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현대백화점 신촌점이라 불리는 백화점이 그레이스백화점이라 불리던 시절...
집앞에 큰 재래시장을 놔두고도 그리로 장을 보러다녔습니다.
집앞 재래시장이 물건 값은 싸지만, 특히 채소같은 것은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이스백화점은 채소값이 백화점치고는 그리 비싸지 않을 뿐더러, 아주 조금씩 먹을 만큼만 살 수 있어 버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싼 걸 많이 사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것과 비싸지만 조금 사서 알뜰하게 먹기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음식물쓰레기 적게 만들고, 주차도 재래시장보다 쉽고, 유일하게 장 볼 시간인 일요일엔 노는 집앞 시장 대신 그레이스백화점엘 다녔습니다.
그나마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올 때마다, 못마땅한 음성으로 "백화점 다녀왔냐"는 시어머님때문에 가지 않게 됐지만...

암튼 그레이스백화점 지하 슈퍼 다닐때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 지하 슈퍼앞에서 이런저런 먹거리 행사를 할 때마다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걸 사 먹기도 하고, 또 이것저것 사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죠.
그러던 어느날, 메밀가루와 무쇠팬을 파는 행사를 했습니다. 무쇠팬을 보는 순간 어찌나 갖고 싶던 지 별 생각없이 큼직한 팬을 골랐습니다.
좀 작은 걸로나 살껄...
그저 철솔로 잘 닦은 후 기름발라서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의외로 무겁고 조금만 물기가 남아있어도 녹이 슬어버리고...
또 부침개도 쩍쩍 들러붙기 일쑤고, 사이즈가 너무 커서 이 팬을 가스렌지에 올려놓으면 다른 냄비를 올리기 불편하고...
해서, 쓰다치우다를 반복하기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쓰기는 힘들고...
해서 보일러실에 쳐박아 두고, 새우 소금구이를 해먹을 때 한번씩 꺼내쓰곤 했어요.
그랬다가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혹시나' 이번엔 잘 쓸 수 있을 까하다가, '역시나' 들러붙는 군하고 치우고...
요새 봄맞이 대청소중입니다.
여기저기 '언젠가는 잘 쓸텐데...'하고 모아두고는 잘 쓰기는 커녕 쓸데도 없을 뿐더러 모아뒀단 사실까지 잊은 플라스틱 포장재며...
아이스크림집에서 얻어온 플라스틱 숟가락, 녹난 프라이팬 정리대, 헌 바구니 뭐 이런거 몽땅 정리중입니다.
이런 걸 정리하면서 다시 눈앞에 나타난 무쇠프라이팬...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줄까? 아냐, 놔두면 언제가는 꼭 쓸텐데...이렇게 갈등갈등하다가 창고에서 부엌으로 들였습니다.
또 철솔로 닦고, 물에 말린 후, 기름발라 두고...찬밥으로 누룽지만 2번 만들었는데...또다시 갈등중입니다.
다시 창고로 보내버릴까, 며칠 좀 참아볼까...너무 무겁고, 너무 크고...
주인 잘못만난 제 무쇠팬이 불쌍합니다. 주인만 제대로 만났으면, 사랑받고 살았을 텐데..
아..무쇠팬 뿐인가요..무쇠솥은 어떡하구요? 큰 거 작은 거 2개가 지금 어느 구석에서 쳐박혀서...주인 원망하고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