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키친토크 게시판에서 부지런하신 선배님들로부터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세상에는 저같이 가급적이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면서 밥상을 준비하고픈 주부들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침부터 각종 제철 음식을 정성껏 조리해서 가족들에게 먹이고싶은 욕심은 간절하지만, 눈뜨자마자 출근준비, 아이들 등교준비, 남편 출근준비를 하면서 아침밥 준비까지 해야하고, 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녁밥을 차리느라, 화장실 느긋하게 한 번 갈 시간이 모자라고, 자려고 누우면 온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지는 맞벌이 주부님들!
그런 분들께 부족하지만 저만의 "요령" 혹은 "잔꾀" 를 나눠드리고 싶어서 오늘 글을 시작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저녁을 무엇을 해멕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네살박이 아들아이는 국수를 좋아해서 어제와 그제 메밀국수를 해주었는데, 양심이 있지, 오늘도 같은 것을 먹이면 안되겠지요? 그렇다면 멸치국물에 소면을 말아주어야겠군요.
남편은 혈압이 높은 편이라 육류보다 채소를 많이 먹도록 하고 있지만, 오늘쯤엔 고기 반찬을 한 번 먹어줄 때가 온 것 같아요.
집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일단 시간이 걸리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멸치, 새우, 다시마 육수를 준비합니다. 이왕에 하는 거, 많이 만들어서 냉장고에 두었다가, 내일 음식 준비에 활용할 수 있게 물을 2리터 받아서 끓입니다.
남편의 고기반찬으로 예전에 빚어서 얼려둔 햄버그 스테이크가 당첨되었습니다.
다진 쇠고기에 두유만들고 남은 비지 (두부 대신), 다진 당근과 양파, 마늘, 후추, 설탕, 간장이 들어간 것입니다.
일단 조금 녹아야하니 냉동실에서 꺼냈습니다.
햄버그 스테이크에 어울릴만한 채소반찬으로 감자샐러드를 만들기로 합니다. 감자를 깎아서 잘라서 삶으면 금방 익어요.
보라돌이맘님의 주특기인 밥솥에 찌기 권법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왜냐하면 보온밥솥에 어제 지은 밥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날라리~~)
참, 저 감자를 깎을 땐 쓰레기통 위에서 쓱쓱 깎으면 껍데기를 따로 모아서 버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요. 토막으로 자를 때는 도마를 쓰지 않고 손아귀 안에서 적절하게 칼집을 내고 자르면 도마 설겆이가 한 번 줄어들지요. 다만, 초보님들은 손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감자 샐러드에 들어가는 채소는 싱싱한 걸로다가 구입해서 씻고 다듬어서 준비를 하는 것이 정석입니다만... 어게인... 지금은 시간과의 전쟁 중이라...
냉동봉지채소를 쓰기로 합니다. 이것도 냉동실에 있던 거라 감자를 삶을 동안 꺼내 놓으면, 있다가 샐러드 버무릴 때 쯤에 알맞게 녹아 있게 됩니다.
지난 번에 카나페를 만들고 남은 쏘세지도 보이네요. 감자 샐러드에 넣어보려구요.
맞벌이 주부님들은 냉장고 청소 정리하는 것도 큰맘먹고 해야하는 일이지요? 조금씩 남은 음식 재료들을 활용할 궁리를 자꾸 하다보면, 냉장고 구석에서 서서히 전사하는 전우를 미리 구할 수 있답니다 ^__^
자, 멸치 육수는 끓어 넘치지 않도록 약한 불로 맞춰 놓았고, 감자도 중간 불에 삶아지고 있고, 냉동 채소는 지가 알아서 녹고 있으니, 막간을 이용해 설겆이를 해야겠어요.
주로 점심에 싸간 도시락통이 설겆이 전투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에 아들이 먹었던 그릇과 제 도시락을 씻어야 하네요.
설겆이를 마치고 젓가락 한 짝을 겨누어 감자를 꾸욱 찔러봅니다.
"내 칼을, 아니 젓가락을 받아라, 이얍"
아직 조금 더 삶아야겠네요.
기다리는 동안 쏘세지를 썰어줍니다.
도마 설겆이 줄이려고 키친타올 한 장 깔고 과도로 썰었습니다.
저 키친타올은 조금 있다가 또 쓸 일이 있으니 아직 버리면 안되어요. 과도는 손에 묻은 쏘세지 기름도 씻을 겸, 수세미에 세제를 살짝 묻혀서 씻어두면 다음 전투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지요.
이제 감자가 다 익었나봅니다.
물을 따라내고 불위에 얹어서 뜸을 좀 들입니다.
감자 소대 후방에 햄버그 스테이크 소대가 다음 전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쿡탑은 동시에 네 개의 불을 쓸 수 있는 것이긴 한데, 이게 열을 제대로 내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고, 또 한 번 열받은 버너는 식는데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어요. 그리고 곰탕처럼 오래 불 위에 놔두는 음식이 아닌 바에야, 어차피 동시에 네 개의 불을 사용해서 조리를 하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지금 현재 오른쪽 앞에는 멸치육수가 끓고 있고, 왼쪽 앞에는 감자가 익고 있어요. 감자가 끝나면 뒤에 있는 후라이팬을 앞으로 보내서 스테이크를 익힐 예정입니다.
냉장고 안에 조만간 운명을 달리 하실 것 같은 재료들이 더 생각났어요. 토마토와 치즈를 아까 그 키친타올을 뒤집어 깔고 썰었어요. 이탈리아 요리에 보면 토마토와 치즈, 그리고 베이즐 (바실 이라고 하나요?) 잎을 함께 먹더군요. 베이즐은 없고, 대신에 파슬리 가루와 올리브 오일을 뿌렸는데, 음식 전투 중에 경황이 없어서 사진을 미리 찍어버렸어요.
삶은 감자는 그 냄비에 그대로 으깨어줍니다. 요럴 걸 대비해서 바닥이 평평하고 납작한 냄비를 골랐지요. 재료의 양과 냄비의 크기도 미리 계산해야 하구요.
후방에 있던 스테이크 소대가 전진배치 되어서 장렬히 익어가고 있어요.
알맞게 녹은 냉동 채소와 썰어둔 쏘세지를 넣고 마요네즈, 후추, 그리고 아들 녀석이 먹다가 남긴 건포도를 넣었습니다. 남편이 저염식을 해서 간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소금으로 간을 조금 하는 것이 맛에 도움이 되지요.
참, 스테이크 전투에서 기름이 자꾸 튀는데, 아까 쏘세지도 썰고 치즈도 썰었던 그 키친타올을 고이 덮어서 더이상의 청소꺼리 발생을 막아 주었습니다.
저~ 쪽엔 멸치육수가 땀을 흘리고 있네요.
감자 두 개를 썼더니, 남편 한 번 먹을 분량, 아들 한 번 먹을 분량, 그리고 작은 반찬 통에 하나 담을 만큼이 나왔네요. 저 남은 샐러드는 식빵 사이에 끼워서 내일 도시락으로 싸가면 좋겠어요.
저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저녁 식사를 아이가 먹고 남긴 것을 먹는 것으로 떼우고 있어요. 그래서 제 감자는 없어요... 흑흑...
요기까지 오는데 한 삼 십분이 채 안걸린 것 같아요.
그리고 설겆이 꺼리는 요만큼 나왔네요.
저 중에서 감자샐러드 냄비와 도마만 대충 씻어서 다음 전투를 준비합니다. 국수를 만들어야죠.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당근을 듬뿍 썰고, 양파도 조금 썰어둡니다.
당근과 양파를 썰기 전에 냄비에 물을 먼저 올려두면, 칼질이 끝날 무렵에 국수를 투척할 타이밍이 됩니다.
국수가 끓어오르면 찬물 한 컵 부어서 국수의 표면은 매끄럽고 속까지 잘 익게 하는 것, 모두들 아시죠?
요 냄비를 계속 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뚜껑에 구멍이 나있어서 국수를 헹궈 건지기가 편리해요.
국수를 삶았던 냄비니까, 세제없이 물로만 헹궈내고 이번엔 썰어둔 당근과 양파를 참기름 두르고 볶아줍니다.
다진 마늘과 후추를 조금 넣고 소금으로 간도 했어요.
그리고 옆에서 아직도 땀흘리고 있는 육수를 두 국자 떠넣고 조금 더 끓였어요.
시간이 허락했다면 국수장국에 호박도 넣고, 계란도 풀고 했을텐데... 아쉽게도 냉장고에 남은 호박이 없고, 계란도 오늘 저녁에 농장에서 계란이 오는 날이라 똑 떨어졌네요.
보통은 제가 퇴근하면서 유치원에서 아이를 픽업하는데, 오늘은 방학중에 하루 출근한 터라 집에 일찍 돌아왔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여유있게 저녁 준비를 - 그래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구요 - 해놓고,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매주 화요일엔 인근 농장에서 방목한 닭이 낳은 계란과 유기농으로 재배한 과일이 오는 날이라 그것도 픽업을 해야 했지요.
참, 남편님은 실컷 저녁준비를 했더니 테니스 시합이 있다며 나갔어요. 원래 매주 목요일 저녁에 리그가 있는데, 화요일 리그에서 누가 땜빵을 해달라고 갑자기 연락이 왔었대요.
아이를 데려와서 손만 씻기고 저녁을 먹였습니다.
오늘 받아온 블랙베리와 블루베리도 식판에 담았습니다.
과일을 후식으로 먹는 우리와 달리 미국인들은 주식으로 생각하고 먹더군요. 아들아이가 생후 4개월부터 유치원 종일반을 다녀서 미국 식습관에 익숙해져서인지, 밥 먹을 때 과일을 달라고 할 때가 많아요. 저야 좋죠... 과일은 그냥 씻어서 주면 되니까요 ^__^ (한 번 더 날라리~~)
아이를 씻기는 동안에 돌아온 남편이 알아서 저녁을 찾아 먹는 바람에 다 차려진 저녁상 사진이 없어요. 부지런한 남편이 이럴 땐 도움이 안되더라구요...
말로만 소개하는 오늘 저녁밥상은, 어제 한 밥, 오늘 새로 만든 햄버그 스테이크, 감자 샐러드, 토마토와 치즈, 그리고 지난 번 손님대접 하면서 만들어둔 연근조림과 깻잎 장아찌가 전부였습니다. 후다닥 전쟁치르듯이 정신없이 준비한 밥상치고는 나쁘지 않았지요?
오늘의 전투를 요약하자면,
1) 무슨 음식을 만들지 정해지면, 그 세부 과정을 생각하고 순서를 정하는 것이 시간절약의 지름길입니다.
2) 냉장고에 조금조금씩 남아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없거나 모자라는 재료는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장보기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3)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 장기보관이 가능한 음식을 반조리 상태로 만들어두면 좋습니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동안에 설겆이와 주방 정리를 마쳤습니다. 오늘 받아온 과일과 다 우려낸 멸치육수는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에 기념촬영을 함께 했어요. 육수가 있으니 내일은 여차하면 떡국을 끓여서 먹어도 되고, 시간이 더 나면 된장찌개나 다른 국물 요리를 해먹을 수 있겠네요. 아, 흐뭇해라...
참, 밥솥에 오래 머물던 남은 밥으로 내일 아침은 누룽지를 끓이려고 해요. 저희 남편은 아침에 아무 반찬도 없이 뜨끈한 누룽지 한 사발을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냄비에 밥을 납작하게 깔고 가열해서 노릇하게 눌려놓으면, 아침에 먼저 일어난 남편이 물을 붓고 끓여서 먹곤 해요.
맞벌이 남편인데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