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풍성한 걸요. ㅎㅎ
주말에 난생 처음 간장 게장 담가 놓고, 아직 맛도 안 보고 혼자 뿌듯해 하고 있어요.
금요일에 퇴근하는데, 셔틀에 남편이 앉아 있네요. 여의도에서 볼일 보고 들어가는
길이래요. 저는 돼지 껍데기가 몹시 먹고 싶었으나 인사 치레로 '밥 해 줄까?'
그랬더니. '조치~' 하네요. 전 '피곤할텐데, 그냥 먹고 들어가자'를 기대했거든요. 흑.

'아니, 저기, 근데 상추가 없어서 안되겠다.' 했더니 대뜸 '내가 홈*러스 들러서 사갈게.'
이쯤 되면 물를 수도 없죠. 집에 도착하자 마자 서둘러 저녁을 차렸어요. 종이 호일에 한장 씩
싸서 얼려둔 부침개, 역시 얼려둔 배추국, 불고기 재어둔 것. 얼린 음식 안 드시는 분도 있다지만,
저 같은 맞벌이는 얼려둔 음식 없으면 평일에 밥 먹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

요렇게 저장해둔 시금치도 꺼내서 후딱 무치구요.

이 앞에 외출복도 못 갈아 입고, 앞치마 두르고 눈썹 휘날리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시죠?

냉동실에 항상 불고기나 돼지갈비찜 재어둔 게 있어요. 그래도 이런 메인 음식이 있어야 저녁상
답잖아요.

전과 나물은 하나씩 그때 그때 해요. 계란 말이는 기본인데, 말고 식혔다가 썰 시간 없어서 패스.

시금치 데쳐서 무쳐주구요.

밥도둑의 지존, 전복장입니다. 제가 지지난 주에 홈쇼핑의 어이없는 전복장 가격에 반발하여
전복장을 담았거든요. 맛, 정말 제대로 들었어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이렇게 밥 비벼 드시면 정말 환상적인 맛이에요.

계란 후라이만 하나 척 얹어 주심 돼요.

게우가 섞여 들어서 향긋한 전복 내음과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전복살의 식감이 일품이죠.

짜잔~ 한상 완성!!
직장 다니면서 매일 어떻게 이렇게 해먹냐구요? 노~ 노~ 절대 매일 아니에요. 평일 식사는
1주일에 한두번? 다행이 남편이 집밥만 고집하는 편이 아닌데, 해주겠다면 절대 사양을 안해요. 흑.
그러고 보니, 엄마는 평생 아빠 아침상을 거르지 않으셨지요. 저희 아빠가 국 없음 밥을 안드시는데다
식당 밥을 너무 싫어 하세요. 전형적인 가부장형 아빠인데, 다정다감할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 분이세요.
두분이 50이 넘으셨어도 영화도 자주 보시고, 포장 마차도 자주 가시고, 금슬이 좋으셨죠.
젊은 시절엔 몹시 무뚝뚝하셨나 봐요.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큰 일 나는 줄 아셨다죠.
저희 아빠가 30년 동안 군생활을 하셨거든요. 얼마나 권위적일지 짐작이 가시죠?
다 커서 엄마가 알려준 일화인데요(엄마는 비오는 날 저희 삼남매 모아 놓고 부침개 부치며 이야기
하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 옛날 일화들도 하시고, 귀신 이야기, 전설.. 참 이야길 재미나게 하셨죠.)
우리가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 한테 잠깐 오빠를 업고 있으라고 하셨대요. 연년생 삼남매를 키우며
집안 일 하시느라 손이 모자라셨겠죠. 포대기를 둘러 주고 나와 주방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방에서
오빠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놀라서 들어가 보니 오빠는 포대기 채 바닥에 떨어져
있고, 아빠는 서서 신문 보시고 계시더라는.
1층 창문 너머로 행인들이 아기 업고 있는 아빠를 훑어 보자 가오 상하신 울 아빠, 포대기를 그대로
풀어 내려놓고, 신문 보는 척 하고 계셨더랍니다.

토요일 저녁엔 불낙전골 해먹었어요. 반찬, 아~무 것도 없어요. 전골과 우동 사리와 김치가 다.

이렇게 끓여 가며 먹어요.

우동 사리도 같이 먹으니까 이것만으로도 배불러요. 하지만!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죠. 자작하게 남은 국물에 미나리, 당근, 김 넣고,

계란 하나 깨뜨려 넣어 섞어 줘요.

넌 죽이냐, 볶음밥이냐?

그런 거 대답할 겨를이 어딨어요. 박박 끍어 먹어요. 쓰읍~
그렇게 가오 잡는 대한민국 군인이셨던 아빠지만, 때때로 엄마를 많이 감동 시켰나봅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대요. 이맘때였나봐요. 동네 곳곳에서 옥수수를 찌기
시작하자 한창 먹성 좋을 때인 다섯살, 세살 저와 오빠가 그렇게 옥수수를 먹고 싶어 하더랍니다.
아빠 이상으로 남에게 손 벌리기 싫어하는 엄마가, 동네를 돌며 옥수수 좀 사려고 해도, 널린 게
옥수수인데 그걸 어떻게 돈주고 파냐고 하더래요. 곧 죽어도 거저 달라는 말은 안나오더랍니다.
자존심 때문에 어린 자식들이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옥수수도 못주고, 엄마 속은 타들어 갔죠.
그런데요, 어느 늦은 밤, 회식 하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신 아빠가 군복 윗주머니에서
옥수수를 하나 꺼내 툭 던져 주더랍니다. 한입 베어문 자국이 선명한 옥수수...
대대장 댁에서 회식을 했는데, 간식으로 옥수수가 나온 걸 베어 무는 척 하면서 주머니에 넣어
오신 거죠... 옥수수라는 말에 자다 깨어 눈도 안뜨고 베어 무는 오빠와 저를 보며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나시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눈물 글썽이셨죠. 아빠가 그런 분이다. 하시면서.
지금 생각하면 울 엄마, 아빠 참, 옥수수 좀 싸달라 하면 그 후한 강원도 산골 인심에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으련만. 그렇게 남의 신세 지는 걸 참 싫어 하셨어요, 두분 다.


전복장 비빔밥과 함께 한 단촐한 주일 아침상. 프리님 함 따라해 봤어요. ㅋㅋㅋㅋ

전 입맛이 없어서 저의 완소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 보면서 귀선생님과 요구르트 대작중.
전 어른이니까 좀 큰 이오 먹어도 돼요. 아우, 귀선생님 귀여워 죽겠어요, 진짜!!!

저의 소스들을 활용한 밑반찬 만들기. 휴가 때 만들어 놓고 아직껏 못하고 있었네요.
일단 비엔나 소세지 케찹 볶음. 파프리카는 비엔나 소세지 크기로 썰어주세요. 기냥 이쁘라구요. ㅋ

비엔나 소세지 볶음 하려고 파프리카를 사왔는데, 냉장고에 똑같은 게 또 들어 있네요. ㅎㅎ
적어 두지 않으니까 종종 이런 일이 생겨요. 파프리카랑 애호박이 주로 주범.
저 EM은요, 하나는 당밀, 하나는 설탕으로 발효한 건데, 올해 3월에 부임하시자 마자 경비 절감으로
골치 아파 머리 빠지신다는 울 사장님 갖다 드릴 거예요. 저의 롤모델인 멋진 여사장님이십니다.
얼른 본사 사정이 좋아져서 같이 좀 잘 살았음 좋겠어요. 대한민국도 좀 살아나구요...

비엔나 소세지는 이렇게 어슷하게 잡고 칼집을 넣어 주면 일정한 위치에 칼집이 잡혀 벌어졌을때
가지런히 이뻐요. 앞 뒤로 칼집 넣어주고.

무늬만 만년초보인 저(돌 날아온다~), 일타 삼피입니다. 없는 시간 쪼개 후딱 후따가 해먹으려면
이렇게 잔머리만 늘어요.

올리브유 두르고 달달 볶아 주구요.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좀 낮추고(소스가 타요) 소스랑 물을 조금 넣어 은근히 졸여 줘요.

탱글 탱글 맛있겠죠?

맛간장과 함께 한 어묵볶음 되겠습니다.
어묵은 동그란 어묵 크기에 맞춰서 일정하게 잘라줘요. 간지 나잖아요.

잘라낸 짜투리는 이렇게 보관해뒀다가 긴 거는 김밥 재료로 쓰고, 짜투리는 떡볶이 할 때
넣어줘요. 아시죠? 저렴 요리는 간지 살리면 격이 상해요~~

맛간장 + 물 넣어 졸여주면.

밑반찬의 절대 지존, 어묵 볶음 완성.

겨자 소스를 이용한 해파리 냉채도 해봤어요.
오이채가 가지런하죠? 저거 써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제가 초보인 이유는요, 고수분들 주방에서는
'탁 탁 탁 탁'하는 칼질 소리가 나지만, 초보 주방에서는 '써걱 써걱'하는 작두 소리가 나거든요.
탁탁탁탁의 경지에 오르면 닉네임 바꾸겠습니다요.

고새 해파리 냉채 하는 법을 잊어 먹어서 복습 차원에서 네이* 검색했더니 프리님 레서피가
나오더라구요. 어찌나 반갑던지. ^^ 염장 해파리는 소금물에 바락 바락 씻어 1시간 정도 물을
담가 놔요. 중간에 두어 번 물 갈아주구요. 그리고, 너무 익히면 꼬들꼬들 해지니까 뜨거운 물을
부어 주는 방식으로 살짝 삶아 줘요. 맞죠, 프리님? ^^

겨자 소스 섞어 주면 엄마표 밑반찬 해파리 냉채 완성.
도시락 반찬에 해파리 냉채랑 미역줄기 볶음 있음 횡재한 것 같았는데... ^^

밑반찬이 가득 가득~ 냉장고 문 열 때마다 흐뭇해요.
제가 엄마 이야길 자주 하잖아요. 저희 엄마 정말 대단하신 분이거든요. 돌아가실 때가 50대
초반이었는데도, 다들 40대로 볼 만큼 단아하고, 고우셨지만, 젊었을 때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군인의 아내로 서울과 관사를 오가며 두집 살림 한 거야 대한 민국 군인 아내라면 의당 겪는
일이니 그렇다쳐도...
스무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오빠를 낳고, 저를 가지셨을 때 아빠가 월남으로 떠나셨거든요.
저 하마트면 유복자 될뻔 했어요. ^^; 저 배고, 남편도 없이 시집살이도 혹독히 하셨나 봐요.
그래도 저 낳을 때는 산고가 없었다며 태어날 때부터 효녀였다고 늘 고마워 하셨어요.
그런데요. 제 동생 낳을 때는 산골 오지 마을에서 갑자기 산통이 오셨다네요. 눈사태 때문에
차를 움직일 수도 없고, 제 동생을 아빠가 혼자 받으셨대요. 산통이 오는 와중에 가위까지
소독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동생이 나온 후 탯줄을 잘라야 하는데, 미끄덩 거리니까 아빠가
자를 수가 없더래요. 결국 탯줄을 엄마가 자르셨다는...
산고도 무지하게 심해서, 그때 이 악무느라 치아를 다 버리셨대요.

이러고도 성이 안차 간장 게장도 담았답니다. 맛보기 용으로 다섯 마리만. ^^
마트에서 활꽃게를 샀는데, 꽃게 총각한테 '이거 어떻게 죽여요?' 했더니, '죽이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죠.' '그러니까 그 여러가지 중에 가장 죄책감 덜한 방법이 머예요?' 그랬더니,
난감한 꽃게 총각 그제서야 꽃게 아줌마 모셔 오더라구요. 옆집 생선 총각이었나 봐요.
아줌마 말씀대로 봉지 째 냉동실에 넣어 온도 최하로 해놓고, 3시간 놔뒀어요.
5시간은 넣어 놔야 세균이 다 죽는다는데, 시간도 없고, 영하 25도씨에서 3시간 이상 버틴
세균은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

저는 간장과 물을 5 대 5로 잡았구요, 매실원액, 대파뿌리, 다시마, 사과, 양파. 당귀, 감초 넣어
팔팔 끓여줬어요. 맛있을라나.

으흐흐흐. 이래놓고 3일 후에 한번 더 끓여서 부어주고, 또 3일 후에 반복해 주면 먹어도 되는
거 맞죠? 전복장, 마늘장아찌, 고추 장아찌 다 성공해서 간장 게장도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음!
근데요, 저렇게 어렵게 나온 제 동생이요, 태어나서 내내 감기를 안고 살았대요. 20대 초반의
젊은 엄마는 매번 감기에 시달리는 갓난 동생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엄마는 늘 미안해 하셨죠. 연년생 동생이 태어난 이후 부터 저 역시 아기인데도, 저를 품에 안아
준 적이 없대요.
그런데, 겨우 한살 위인 누나는 기특하게도 동생을 미워하지도 않고, 극진히 보살폈다죠.
동생이 죽을까봐... 어렸을 때에도 기억이 생생해요. 날마나 동생이 죽을까봐 불안해 했던...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 생후 3년이 되어서야 알았대요. 동생이 선천성 심장 판막증이라는 걸.
심방과 심실 사이에 구멍이 세개 뚫려 태어난, 당시 국내에서는 희귀 질환이라 수술이 쉽지도
않고, 수술비도 어마 어마 하고, 수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선천성 심장병이었죠.
20대 중반의 어린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음, 넘 놀았다. 5년에 걸친 엄마의 아들 살리기 억척 투병기는 다음 번에. ㅋ
저 장터에서 도가니 주문 했는데, 이번 주말에는 도가니탕 끓여 볼거예요. 매번 사골만 끓였는데,
도가니 도전이라니... 흥미진진한 걸요. ^^ 82cook 덕에 정말 별걸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