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이 되면 아무래도 목요일 수업 준비를 위해서 그림에 관한 책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냉장고 문을 열다가 잠깐 !! 멈추고 문을 자세히 보게 되지요.
사실 문을 본다기 보다는 (냉장고 문이 보물도 아닌데 물끄러미 보고 있을리는 없으니 ) 문위에 붙여 있는
자석을 보는 것이지요.
자석안의 그림들, 연말에 미술관에 갈 때마다 하나씩 둘씩 모은 것이 늘어서 다양한 화가들을 그 위에서
만날 수 있지요. 버클리 식으로 말하면 자석이 제게 매일 존재하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거의 사물처럼 아니 공기처럼 붙어 있다가 수요일 밤, 목요일 아침, 목요일 오후 이런 식으로 그림을
자세히 보거나 그림에 관한 책을 읽은 날, 그 그림들이 제게 말을 거는 참 희안한 경험을 하는 것이지요.

입안이 마르는 기분이 들어서 레모네이드 한 잔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다가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고
마침 연주되고 있는 러시안 레전드 시리즈중의 바이올린 소리에 끌려 러시아 화가 그림을 찾아보게 되네요.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화가 Alexej Jawlensky
물론 이 화가의 그림을 보려고 일부러 검색한 것이 아니고 냉장고앞에서 바라본 칸딘스키 후앙 미로
고야, 오늘은 유난히 바이올린 소리도 잘 내서 기분도 좋으니까 음악을 연상시키는 칸딘스키나 클레의 그림을
볼까 하고 들어왔지만 그 낯선 이름에 끌려서 그의 그림을 고르게 된 겁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제 호수님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사진이 올라오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림 보는 일이
더 좋다고요. 그림보는 일이 좋다는 사람을 만나면 공연히 제 기분도 좋아집니다. 무엇인가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 촉발하는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간다는 것

오늘 아침 불어 시간, 10분 늦게 시작해서 딱 30분 수업을 했지만 오늘 날 보다 밀도 높은 수업이 되었지요.
왜일까? 갑자기 의식이 될 정도였는데, 생각해보니 길담에서의 허들이 높은 수업을 따라 가기 위해
그동안 약 한 달간 매일 매일 상당한 시간을 들이부어가면서 마리포사님과 서로 격려하면서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네요. 그 효과가 수업에서 같은 텍스트를 읽고 설명하는데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저도 느끼고 함께 수업하는 사람들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와중에 마리포사님이 제안을 합니다. 다른 두 사람에게 최초보 프랑스어란 책을 읽어보니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
시간을 맞추어서 모여서 스터디 하자고. 아니 처음에는 불어 공부 하자고 몇 번을 권해도 이리 빼고
저리 빼면서 재던 사람이 스스로 스터디를 만들어서 하자고 하다니, 멤버들끼리 얼마나 웃었던지요!!
아직 구체적인 날짜.,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 수업 시간에 광고를 했으니 함께 시작할 사람들이
생기겠지요? 만약 불어 공부에 관한 글을 읽고 나도 하고 싶었는데 이미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함께 하면 어떨까요?
동화가 아닌 어린이용 불어책을 구할 수 있다면 하고 속으로만 바라고 있었는데 어제 우연히 지혜나무님께
그녀가 출판사에 근무하더 시절 볼로냐 책 전시회에 가서 DA DA 란 이름의 어린이 월간지를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보여서 물경 20권이나 사 들고 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티스를 설명한다면 한 권 전체에 다양한 주제를 담아서 나중에는 아이들이 그 기법으로 스스로
작업을 해 볼 수 있는 것까지 수록되어 있다고요. 나중에 엄마가 된 그녀는 어린 딸과 그 책을 넘기면서
즐겁게 놀고 가끔은 그 안의 기법을 따라서 작업을 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연히
한 두 권 빌려달라고 했더니 마티스와 렘브란트를 들고 왔더군요.
프랑스어를 문법을 알기 위해서만 할 필요는 물론 없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 구성을 알게 된다 해도
좀 더 언어에 대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글을 읽을 수 없다면 한 때의 호기심으로 끝나기 쉬운 법인데
이런 식의 책을 만나니 바로 이것이다 싶더라고요.
수태고지에 관한 글을 오전 중에 읽어서 그럴까요? 이런 식의 주고 받음에 대한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만을 먹거나 보거나 들어야 한다에서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을 펼치고
필요한 것을 나누고 ,자신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아주 귀하게 쓰일 것들을 밖으로
내놓고 ,작은 출발이지만 그것을 닫힌 구조가 아니라 열린 구조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것들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지 러시아인 이름이란 이유로 선택한 화가, 그런데 강렬한 색채가 지금의 제 기분을 대변해주는
제대로 된 선택이 된 것도 즐거운 ,이상할 정도로 여러가지가 딱 맞아떨어지는 시간이 물흐르듯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