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 남편이 늙으면 구박한다는데..난 걱정 안해"
"왜요? 내가 구박하면 어쩌려구.."
"딸은 엄마를 보고 배운다는데, 장모님 보면 당신도 나한테 잘 할꺼니까"
"엄마?"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너무너무 잘 하시잖아"
맞아요, 정말 친정어머니 보면 아버지께 참 잘해요.
아버지가 버럭 화도 내고, 가끔 고함도 쳐서 미워죽겠다고 하시면서도 아버지 입성이며 먹거리 챙기는 걸보면 정말 잘하세요.
"아버지 밉다며? 미운데 뭘 이렇게 챙겨...해주지 마..."
이러며 짐짓 어긋짱을 놓아보면, 친정어머니 그러십니다.
"괜히 벌컥벌컥 화내는 거 보면 밉쌀스럽지만 그래도 늙고 병들고...불쌍하잖아...처량하고..."
"그러면서 왜 밉다고 해?"
"미운거는 미운거고.."
아마도 이게 50년 넘게 함께 사신 부부의 모습이겠죠?

저희 친정어머니, 정말 젊어서부터 참 아버지께 알뜰살뜰 내조하셨어요.
우리 삼남매 어렸을 때,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부하지도 않고, 소득도 높지 않을 때...
긴긴 겨울밤을 보내려면 저녁을 아무리 든든하게 먹어도 곧 출출해지곤 하죠.
그럴때 국수를 삶아서 김치넣고 비벼드리기도 하고, 메밀묵 무쳐 드리기도 하고...
그리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돼지족을 사다가 면도칼로 털을 벗겨낸 다음 삶아드리기도 했어요.
잘 삶아서 뜯기 좋게 잘라진 돼지족이 들어오면, 아버진 당신 입에 먼저 가져가시기 전에 자려고 누운 아이들 모두 깨워서 살이 많이 붙은 뼈 하나씩 쥐어 주시고 당신도 드셨죠..울 아버지...
돼지족도, 묵도 없는 날의 밤참은...
잘 익은 김장김치를 척척 썰어서 한 보시기 수북하게 담고, 두부 한모를 더운물에 넣어 따끈하게 데운 것이었어요.
전 원래 김치도 잘 안먹고, 두부는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이렇게 먹는 두부는 너무 맛있어서 자려고 누웠다가도 두부가 들어오면 후다닥 일어나서 잽싸게 젓가락을 집곤 했어요.
저희 집 김장김치가 아주 맛있게 익었어요.
색깔도 이쁘고, 맛도 아주 시원하고...맛있는 김장김치를 보니 아버지의 밤참이 생각나서 오늘 저녁 따끈하게 데운 두부 김치에 싸먹었어요.
사십몇년전 후암동의 일본식 이층집에 살던 제 유년시절의 겨울밤들을 그리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