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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사위 오는 것도 아니고, 군대간 아들 첫 휴가도 아닌데...

| 조회수 : 16,001 | 추천수 : 2
작성일 : 2013-03-12 16:44:37

지난 토요일 늦은 오후,

“무슨, 사위 오는 것도 아니고…….” 두부 부치며, 더덕 구우며 좀 투덜거렸습니다.

 

기숙사 들어가고 9일 만에 집에 오는 K 먹으라고 ‘인절미를 하고 더덕사야 한다.’며 아침부터 수선스럽게 할 때 사실 살짝 삐졌습니다. ‘아니 다 큰 딸 기숙사서 집에 오는 게 군대 간 아들 첫 휴가 나오는 듯 해’ 하면서 속으로 좀 궁시렁댔습니다.

결국 더덕도 사다가 까고 방망이로 두들겨 펴고 간장양념에 재 놓고 아침부터 불린 찹쌀은 찜기에 쪄서 양푼에 넣고 한참을 실랑이하며 빻고 도마위에 콩고물 펴고 적당한 크기로 빻은 밥을 펴서 콩고물 무쳐 또 썰고. 인절미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냥 떡집서 인절미 한 팩 사다주지” 하는 말 안한 거 아닙니다. “집에 콩고물도 있는데 뭐 하러 사요. 적당히 밥알 뭉개지게 집에서 한 게 더 맛있어”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뭐, 아무튼! 2시쯤 출발한다는 녀석이 친구만나 잠깐 놀고 온다기에 그러라 했고 출발한다는 전화 또 왔기에 시간 맞춰 찰밥하고 두부 부치고 더덕 구웠습니다. 냉이 된장국도 끓였습니다.


 

기분엔 하루 종일 준비한 것 같은데 차려 놓고 보니 또 그저 그런 밥상입니다. 게다가 냉이 된장국은 욕 나올 뻔했습니다. 냉이에 뭔가 잘못 들어간 건지, 몹시 썼습니다. 씀바귀 씹는 맛이었습니다. 두부랑 건더기 몇 점 집어 먹는 걸로 끝내고 버렸습니다. 처음 당하는 냉이 굴욕이었습니다. OTL

K가 저거 잘 먹었냐고요. 입으론 “음, 맛있어”를 연발했지만 밥은 반쯤 먹고 더덕도 매운 것 싫어해서 간장양념으로 해줬더니, “난 고추장 양념이 더 좋은데” 하며 그냥 저냥. 그나마 두부는 열심히 먹더군요. 후식으로 인절미도 두어 개 먹고 ‘배부르다’ 며 끝.


 

지난 토요일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봄, 말처럼 따뜻했고 바람도 봄바람이었습니다. 이른 저녁식사 후, 기분 좋은 봄바람 맞으며 세 식구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 맥주 샀습니다. ‘감기 걸린 애한테 술은?’ 하며 질겁하는 H씨는 뒤로 하고 K와 한잔했습니다. K가 함께 해준 맥주 때문에 살짝 삐졌던 건 잊었습니다.



 

학회 있다며 일요일 오후 K가 학교로 돌아간 후, 정작 나는 남은 찰밥을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 이틀이나 더 먹었다. K가 부러운 주말이었다. “딸! 넌 좋겠다. 엄마 있어서, 떡 해주는 엄마…….”

비온다네요.

아직 비온다고 삭신 쑤실 나이도 아닌데 오늘 왜 이리 몸도 맘도 축축 쳐지는지....

꿀꿀해지지 말자고 맘이라도 떠나보자고 눈이라도 멀리 보자고

안구 정화용 사진 몇장 양념으로 곁들입니다.





박은옥 정태춘의  사랑하는 이에게입니다. 오늘같은 날 딱인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날은 흐려도 오늘 삶은 화창하길

http://www.youtube.com/watch?v=IXP8wF3ZFoI

2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소연
    '13.3.12 5:05 PM

    ㅎㅎ k가 궂이 시킨것도 아닌데.. 해놓은거 만족할만큼 먹어주지 않으면
    연인에게 바람 맞은것처럼 추레한 마음..

  • 오후에
    '13.3.12 5:17 PM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웬 떡은 한다고 했는지...

    그래도 아팠다고 떡해주는 엄마 있는 K가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아~ 나도 그런 엄마 있었었는데 하면서.....

  • 2. 날씬한팬더2
    '13.3.12 6:05 PM

    가장 최고의 짝사랑이 자식 사랑인거 같아요..
    밥상에서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거에 휴우~ 큰숨 쉬고 갑니다.

  • 오후에
    '13.3.13 9:24 AM

    저야 거든 입장이라 좀 덜했는데
    H씨는 다음날 애 먹인다고 송편도 빚었더군요.

    그 맘 알려나 싶었습니다. 세월의 터울을 넘으려나 싶어지고요...

    흐린날이지만 기분좋은 하루되시길

  • 3. AAD
    '13.3.12 11:00 PM

    그게 딸 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인데.... 참 그렇네요.
    그날 떡을 먹으며 '이렇게 떡을 만들어 주는 엄마가 있어서 난 너무 행복해 엄마'하고 허그라도 해 줬으면
    엄마 맘이 요레 시들시들 해지지는 않을 것인데...
    딸들이, 자식들이, 그걸 모른답니다.
    그저 당연한 일로 여기지요. 왜냐하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해주는 엄마가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원글님께도 태어나면서 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해주는 엄마가 계셨더라면 그런 서러운 마음은 않드셨을 텐데...
    당연히 엄마니까 해주는 거다. 당연히 딸이니까 이렇게 받는 거다 하셨을 텐데....

    먼 훗날 내가 그 아이 곁에 없을 때, 그때 떡 해주던 날 생각하며 그리워하겠지요.

  • 오후에
    '13.3.13 9:30 AM

    욕심이다 싶고 다 늙어야 알게되는 거다 위로하고 있습니다.
    좀 애교 있는 녀석같으면 장난스럽게라도 표현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녀석은 아니니...

    그래도 좋은 때죠. 빛나는 청춘...

    먼 훗날 부모 그리워하길 바라지도 않고요.

    좋은 하루되시길

  • 4. 짠무김치
    '13.3.13 3:31 AM

    저도 대학 오면서 본의아니게 독립을 했어요.
    부모님 댁에 내려가는 날이면 저녁 메뉴가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가득.
    엄마 말씀이 아빠가 며칠 전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다놓으신다고... ^^
    엄마, 아빠 사랑을 가득 느낄 수 있는 그런 밥상이었어요.
    지금은 해외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 가득한 밥상을 그리워한답니다.
    부모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 옛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 오후에
    '13.3.13 9:35 AM

    일찍 독립하셨네요.

    내리사랑은요 그냥 해줄게 밥 챙겨주는 거 말고 없으니까요.

    서울은 밤새 비가 오더니 날이 많이 흐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5. 변인주
    '13.3.13 11:47 AM

    특히 오늘의 밥상에서는 두부로 손이가요. 정성으로 지진 두부요.
    팥 넣은 찰밥을 아버지와 겸상으로 받아 생일날 아침에
    먹던 생각이 나네요......

    옛날일들은 왜 그리움으로만 남을까요????

    하지만 내리사랑이라고
    저도 다른도시에서 직장다니는 딸이 부활절 휴가에 온다는 이멜을 받고
    뭘 해먹일까하고 머리로 며칠째 메뉴짜고 있어요.

  • 오후에
    '13.3.13 1:14 PM

    들기름으로 부치고 양념장 따로 만들어 일일이 위에 올리고... 나름 신경쓴 두부반찬이죠.
    역시 알아주신다는....

    옛 일이 그리움으로 남는 건 아마 미련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따님에게 답장 보내시죠... 나 이런거 먹고 싶은데 니가 와서 해주라~~ 하고
    '이렇게 쿨하게 살고싶습니다. 내리사랑일망정 매이지 않고...' ---> 이러면 애들이 싫어할라나요 ㅋㅋ

  • 6. 다행복
    '13.3.13 12:04 PM

    작은아들이 보고 싶어지는 밥상, 음악입니다.
    늘상 딸보다 더 곰살맞은 아이가 있다가 없으니 전 요즘 독거노인 같아요
    작년 한해 한주도 안 빠지고 일요마다 도시락 사주며 뒷바라지 하던 아이라 더 그런것 같아요
    집이 멀어 다음달에나 한번 오려나봐요'
    씨레기로 한 음식은 다 좋아라 하는녀석이
    지난 일요일 저녁에 전화 하다가 시레기 들깨찜 먹는다고 하니
    "엄마 나 다음달에 가면 해줘~~' 했는데
    그때쯤이면 쑥이 지천일텐데 쑥떡도 같이 해줘야겠어요

  • 오후에
    '13.3.13 1:15 PM

    시레기 들깨찜! 찜! 아~ 점심먹은지 한시간도 안되었는데 입맛이 되살아나네요.

    들깨향이 알싸하게 코끝에 느껴지는 듯해요.

  • 7. 초록발광
    '13.3.13 12:33 PM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부모님 여의시고 다른 무엇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외로움주머니를 한켠에 지니고 사시는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대반지 같은 '무엇'을 많이 생각해 보며 살았습니다. 그 결론은.....................


    내가 잘하자 - 이지요.^^ 물론 엄니 성에는 안차실겁니다 아마...ㅎ

    그래도 엄니 모시고 정태춘 박은옥 공연 두 번이나 갔었다는거 자랑해봅니다. ㅎ_ㅎ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 혹시 안들어보셨으면 추천합니다. 많이 위로 받은 노래거든요...

  • 오후에
    '13.3.13 1:18 PM

    어릴적부터 마음과 생각주머니가 자체 발광?하셨나봅니다.

    내가 잘하자 이거 참 쉽지 않은 일이지요.

    부럽습니다. 엄니랑 박은옥 정태춘 공연을 두번이나 가시다니...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바로 찾아 들어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izIKXHO7ynI

    보너스로 제가 좋아하는 떠나가는 배도....

    http://www.youtube.com/watch?v=r8RmYpn_eDk&feature=related

  • 8. 호호아줌마
    '13.3.13 10:35 PM

    저녁 먹은지 한 시간 밖에 안 됬는데, 사진들 보니까 다시 급 허기가 집니다.
    꼴깍... (침 넘기는 소리 ^^;)

  • 오후에
    '13.3.14 9:20 AM

    저도 허기가 집니다. ㅎㅎ
    점심시간은 멀었는데 ㅠ.ㅠ

  • 9. 열무김치
    '13.3.14 6:34 PM

    저는 나이를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아직까지 한국 들어 가면,
    정말 눈물 쏟아지게 감사한 밥상이 저를 기다려 줍니다.
    철없던 시절엔 감사한 줄 모르고 거저 맹숭맹숭 받아만 먹었던 딸...
    지금은 반찬 가짓수대로 엄마 이거 맛나다, 뭐 넣으셨어요? 어떻게 구웠어요 ? 엄마 손맛이네,
    엄마 이거 더 있어요? 엄마도 같이 드세요(이 말도 어쩜 그리 잘 안했던지요..)..등등
    온갖 칭찬을 마음에서 우러나해 해 드립니다.
    그럼 우리 엄마 얼굴이 정말 환해져요~~~ 엄마 보고 싶네요 ^^

  • 오후에
    '13.3.15 10:48 AM

    부럽습니다.
    눈물 쏟아지게 감사한 밥상~~~
    저는 다 커서도 맛있다는 말 고맙다는 말 제대로 못했네요
    기껏 한다는 게 '이런거 뭐하러 해, 힘들게' '그냥 밥하고 김치면 되지. 청국장이나 줘' 퉁명만 떨었어요.

    지금은 좀 맛있게 먹는 만큼 살갑게 말씀드릴 수 있을것같은데... 후후
    맘은 이렇지만 막상 그시절로 돌아간다면 또 퉁명스럽게 말할지 모르겠네요....
    왜 어머니한테는 고마운게 몸으로 말로 잘 안나왔나 몰라요....

  • 10. 피치베리
    '13.3.20 10:31 AM

    정성이 가득한 밥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거기에 제가 좋아라하는 인절미도 보이고...
    직접 떡해주는 엄마는 많지 않을거 같아요~^^ 사랑이 가득차 있네요~

  • 오후에
    '13.3.20 3:35 PM

    그렇죠...
    요즘은 떡은 사먹는 음식이니...

    큰 솥에 시루번 두르고 김오르는 거 살피던 어머니 생각 나네요. ~~

  • 11. 간장게장왕자
    '13.4.1 3:55 PM

    우와 정말맛있어보이네요 침이 꼴까닥 넘어가내여 대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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