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역사모임 가는 날, 만약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음악회가 있다면 점심 식사후에 영화 한 편 보고
강남 교보에서 새로 나온 책 구경하고, 서초동에 가면 딱 좋겠다 그렇게 대강 하루 코스를 정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음악회 장소가 금호 아트홀이라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어서 박노해 사진전
그리고 학고재의 전시를 보면 딱 맞겠다 싶더라고요.
만약 영화관이었다면 캘리님은 집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텐데 사진전과 학고재에 갈 생각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나도 하고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처음 그의 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본명은 다른 이름이고 노동 해방의 그 날까지
그런 의미를 담은 필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몸 쓰는 일에 서툰 저는 육체노동에 대한 상당한 기피
증세가 있어서 반복적으로 일해야 하는 공장 노동이 농작물을 키우는 농사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까, 더구나 농업은 손수 키운 작물에서 생명이 자라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공장노동은 결과물이 자신의 것도 아닌, 참으로 험한 일이 아닐까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그들에 대해서 마음속에 담고 생각할 수 있는 강력한 시에
마음속에 폭풍이 일었거든요.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해도 그들 세계에 대해서 도망가지 않고
고민하게 했던 시인, 그래서 제겐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사노맹 사건으로 오랫동안 수감되었던 그가 출소하고 나서 낸 에세이집에서 그가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했구나, 그렇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들로부터는 일종의 변절? 혹은 나이브하게 변한 것이 아닌가
오해받기 딱 맞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했지요. 그렇지만 그 뒤론 그에 대해서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날 나눔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서 활동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고 선언하고 대학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김예슬씨가 그 뒤 활동하는 공간이 나눔문화라는
것을 알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진심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지금 나는 내가 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그러니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뒤론 발걸음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그 속의 이야기는 남아있었던 차에
신문에서 사진전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침 지난 목요일 역사시간에 현대사속의 아프리카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서구인의 시각으로 쓴 아프리카
이야기와 박노해의 이야기로 서술된 아프리카는 과연 이 곳이 같은 곳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그러니 역사는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노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보니 무두질을 하는 장면이더라고요.
이 사진전에서 사진과 글의 절묘한 어울림이 다른 사진전과는 사뭇 다른 점이었습니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사진을 찍었노라는 시인의 말처럼 빛으로 쓴 경애의 시라는 말이 딱 맞는 전시였어요.
그래서 사진과 더불어 글을 읽느라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 사진을 보느라 다른 날보다 훨씬 전시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전시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맞은 편의 사진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맞은 편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겹쳐서 묘한
사진이 되고 말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것을 잡아서 표현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 공간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철로변의 노점상, 나무 그늘 아래의 카페, 시장,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라고 부를 수 없지만 놀이 공간이 되는 곳
이렇게 공간이 이용되는 방식이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머리속에 형성한 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하는
곳이기도 했지요.

수단에서 시인에게 들어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한 수다니, -수단의 여성인지 수단의 어머니란 뜻인지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라고 하네요. 낯선 사람에게 권하는 차 한 잔의 의미..

어제 그랜드 시네마 앞에서 영화상영 프로그램을 바라보다가 두 편의 새로운 영화 정보를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축구로 하나는 악기로 아프리카에서 고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 두 사람의 한국인과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사진전에서도 축구공이 단순히 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삶에의 끈이 되는 혹은
삶의 생명력을 자극하는 그런 도구로 그려져 있더라고요.





전시장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각각의 표정을 찍어보고 싶었으나 결레가 되지
않아야 해서 조심스럽게 찍었지요.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장 골랐습니다.
사진전시장 안에서 만난 마음을 뒤흔들거나 감동을 주는 사진들, 안쓰러운 마음에 차마 발길을 옮기기
힘든 표정의 사람들, 아 거기가 바로 역사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로구나 ,아 여기가 바로 문병의
시작점이네 이렇게 놀라서 다시 다가가게 만든 사진들.이야기가 넘쳐 흘러 한 번에 다 소개하기엔
무리가 있네요. 밤에 들어와서 다시 찬찬히 한 번 더 보고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네요.
주말에 어디갈까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아니면 친구와 함께, 아니면 혼자서
사진속의 사람들을 만나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