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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어머니 손맛의 비밀

| 조회수 : 13,527 | 추천수 : 114
작성일 : 2010-07-08 11:56:18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봄 방학 때면 시골 큰집에 가곤 했다.
그런데 큰 집만 가면 나는 밥을 못 먹었다. 밥은 보리밥이고 김치는 왜 그리 시고 군내도 나는지,
맛도 맛이었지만 ‘시골냄새’라고 부르던 묘한 냄새 때문에 더욱 밥 먹기가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기도 없는 시골에서
설 지난 2월이면 김치가 시고 무르고 군내 나는 게 당연한 일이고 볏짚으로 밥을 하고 난방을 했으니,
또 소죽도 같이 끓이던 부엌이었으니 그 비릿한 볏짚 냄새며 탄내들이 음식에 배는 게 당연했으나
도시 아이인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저 큰 엄마는 음식 솜씨가 없는 줄만 알았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시골집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사촌 큰형 결혼하고 어느 날 큰집에 갔는데
음식이 달라져 있었다. 그 땐 그랬다. ‘오호! 형수 솜씨가 좋은가 보다.’

그 후 흐르는 세월만큼 큰 집의 음식은 맛있어졌다. 마치 내 어머니 손맛인 듯 입에 맞아 갔다.
다시 세월이 흘러 직장 때문에 여기저기 출장도 다니게 되고 몇 몇 지방에 살아보니,
해가 바뀔수록 ‘우리 집 음식’ 같은 맛이 많아지고 음식들이 비슷비슷해졌다.
비단 식당뿐 아니라 집 밥마저도 그랬다. 매워지고 고기든 음식이 많아지고 달아 지는 것도 비슷했다.

콩나물국을 끓일 때면 어머니 손맛을 생각한다.
아무리 흉내 내도 기억속의 그 맛이 안 나오는 음식이 내겐 콩나물이다.
그래도 무침은 좀 나은 편인데 콩나물국은 다시마로 따로 국물을 내어 봐도 안 되고
간장을 바꿔 봐도 안 되고 애꿎은 다진 마늘 잔뜩 넣어도 그 맛이 안 난다.

유일하게 그 맛을 흉내 낼 수 있는 방법은 조미료를 쓰는 것뿐이다.
옛날 마법의 맛을 내는 ‘味’자 돌림의 형제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머니가 김혜자 아줌마가 선전하던 味자 제품을 즐겨 쓰셨는지 다른 이가 선전하던 제품을 쓰셨는지,
또 얼마나 많이 쓰셨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우리 집에도 그 味자 형제들이 떨어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8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모든 집의 김치 맛이 같아졌던 거,
시골 큰 집의 음식이 맛있어졌던 건 형수의 음식 솜씨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콩나물국이라기에는 국물이 적고 무침이라기엔 국물이 자박한
국도 무침도 아닌 콩나물이 상에 올라오면 3남매 참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있다.
비교적 매운 걸 잘 못 먹던 나와 동생을 위해 해주시던 음식이었다.
게다가 귀한 참기름과 깨소금까지 얹어 상에 올라오는 날이면 말이 필요 없는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며 끓인 국물 자박한 콩나물 무침이다. 역시 다시마 우린 물에 콩나물 끓이다 다진 마늘 넣고
소금으로 간하고 파도 썰어 넣었으나 어머니 손맛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깨와 참기름도 한 방울 떨어뜨렸으나 오히려 맛을 버렸다.
할 수 없이 채식조미료 좀 넣는다. 이제 맛이 비슷해졌다.

어머니 손맛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어머니 손맛의 비밀은 정성과 사랑 솜씨 말고 또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가끔 국물 요리를 하다보면 기억속의 맛, 원하던 맛이 안 날 때가 있다.
이럴 땐 별수 없다. 그냥 조미료 쓸 수밖에. 왜냐? 어머니도 그러셨으니까……. ㅎㅎ.
그런데 그 味자 형제들이 언제부터 집에서 사라졌을까? 그럼 그들을 대신하고 있는 건 지금 뭐지?

음식만큼 제 각각의 맛과 선호가 분명한 것도 드물다. 그만큼 경험에 의한 편견이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K가 초등학생 때까지 아이에게 말했다. “원래 맛있는 음식은 없다. 맛있게 먹는 음식만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무엇이든 편견 갖지 말고 잘 먹으라고.
그럼 아이는 “맛있는 음식 있어, 내 입에 맛있는 게 맛있는 음식이야!”고 대들었다.

내말도 아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새로운 맛을 쫓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자신의 기호를 다른 이에게 잣대로 들이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살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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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양파를 갈어 넣고 반죽한 수제비, 색이 야시시하다.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별이친구
    '10.7.8 12:08 PM

    야시시한 수제비.....감자랑 양파 갈아 넣으려면 조금 손이 가겠네요;;
    색깔 이뻐요~

  • 2. 얼리버드
    '10.7.8 12:14 PM

    저는 제목보고 알았어요. 어머니 손맛은 일명 화학조미료 맛이란걸.^^ 그 어머니 손맛은 정말 다른 재료로는 도저히 낼수가 없어요.^^ 맞아요. 특히 콩나물국은 더더욱~

  • 3. 마이쮸
    '10.7.8 2:05 PM

    조미료 없이 콩나물국 맛내는것 진짜 힘들어요.

  • 4. 며니
    '10.7.8 2:49 PM

    저 예전 자취시작했을 때요, 김치찌개를 어떻게 끓여도 엄마가 끓여주신 맛이 안나는거예요.
    어느날 집에 가서 엄마한테 김치찌개 해달라고 조른다음 먹으면서 물었어요.
    엄마 왈

    "다시* 를 넣어야지!"
    그거였던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5. 나디아
    '10.7.8 4:18 PM

    예전에 봤던 재밌는 단편만화에 이런게 있었어요

    아주 유명한 전통있는 청국장집이 있었어요..
    근데 주인할머니는 아무에게도 청국장 비법을 전수해 주지 않았죠. 며느리에게까지도요..
    근데 그 주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며느리에게 청국장 비법을 전수해주죠..

    ' 아가.. 미원 2숟갈이다... '

    이거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

  • 6. 오후에
    '10.7.8 4:27 PM

    별이친구님//감자가 아니라 당근인데 @ . @ 뭐 그리 손이 많이 가진 않아요.
    얼리버드님, 마이주님, 며니님, 나디아님// 다들 알고 계셨군요. 그 손맛의 비밀을... 며느리도 모르던 비밀을 다 알고계셨구나... 저는 최근에 알았습니다.

  • 7. 가브리엘라
    '10.7.8 4:46 PM

    맞아요, 정말 제일 쉬운것 같으면서도 참 맛내기 어려운게 콩나물국이죠.
    국물낼때 멸치다시만으로는 도저히 오묘한 그맛을 내기 어렵더군요.
    저도 바지락살만 넣어보기도하고 껍질바지락을 넣어보기도하고 다시마등등..
    아주 신경쓰면 먹을만하구요,정 아닐땐 비장의 무기 맛소금을 살짝 첨가합니다.아님 혼다시가루를
    눈꼽만큼...ㅎㅎ "미"자돌림 조미료야 결혼전에도 안썼지만 일체의 비슷한 조미료종류들을 부엌에서 몰아낸지 오랜데도 맛소금은 버리지못하고 있습니다. 되도록 안쓸려고 합니다만 ..
    천연조미료를 갈아서 쓰곤했는데 그래도 천연조미료가 감당못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 8. 미주
    '10.7.8 5:01 PM

    아...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ㅎㅎㅎㅎ
    내 음식맛에 스스로 칭찬해마지 않는 나!! 콩나물국만 끓이면 급좌절...
    도대체 왜 시원하다는 콩나물국은 맛이 밍밍할까????
    어쩔수 없이 시골에 있는 미원을 조금 비상용으로 가져다놨습니다 ㅎㅎ
    친정엄마께서 손님이 왔을땐 늬방식대로만 하지말고 조미료도 써야될꺼 같으면 쓰거라~
    제가 못먹겠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이번 주말에는 집에있는 많은 감자들를 아주 이것저것 다글다글 볶아보아야겠습니다ㅎㅎ

  • 9. yuni
    '10.7.8 6:01 PM

    저 국물 잘박한 콩나물 국도 아니고 무침도 아닌...
    저희 시집은 제사때 콩나물을 저렇게 하더군요.
    그래서 배웠는데 제사가 없는 계절에도 식구들이 간간히 찾아요.

  • 10. dolce
    '10.7.8 8:20 PM

    저도 콩나물 국이 가장 어려워요~지난번에는 콩나물 국이 써갖고 놀랬던 적도 있답니다ㅋㅋㅋ
    (사실은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어요..ㅎㅎ)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 11. 서산댁
    '10.7.9 12:04 AM

    ㅎㅎㅎ
    저도 가끔 그 맛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 12. 오후에
    '10.7.9 8:33 AM

    나만 그런게 아니었네요. 다들 콩나물국에 좌절들 하셨네요.
    밍밍한 콩나물국 맛에 당황한 기억들이 있는거죠. 이걸 넣어 말어 고민하기도 하고... ㅎㅎ

  • 13. 세네모
    '10.7.9 10:11 AM

    그저께 조개구이집에서 콩나물국 한대접씩 내놓던데 모두들 그거 먹으면서 맛있다...시원하다...하는데, 맛을 잘 모르는 내가먹기에도 소고기다시다 제일싼거... 그맛이 너무 강하더만.....
    그래도 뜨거운 콩나물국을 시원하다 를 연발하면서 퍼먹던 사람들... 집에가면 순수한 콩나물국과 비교되겠지요. 강한 조미료맛에 길든 자신들의 입맛을 모른채...대표로 울집 넘자~

  • 14. 일산맘
    '10.7.9 10:22 AM

    콩나물국에는 새우젓국물로 간하면 좀 나아지던데요
    새우젓 맛 싫어하실라나요?
    마트에서 해물간장도 살짝 넣어주면 맛이 좀 돌던데요.

  • 15. 복주아
    '10.7.9 2:26 PM

    콩나물국에 된장을 조금 넣어 보세요
    4식구가 먹을양 기준에 찻숫가락으로 듬뿍 떠서
    거름망에 풀어 넣어 끓여 보세요
    된장맛이 엷게 은근히 나면서 콩나물의 잡맛은 가시고
    개운하고 깨끗한 맛이 납니다.

  • 16. 시네라리아
    '10.7.9 10:28 PM

    아무래도 주말에 수제비 반죽해서 먹야할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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