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님의 특강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제가 읽은 강신주 선생님의 책...철학대 철학,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장자&노자 도의 딴지걸기
이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노자&장자 도의 딴지걸기인데요. 이 책 덕분에 장자에 급 호감이 생기기도 해서 장자에 관한 책들을 도서관에 가면 기웃기웃거리게 되었어요.
또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 책은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아.. 시를 통해 이런 철학적 의미를 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통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철학적 사유를 하는 즐거움이 아주 신선하게 와닿은 그런 책이었거든요.
특히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와 사유의 의무를 강조한 아렌트를 대입시켜 이야기한 부분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거든요.
인간은 단지 근면한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음을....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했으나 너무나 평범하고 성실한 이웃집 아저씨였던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제시했던 그 사유의 의무를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얼마나 등한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각성해야겠다고 하면서 공감했었어요.
때론 머리가 지끈거릴 수 있는 철학을 쉽게.. 친근하게..재미있게 알려주고 있기에
얼마나 재미있는 특강시간이 될까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같아요.
11시 잠이 덜 깬 모습으로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들어오셨는데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어요.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견뎌내는 것 아니냐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
좀 더 솔직하게..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시인 김수영씨와 길담서원의 소년 박성준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놓으며 제발 나이, 성별, 좋은 생각에 훌쩍 뛰어넘어 보자고..
인간이 원래 허접한 것이라고 폼재지 말고 허접함을 먼저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그러시더군요.
그러면서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를 꼭 한번 읽어보래요.
또 철학자 중에 제일 맘에 드는 두, 세 사람만 알면 되는 거라고..에베레스트 산 올라가 본 사람이 동네 동네 산마다 다 올라가 볼 필요는 없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신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렇게 두 시간을 가볍게 신변 잡담하듯 특강을 마치고.... 뒤풀이겸 해서 가볍게 청국장찌개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졌는데요. 어떻게 하다보니 강신주 선생님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하게 되었어요.
근데요... 점심을 먹으면서 같이 자리를 함께 한 일행이 강신주 선생님께 절... 요리로 철학하시는 분이에요.. 이렇게 소개하는 거에요. 좀 황송하기도 했지만 참 마음에 드는 멘트였어요...
정말 요리로 철학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음식, 요리 이야기도 잠시하고 늘상 제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떡 벌어진 한상차림도 이야기되었는데....
문득 강신주선생님.. 요리가 왜 좋으세요? 저... 글쎄요.. 전 요리하는 게 상대방이 있어서 좋아요..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먹을 상대방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역시 그렇죠...그러다 그럼... 혼자서도 그렇게 차려드세요? 하길래... 아주 가끔은 저만을 위해서도 잘 차려 먹을려고 하죠.. 그랬더니만 눈이 동그래지시면서 어머 정말요???? 상에...이렇게 잔뜩 차려놓고 혼자서 드신다 말이죠? 마침 옆에서 누군가가 거듭니다..프리님은 늘 그렇게 차려드신다니까요?? 호호호.. 웃고..그러구 말았어요.
집에 돌아와 어제 보낸 시간들을 떠올려보다가....
문득... 저만을 위해..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식사를 차린 기억이 한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해 30년을 꽉 채우고 사는 동안... 가족과 다른 이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지..떠올려가면 음식을 만든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저만을 위한 밥상을 생각해본 적도..준비한 적도 한번도 없더라구요.
왜 그랬지??? 그러다 오늘 낮에 혼자 있으면서 그래.. 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보자 작정했어요.
따로 장까지 보지 않더라고 있는 재료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머리속에 끄집어 내가면서 준비했어요.
우선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멸치다시마 국물을 냈는데요.
그리고 나서 건진 다시마로 조림을 했어요.
일단 멸치랑 같이 국물을 냈기 때문에 따로이 멸치를 넣지 않아도.... 멸치의 맛과 영양이 배어 있을 것란 가정하에 그냥 조립니다.
아주 단순하게.. 저의 엿장만을 넣어서요.
아무리 저만을 위한 밥상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의 밥상을 준비할 때보다는 준비, 요리하는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시키게 되더군요.
엿장이 좋은 것이.... 이렇게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서 조림장을 만들어 놓으면 음식만드는 공정을 몇단계를 생략하고 한번에 할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다시마(10센티 사방크키로 4장 정도의 양)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엿장을 적당히 (1.5~2큰술)넣고 살짝만 조려주면 되요.

요 정도로만 자작하게 국물이 남을 정도까지 조리면 됩니다... 이렇게 단순화해도 담백하면서도 맛있는 다시마 조림 충분하거든요.

저만의 밥상 만들면서 일일이 과정샷 찍기 번거로워서 생략했어요....
훨씬 일이 수월하네요.. 과정샷 안 찍으니까요. ㅎㅎ
앙징맞은 카라 그릇을 꺼내서 차렸어요.
제가 가진 유일한 물 건너온 그릇들인지라~~ ㅎㅎㅎㅎ

저만의 밥상 차리는 원칙
1.간단하고 단순하게 준비한다.
2. 좋아하는 재료. 메뉴위주로 차린다.
3. 그러면서 최대한 정성을 기울인다.

제가 좋아하는 재료들은 주로 바다에서 나는 것들과 채소들이죠.
새우, 게, 낙지, 전복 이딴 것들 무지 좋아해요.

큼직한 대하 6개, 7개쯤 튀겨서.....
칠리소스에 제가 좋아하는 양파, 빨간 파프리카, 오이, 마늘를 넣고 끓여서 약간 걸쭉하게 맛을 낸 다음에 위에 끼얹은 거에요.
이거 참 맛있어하는데..
중식당에 가서 먹자면 왕새우칸쇼새우 가격이....비싸잖아요..
그래서 제 메뉴로 만들어 먹으면서 저조차도 괜스레 고급스러워지는 듯~~~

새송이 버섯 노릇하게 구워서..... 엿장과 굴소스 약간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끼얹어 준 거구요.
이것 역시 제가 좋아하는 메뉴..
전 버섯 종류는 다 좋아요. 표고도 같이 할려다가... 너무 일이 많은 것 같아서 안 했어요.
제 몸 아껴주는 것 또한 절 위한 밥상 같기도 하고...
아무리 혼자만을 위한 밥상을 유일무이하게 차리는 것라고 해도... 먹을만큼 해야지..낭비하면 안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백김치도 새로 꺼내서 썰어 놓고..

데친 홍합도 참 좋아요..향긋하니.

낙지도 볶음보다는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법을 택하고요.

역시 좋아하는 총각김치도 새로 꺼냈지요.
먹던 것이 있기에 다른 때같으면 먹던 것 먹지만 새로 꺼내 썰어놓는 것만으로 저만의 밥상 기분이 나던걸요~

사실.... 이 밥상 먹을 때보다는...
이렇게 저만을 위한 밥상을 차린다는 기분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먹는 시간보다도 차리는 시간이 사실 더 즐거웠던 걸 보면 말이죠.

낮에 사진을 찍으니 자연광이라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네요.
아들 녀석이 저에게 그러죠..
오토로 놓고 찍는 거니깐.... 사실 DSRL의 의미는 없는 거래요. 그냥 똑딱이나 같은 거래요. 진짜 그럴까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힘들 때... 우울할 때..... 다른 이들의 위로도 필요하지만 정작 더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하고~
너 잘하고 있어...그래..힘내.. 잘 하고 있잖아..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져봐... 이런...

밥상의 힘...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그 어떤 때보다 정겹게 위로가 될 때도 있지요.
그래... 이 밥 먹고 힘내자.. 그래 또 살아보자.. 이렇게 묵묵히 살다보면.... 견디다보면... 되는 거겠지...

사실 다른 때같으면 다른 식구들에게 건네느라 제 차지가 안 될 게딱지도 용감하게 하나 쪄서 올리고...
정말 맛있었어요...

어제 강신주 선생님은 그러셨어요.
사실 위대한 사람들은 스스로가 허접하다는 걸 아는데...
허접한 사람들은 거꾸로 스스로를 무척 대단하게 여기면서 산다고......
뭐 하지만 어때요?
아무리 허접할지라도 스스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이겨내자면 그런 자만심쯤 가져도 되는 것 아닐까 싶은~~배짱^^

산다는 건 분명... 참 힘든 일이에요..누구나 할 것 없이~~~
나만 힘든 것 같고 다른 이는 모두 멀쩡해보여도..사실 심내를 들여다보면 오십보 백보 아닐까요?
그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에.... 견뎌내면서 배우고.. 타인에 대한 이해심도 키워지고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신주 선생님이 어제 이야기하듯... 서로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나누며..소통하면서....
함께 격려하고....
삶을 조금은 더 수월하게 견뎌나갈 수도 있는 거겠지요.

그러자면.... 좀 더 내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육박해가면서 성찰해나가야 하겠지요~

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자 작정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지.... 내가 뭘 잘 먹지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서 조금은 낯설기도 했어요.
그런 것 같아요.
다른 가족들의 입맛을 훤하게 꿰뚫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무심한 것이 아닌지...

하지만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고...
내가 누구인지...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닐지

오늘 밥상을 차리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냥 귀찮게 대충 먹지...뭘 혼자 잘 먹겠다고 차리누... 싶은 생각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었던 저만의 밥상 차리기가 아니었을까 반문해 보게 되네요.

따뜻하고 영양가도 있는 콩찰밥같은 삶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도 파릇파릇함을 늘 유지해서.. 유연한 생각으로 열려 있었으면 좋겠고요.

부러 꾸미지 않아도 담백솔직한 다시마조림같은 일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살짝 반성을 합니다..
저 혼자 이렇게 잘 차려 먹고 아침에.... 어머니랑 아이들에게.... 간편하게 떡국과 김밥을 차려주었음에~~~


그래도 오늘 아침에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창작품 김밥도 개발해서 선보였잖아 위안삼아보기도 하고..




그래도 30년만의 한번 차린 밥상이니 용서가 되겠지요???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