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니?
그래서 너 어떡하겠다는 거야.
내가 말, 했잖아. 참을 거라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참을 거라고.
참기는 니가 뭘 참아.
지금 다른 애들은 얼마나 힘들게 많이 하는 줄 알아?
아니거든. 나 참는 거 많거든.
J 너 이제 그만 해라.
당신도 그만 해요.
며칠 전에 니가 뭐라고 했어. 선생님들도 너 좋아한다면서!
아니라니까!! 선생님들이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선생님들은 날 그냥 pity 해.
그게 그거지 임마. 니가 한국에서 힘든데도 할라고 하니까 그러시는 거지!
아니야!! 그거는 나 안 도와줘.
안 되겠다. J 너 이제 방에 가.
나 일 많아요. 빨리 밥해서 먹고 일해야 돼. 그니까 그만 해요.
곧이어 집에는 우리 집다운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나 온도는 달랐다.
끓어 넘친 감정들이 거침없이 내질러졌으니
더운 거, 어딘가 갑갑하게 걸리적거리는 기분인 거, 당연했다.
모기불을 피우듯 부엌에서 뭔가를 끓이고 치직거리며
아까를 쫓아버리려고 애썼다.
J 야, 한 오 분 있으면 밥 먹을거야. 상 차리는 거 도와줘.
응..
J, 엄마가 뭐라고 하셨어. 엄마 말씀 안 들려?
아 맞다.
엄마 미안.
왜 또 혼나고 그래. 엄마 그럼 마음 아프지.
응. 알겠어요.
엄마, 이거는 또 뒤집는 거지.
응.
근데 왜 뒤집어?
말했잖아. 남은 야채는 냉장고에 있을 때 아래쪽으로 물기가 내려가니까 뒤집어야 싱싱한 쪽이 위로 온단 말야.
뭐 어때. 어차피 아래 것도 먹을 건데.
됐고, 이거 샐러드 위에 뿌려라.
이게 뭔데?
대추야. 맞다. 너 옛날에 대추 안 말린 거 무슨 맛인가 궁금하다고 그랬지.
이게 그거야. 먹어 봐봐. 진짜 맛있어.
맛있지?
엉...나쁘지는 않은데....
왜? 난 아주 맛있던데.
내가 생각했던 맛은 아니야.
그래? 사과 맛 나고 그렇지 않니?
그거 대추예요. 알고 먹으셔.
대추?
응. 생대추가 꼭 사과 같지?
평범하디 평범한 저녁 밥상.
몇 년도 몇 월 며칠을 적어놓지 않으면
이게 봄인지 가을인지 알 수 없고,
낮인지 밤인지도 흐릿할 만만한 밥상,
그래도 푸릇푸릇한 대추 몇 알 썰어 뿌렸다고
복사해서 붙여넣기 같던 광경에 시간이 돋아나고 날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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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이더러 그릇을 치우고 행주로 식탁을 한 번 훔치라고 시켰다.
남편은 설거지를 해 둘 것이다.
반찬 그릇에 뚜껑을 씌워 냉장고로 옮기는 아이 곁에서
배 하나, 복숭아 둘을 깎았다.
껍질 어딘가에 과도를 탁, 하니 내리쳐 선을 긋고
거기서부터 몇 바퀴를 돌려가는데
그저께 들은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온다.
누군가를 pity 하는 거...
고맙고 귀한 감정이지만 그 측은지심이 곧 사랑은 아닐 것이다.
어리다면 어린 녀석이 타인에게서 자기를 향한 동정어린 시선을 감지했다는 게
제법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힘들다.
며칠째 나를 화로, 슬픔으로, 무서움으로 끓게 하는 어떤 일을 떠올려도 같다.
가엾음과 연민은 따뜻한 관심이고 애정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인간에겐 평등과 자유만한 게 있냐 싶으니 그렇다.
그래서 분노가 잘 가라않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가 어린 사람의 평등과 자유를 빼앗아버렸다는 분노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므로 존엄해야 하는데, 그 존엄은 내가 진정 자유로울 때만이 지켜지는 것인데,
바로 그 자유를, 신체, 정신적인 그 모든 자유를 크게 망가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실은 나까지, 나도, 나까지도, 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가두는데
일조하게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만 분노가 앞서 냉정을 못 찾는 것 같다.
어째서 당신과 내가 어른이란 같은 말을 들으며 목숨을 이어가야 하느냐고,
그의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세워 타악타악 내리치고만 싶다.
J 야, 복숭아 다 먹었으면 접시 갖다 놔.
응.
물로 한 번 헹궈야 한다. 안 그럼 날벌레 생겨.
복숭아 먹은 거는 신경 써야 돼.
응.
있잖아, 너 안 도와줘 그거 있잖아.
.....
J 야,
어.
아니, 너 아까도 또 그랬잖아. 안 도와줘.
응.
그거, 틀린 말은 아닌데...안 도와줘가 아니고 도움이 안 돼 하거나,
그건 소용없어, 그러거나 그래야 자연스러워.
응.
듣고 있어? 잘 들어.
자꾸 니가 그러니까 말이 자연스럽지가 않잖아.
'그거 나 안 도와줘' 가 아니고 '그러는 건 도움이 안 돼' 아니면
'나한테는 그런 거 필요없어' 라고 말 해. '소용 없어' 그것도 괜찮고.
응.
정말 알았어?
네. 아주머니 알았습니다.
엄마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야...
엄마? 뭐하려고 그래?
보면 몰라. 영화 보려고.
나도 보면 안 돼?
안 돼. 자.
자기는...........
아빠 참 이상하지. 어떻게 여기서 자?
피곤하시니까 그렇지. 그리고 아빠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시잖아.
그래도 어떻게 여기서 자냐. 아빠 불쌍하다.
졸린데 클라이막스가 어딨어, 졸리면 자야지. 아빠 들어가 주무시라고 하자.
엄마 My Girl 치면 한국 드라마가 나온다.
그래? 그런 드라마도 있었나?
재밌었어?
뭐 나쁘지 않았어. 감독이 닉슨 팬인 것 같애.
아닐 걸. 1970년대라고 나왔잖아. 그거 강조할라고
처음이랑 끝날 때 닉슨 대통령 얘기를 넣은 걸 거야.
엄마 나 위키피디아 좀 찾아 봐도 돼?
됐거든. 이제 치카하고 자라.
충격이 더 맞았다. 혐오가 더 맞고, 안 믿고 싶은 마음이 더 맞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나는 다른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고 싶다.
내 동정, 내 연민이 혹여 한 어린 타인의 자유와 평등을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조심하고 주의하고 싶다.
냉정만을 꺼내고 다른 마음은 접어 두고 싶다. 그럴 때라야 그 아이도 내 아이, My Girl 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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