엄마가 제가 사는 곳에 다녀가셨을 때에는 하루도 식혜가 떨어지는 날이 없도록 일주일에 한 두번 씩 식혜를 만들기도 했지요.
부모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에 "이제 식혜는 안만들어도 되겠다!" 했더니, 코난군 아범이 조심스럽게 하는 말...
"나도 식혜 많이 좋아해..."
코난군도 밥대신 식혜 건더기를 먹을 정도로 잘 먹기도 하고...
그래서 식혜는 제가 자주 만드는 음식 중에 하나가 되었답니다.
작년이었던가...?
남편 친구분 한 분이 제가 만든 식혜를 "여적 먹어본 중에 최고로 맛있는 식혜" 라고 칭찬을 해주시기도 했지요 (우쭐~)
하긴, 한국에선 캔음료로 식혜를 사먹을 수도 있고, 음식점에서 후식으로 종종 나오기도 하니까...
일하는 부인을 둔 40대 남자가 집에서 만든 식혜를 먹을 일이 흔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니까, 제 솜씨가 좋았다기 보다는, 집에서 만든 것이라 그 맛이 진하고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알고보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식혜만들기, 지금부터 보여드릴께요.
보리싹을 낸 엿기름을 쓰면 더욱 좋겠지만, 그건 미국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구요, 저는 이렇게 가루를 낸 걸 써요.
티백도 써봤는데, 그건 맛이 아무래도 덜 하더군요.
엿기름 가루 두 컵에 물 4리터를 붓고 가루가 잘 풀리도록 거품기로 저어주었어요.
그리고 고두밥을 지었어요. 보통은 쌀 두 컵을 하는데, 코난군이 식혜건더기를 잘 먹기 때문에 오늘은 한 컵을 더 했어요.
밥이 다 되면 주걱으로 뒤섞어주고, 아주 뜨거운 김이 빠지도록 한 두 시간은 기다려 주어요.
밥이 다 되고, 한김이 식고나면, 아까 저어주었던 엿기름 물이 이렇게 앙금은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에 고이게 되지요.
물 위에 뜬 거품은 대충 걷어내고, 앙금이 떠오르지 않도록 조심조심 윗물만 밥솥에 따라주어요. 앙금이 딸려 들어가면 식혜 색깔이 시커멓게 되고 맛도 탁해지니까 "조심조심" 따르는 것이 중요해요.
다 따르고 남은 앙금은 이렇게 생겼어요.
버리기엔 웬지 아깝지만... 달리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그냥 버려요.
누구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좀 나눠주세요!
요렇게 밥솥에 윗물을 따른 다음엔 보온 상태에서 여덟 시간 정도 놔두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어요.
(밥솥 주변이 왜일케 지저분한겨... 울엄마가 보시면 한소리 하시겠네... 님들은 흉보지 말아주삼... 저는 날라리 주부니까요... 쿨럭...)
보통 네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지나면 밥알이 이렇게 떠오르고 식혜가 잘 삭아진 거예요.
제가 시간의 범위를 넓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어쩌다보면 삭히기를 끝내야 하는 시간이 애매할 때가 있거든요. 식혜 만들자고 새벽 2-3시에 일어날 수도 없고, 아니면 출근했다가 조퇴를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미리 시간을 대략 조절하시구요, 네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범위 안에만 들면, 맛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참고하시라구요.
서울식은 이 때 밥알을 건져내고 헹궈서 둔다는데, 저는 갱상도 출신 아지매 이므로 과정 스킵!
그냥 큰 솥에 붓고 설탕 두 컵 넣고 끓입니다.
이 때 물을 조금 더 추가해도 되구요, 설탕의 양은 그야말로 "당신이 원하는대로!" 입니다.
저희집 식구들의 입맛에는 식혜 4리터에 설탕 두 컵이 가장 잘 팔려요. 단 것 좋아하시는 저희 친정 아빠를 위해서는 세 컵, 건더기를 밥처럼 먹는 코난군을 위해서는 한 컵만 넣기도 하고... 그래요.
끓이면서 거품은 걷어내구요...
한 소끔 끓으면 다 된 거에요.
끓이는 이유가, 엿기름의 발효를 멈추기 위해서니까 너무 오래 끓일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약한 불에 뜸 들이듯이 조금 오래 놔두면 맛이 더 깊은 것 같다시며 그렇게 하세요.
(덜장금인 제 입맛에는 그거나 이거나 비슷한 듯...ㅋㅋㅋ)
끓여서 식힌 걸 김치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하니까, 살얼음도 살짝 끼고 아주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서 좋았어요.
냉면이나 아이스크림 처럼 찬 음식은 원래 추운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지요?
얼음 동동 식혜도 찬 겨울에 좋은 음료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