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내맘대로 닭조림
그런데 저는 이성보다 감성이 더 발달했는지, 아니면 얼렁뚱땅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이 음식만들기에도 반영되는 것인지, 도무지 레서피대로 따라 하는 것을 잘 못한답니다.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음식은 레서피에서 시키는대로 간장 한 큰술, 물엿 2와 2분의 1 큰술, 말린 홍고추 2분의 1컵, 등등 저울과 계량컵 눈금을 읽어가며 착실히 따라하지만, 그렇게 해서 두 번 이상 성공하면 (즉, 의도했던 맛이 나게 되면) 그 다음부턴 '그 레서피를 어디다 두었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뭐뭐가 들어갔더라?' 를 생각하는 못된 버릇이 있어요.
물론 저는 일반인의 평균 수치를 밑도는 저질기억력의 소유자라,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면 그 음식을 먹었을 때를 떠올리며 어떤 맛이었나 회상을 해요. '음.. 짭쪼름하면서도 단 맛이 있었지... 그럼 설탕이나 물엿이 들어갔겠구먼'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그리고 식재료역시, '어라, 물엿을 사다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그럼 꿀을 넣어볼까? 메이플 시럽도 비슷한 맛을 만들지 않을까?' 이러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 바꿔버리는 습성도 있답니다.
흠... 이렇게 쓰다보니 마치 제 자신이 <푸드 앤 쿠킹> 계의 이단아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흑흑...
네,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거 맞아요.
근데 이 버릇이 잘 고쳐지지가 않아요.
어제도 이 못된 버르장머리를 살려서 <내맘대로 닭조림>을 만들어 먹었어요.
가래떡을 좋아하는 남편과 당면, 국수, 라면, 심지어 콩나물 같은 기다란 음식이라면 무조건 고고씽 하는 아이를 위해 닭조림에 가래떡과 당면을 넣었어요.
네살박이 아이가 먹어야 하니까 양념은 맵지 않은 안동찜닭 스타일로 (즉, 간장이 주가되는 양념) 했구요, 야채는 냉장고에서 손에 잡히는대로 자주색 알감자와 베이비 당근, 그리고 양파를 넣었어요.
재료를 손질하다보니 양이 좀 많게 된 것 같아서 간을 아주 슴슴하게 하고, 밥반찬이 아닌, 일품요리로 먹게 했어요. 밥대신 가래떡을 먹어도 결국 쌀을 먹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이렇게 해서 탄생한, 닭갈비도 아니고, 안동찜닭도 아니고, 하여간 닭을 조려 만든 음식 이야기였습니다.
만드는 과정 사진을 올리려다가, 또 트래픽이 초과했다는 둥 하면서 사진이 안보이게 될까 저어하여 (오호, 궁중어법 등장이요~), 핵심 사진 한 장만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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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olce
'10.7.7 12:54 PM저도 그래요 ㅋㅋ
예전에 인터넷이나 책에서 본 재료 한번 스캔해 뒀다가
제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ㅋㅋㅋ
맛보면서 이거 더넣어보고 저거 더 넣어보고 ㅋㅋ그러면서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는거죠 모 ㅎㅎ
닭요리 맛있어보여요 >.<2. 프리
'10.7.7 2:44 PM뭐 내맘대로의 요리도 좋기는 하죠...
근데...늘상 같은 수준의 음식을 원하신다면... 계량화.. 레시피화는 필수인 것 같아요...
음식의 효율화 작업인 셈이죠...
여름엔 닭요리도 참 어울리는 것 같아요..저도 안동찜닭 한번 아이들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러갑니다.. 좋은 날 되세요.3. 소년공원
'10.7.7 10:03 PMdolce님, 저와 비슷한 성향이신 것 같아서 반가워요.
다른 글에도 자상하게 답글 자주 남겨두시던데, 마음씨가 dolce 하신 분 같아요 ^__^
프리님, 바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셨네요.
늘상 같은 수준의 음식!
내맘대로 조리법의 큰 단점이 맛의 편차가 심하다는 거죠.
어떤 날은 완전 성공, 또 어떤 날은 사랑과 함께 먹어야만 하는 맛...
그래서 이 버릇을 고쳐야지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구요.
닭고기가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어서 여름철 음식으로 좋다고 하지요?
맛있게 만들어서 여기에 올려주세요!4. 소년공원
'10.7.7 10:05 PM앗, 프리님!
그러고보니 아래에 훌륭한 글 올리셨던 그 분이시군요.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제게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저 막, 팬이 되려고 해요... ^__^5. 나비언니
'10.7.7 10:06 PM저런 닭요리에는 들어있는 국물배인 가래떡이 최고인데...
아 침나와요..6. 보라돌이맘
'10.7.8 4:50 AM만들어 놓으신 저 닭조림을 보니 다른 말은 필요 없고...
그냥 숟가락 들고서 앞에 앉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밥 한 공기 넉넉히 퍼서 그 옆에다 추가한다면,
이런 한 끼 밥상으로 내 몸과 마음까지 얼마나 충만해질까...하는
그런 기분좋은 상상이 들어요.^^7. 벚꽃
'10.7.8 11:51 PM소년공원님, 저두 그래요..
대충대충.. 그러니 만들때마다 맛이 제각각^^
하지만 창의적이잖아요~~~~~ ㅎㅎ
아이디 볼때마다 궁금한데요.. 아이디에 특별한 뜻이 있는건가요?
한글 아이디도 소년공원, 영어 아이디도 boypark^^ 지명인가요??^^ (괜한 호기심 ㅠㅠ)8. 소년공원
'10.7.9 12:40 AM나비언니님, 그죠? 저도 국물 배인 떡사리, 국수사리, 감자 같은 걸 주재료인 교기보다 더 좋아해요.
보라돌이맘님께서 댓글을 다 달아주시고...
ㅎㅎㅎ 뭘라까, 님이나 프리님은 연예인 같은 느낌이 들어요... ^__^
그래서 댓글을 달아주시니, 제 기분이 한결 더 으쓱해져요.
벚꽃님, 제 아이디의 비밀, 곧 공개합니다. 기대하시라~~
(사실 알고보면 별다른 비밀도 아니어요 ㅎㅎㅎ)9. 팜므 파탄
'10.7.9 5:56 PM아 저도 이번에 꼭 닭에 떡을 넣어 봐야겠네요.
아이들도 잘 먹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