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마늘,시금치,딸기 참~ 참한 밥상이다.
[어떻게 기억하나? 어떻게 기억될까?]
토요일 저녁, TV보다 H씨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
“응?” 웬 뜬금없는, 무슨 의도로 묻느냐는 표정의 H씨에게,
“나중에 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 같으냐고” 재차 물었다.
“글쎄, 멋있는 사람. 지금도 멋있어. 감정표현이 좀 가파르고 거칠긴 하지만,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하는 H씨 물음에,
“그냥. 낮에 책 읽다가, 떠난 사람 묻고 기억하는 문장이 있어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하고…….” 대답했다.
H씨, “나는 어떻게 기억할 것 같은데” 묻는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 목선이 이뻤던 사람. 어느 면에서 특히 사람관계에서 굉장히 대범했던 사람. 이 정도…….” “또 있네, 일관성 없음의 일관성을 가진 사람. ㅋㅋ” 라고 대답하고 “추상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기억되고 싶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미지는 너무 막연해.”하는 얘기를 더했다.
한 시간쯤 뒤, K의 방.
K에게 신학기 선물로 준비한 네 권의 책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물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 같아?”라고.
“이상한 사람” 예상외로 바로 답이 돌아왔다. 동그랗게 뜬 내 눈을 보고, “나쁜 뜻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특이함이라고 고쳐줄게!!”라며 “ ‘남쪽으로 튀어’에 나오는 아빠 같은, 중학교 때 그 책 읽으며 아빠랑 똑같다고 생각했어. 그 아저씨처럼 막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게…….” 하는 설명을 부친다. ‘K에게 비친 생소한 내 모습’을 처음으로 들었다. “생각은 비슷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용감하지 않아. 걸리는 것도 많은 사람이고.”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나는 K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추상이 아닌 구체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K말고 H씨 또 다른 가족, 친구, 지인들을……. 아무 관계없는 소설 속 한 문장 때문에 생각가지가 많이도 뻗어나간 주말이었다. ‘하긴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찌 타인이 나를 깨알같이 묘사할 수 있을까?’며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그들도 나도 덜 외롭지 않을까 하고.
나물밥, 달래양념장, 고추조림,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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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작년 이맘때였을 거야. 20대의 네게 “스승을 찾아 나서는 열정과 겸손, 용기”를 기도했던 게. 봄이다. 새로운 학기 시작이니, 다시 처음 얘기를 해주고 싶구나. 토요일 집에 오는 길, 날씨가 너무 따뜻해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고 그 길에서 사주풀이 할아버지한테 친구 00와 사주와 관상을 봤다는 얘길 들으며 ‘불안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 네 마음과는 다를 수 있어. 하지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궁금증 뒤편엔 알 수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재미로 보는 심심풀이일망정.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손에 잡히는 내일은 없고 경쟁은 치열하기에, 삶의 가치가 모두 ‘돈’으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천천히 삶을 사유하고 걷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너희들에게 “삶이란 본래 알 수 없기에 불안하게 느끼지만, 괜찮아! 청춘이니까, 어떤 삶이든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도전한다면…….” 하는 위로는 또 다른 성공을 향한 채찍질 일수 있겠다 ‘잠시 울림이 있을 수 있지만 열정과 겸손으로 진리를 구하고 기꺼이 스승을 찾아나서는 용기를 내게 하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희들이 그렇게 물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긍정하는 건 중요한 삶의 태도다. 또 자존감을 높이는 것, 자아 성찰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과잉은 때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친 자기 긍정과 성공 쫓기는 모든 게 ‘돈’으로 치환되는 세상에 대한 의문을 제어할 수 있다. 자아의 지나친 성장, 과잉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나를 내려놓는 배려, 타자성을 체험해야 하는 이유다.
<미나리와 느타리버섯 무침>
K야, 스승을 찾는다는 건 어떤 걸까?
너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고 기회를 마련해주는 사람을 구하는 걸까? 내 생각에 스승을 찾는다는 건, 묻는 것이다. 절대 진리를 묻든, 20대 네 삶의 가치와 길을 묻든, 단순한 네 고민을 묻든, 묻는 것이다. 삶이란 길에서는 질문이 있어야만 스승과 만날 수 있다. 스승은 너를 성공으로 이끌어주지도, 기회를 만들어 주지도 않지만 너의 질문에 답하고 너의 질문이 한 발짝 더 나가도록 이끌어주는 ‘이’란다. 질문과 대답이 있기에 스승과 제자, 요즘 말로 멘토와 멘티는 기본적으로 1:1관계다. 이 일대일의 관계가 꼭 교수나 유명인과의 관계는 아니다. 또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필요도 없다. 때론 고전의 한 구절이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주고 영원한 스승으로 자리매김 되기도 한다. 시장통 노인의 지혜 담긴 한마디가 너의 질문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물론 오래도록 깊게 교유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난다면 더 없는 복이겠지만. 이 또한 네가 애쓰지 않고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니다.
스승은 질문할 때만 만날 수 있다는 것, 본래 일대일 대면 관계라는 것, 무엇보다 겸손해야만 스승을 모실수 있다는 걸 명심하렴. 마지막으로 이 또한 집착하게 되면 가르침이 반감된다는 것도 잊지 말고.
많은 사람이 쉽게 ‘루저’가 되고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자아긍정과 자존은 모든 것의 원인이자 극복의 열쇠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잉은 금물이다. 만일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냐고 루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자아와 배려 사이 균형’ 그 속에서 묻고 스승을 만나라 대답하겠다. ‘시대와 불화’도 길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부디 겸손과 질문으로 스승을 대면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K야, 오늘도 행복하렴
요즘 너무 자주 포스팅 하는 것 같아 + 소연님 록군 뒤태공개에 필 받아
보너스로 K 옆태 공개합니다. ---> 이것도 딱 오늘까지만,
이거 허락받지 않은거라... 노파심에서.... 퍼가기 없기(굽신)
햇살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