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집에서 우연찮게 백오이소박이를 먹어보고 "이렇게 담그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담가 봤었죠.
이렇게..
잘 절여진 오이에 무,사과,당근,대추....를 액젓으로 하얗게 양념을 하구..
풀을 쑤어 식혀 속을 넣은 절인 오이에 자박하게 부으면 끝..
빨간색깔의 오이소박이야 익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그럼 하얀소박이는..?
역시나 익지 않아도 아삭아삭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색깔도 그대로여서 훨씬 깔끔해 보이고요..
어쩜 이렇게 이 날 식탁에 차려진 음식 색깔에 딱 들어 맞는지..?
청포도가 있긴 하지만 얌전한 백오이소박이 없었음 너무 꿀꿀한 색깔의 식탁일뻔..
귀찮아서 김치볶음밥으로 한 끼 때우던 날!!
다른 찬도 없지만 시원한 국물 오이소박이랑 곁들이니
이것도 기름진 김치볶음밥이라 개운했어요.
배추김치에 또 오이김치라...?
여기서 오이소박이는 김치가 아닌 오이샐러드처럼 개운한 맛이었지요.
색깔도 참 곱죠?
심플하지만 색깔과 구성은 꽤 괜찮았던...
이렇게 예뻤던 오이소박이가 점점점 늙어 갑니다.
여자나 오이나 늙어가니 칙칙해지네요.-.-
산뜻한 녹색에서 누리끼리한 색깔로 변해 갑니다.
이 날이 제 생일날 제가 차린 상차림이었는데요, 산뜻한 오이소박이가 없어도 충분히 화려했지만
밥 먹는데 김치 한 조각이 없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냄새 심하게 나는 김치를 푸짐하게 내 놓을 수 없었는데
마침 상차림에 어울리는 김치가 있어서 딱이었어요.
매콤한 무생채가 있고 기름 넉넉히 두르고 부친 김치전과 삼치구이가 있던 날!!
개운한 오이소박이가 또 한 몫 톡톡히 하더라구요.
마치 오이소박이가 아닌 오이지처럼 보이는데..
냉장고에 오래오래 있어서 오이 속까지 시원하지만 전혀 짜지 않았어요.
국물도 물론이요..
이 날 밥상은 꽤나 토속적이죠?
된장찌개에 고구마밥과 풋고추,코다리무조림..
된장찌개 뚝배기 뒤로 보이는 게 백오이소박이인데 검정색깔 그릇에 국물까지 넉넉히 담았더니
존재가 묻히네요.ㅋ
입맛 없을 때 물에 말은 밥과 오이지 길게 쭉쭉 찢어서 같이 먹으면 이 이상 근사한 찬이 없잖아요.
.
.
.
.
이렇게 여러번 먹고 한동안 냉장고에 이 백오이소박이가 있다는 거 자체를
매번 냉장고 문을 열 때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
"맨 구석에 하얀색깔의 국물이 있는 게 뭐지?"
마치 남의 집 냉장고를 보는 듯 전혀 기억에 없는 김치통에 살짝 긴장했거든요.
.
.
.
"아...백오이소박이닷..."
고등어도 굽고..
꺼뭇꺼뭇해져가는 버섯 넣고 서둘러 버섯밥도 짓고..
버섯밥 한 뚝배기랑 텃밭채소,고등어구이,백오이소박이로 얼떨결에 차린 처녁상..
보기보다,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푸짐하게 잘 먹었네요.
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