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키면 오히려 못 하고, 안 할 텐데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굴 원망도 못하고....비록 몸은 고되지만 완성된 결과물을 보노라면 흐뭇해져서
또 그 흐뭇함에 중독되어 저의 무수리 행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말부터 그제 어제까지... 퇴근하고 새벽까지 주방에서 시간을 보냈나 봅니다.
빌려 놓은 비디오도 뒷전이고, 사놓은 책, 아이 숙제, 준비물 확인...
다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네요.
문득 오늘 아침엔 이러면 안 된다는 반성을 하면서 글 올려 봅니다.*^^*.

그저께 파김치 담았어요.
며칠 전 깐 파 작은 단, 두 단을 사서 파김치를 만들었더랍니다.
남편과 딸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단 사흘만에 매진사태가 벌어져
이번엔 작정하고 큰 단, 두 단을 사서 직접 다듬었습니다.
예전엔 항상 찹쌀풀을 쑤었는데 이젠 찬밥을 갈아 넣습니다.
찬밥을 갈아 넣고부터 제 파김치 맛이 좋아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깨끗이 씻어 놓은 파 머릿부분에 액젓을 뿌려서 숨 죽여 놓습니다.
숨죽은 파에서 액젓을 따라내고 찬밥 간 것과, 양파 두 개 간것, 다진 마늘, 고춧가루, 설탕, 다시다 조금을 넣어 버무립니다.
하얀 줄기 위주로 양념을 바르고 파란 부분은 한 묶음씩 덜어 통에 담을 때 쓰다듬듯이
한번씩 만져 줍니다.
먼젓번 파김치처럼 대박이 나와야 할텐데......부디 맛나게 익기를 바라며 통에 담았더니
파 3단이 이 김치 통 하나밖에 안 나옵니다.


그리고 중국식 오이김치도 만들었지요.
울집 식구들은 장아찌, 피클 ...이런 류를 잘 안 먹지만
한번 씩 오시는 여자 손님들이나 이웃들에게 드리면 아주 좋아 하셔서
떨어지면 만들곤 합니다.
휘님의 레시피로 만들고...제 입에도 맛있어요.
청오이로 만들어야 하는데 백오이를 샀더니
가운데 씨부분 잘라내고 보니 남은 과육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날씬쟁이 오이 김치가 되었다는......
오이 15개로 꿀 병으로 두 병 나왔어요.

어젯밤 고구마순 김치를 담았어요.
경빈마마님댁에서 맛 본 고구마순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자그만치 4단의 고구마순을 사다가 만들었나봅니다.
껍질은 시엄니께서 까 주셨는데....정말 지루 하셨겠어요.*^^*
씻어서 살짝 데친 후 역시 액젓으로 숨죽여 놓았다가
파김치 양념처럼 양념 만들어서 버무렸습니다.
아, 굴러다니는 아오리 하나 발견해서 갈아 넣었고, 양파랑 쪽파 잘라 넣었습니다.
고구마 줄기 양이 만만찮아 평소 사용하는 스텐 볼이 작아서
김장용 빨간 프라스틱 다라이 꺼내서 버무렸습니다.

무지 많아 보였는데.... 통에 담고 보니 역시 김치 통 하나가 채 안되는군요.
아침에 얼마나 익었을까 뚜껑을 열어보니 국물이 제법 자작하게 생겼네요.
전 국물 없이 양념 뻑뻑한 것을 원했는데....나름의 맛이 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양배추 물김치도 만들었죠.
벌써 세 번째로 만들어 보는 물김치입니다.
처음 지성조아님 레시피 접하고 신기해서 얼른
레시피대로 충실히 만들었더니...이 맛이 너무 좋았습니다.
시엄니도 양배추로 물김치라니? 신기해 하시며 맛있다 하시고...
그래서 두 번째는 사이다를 빼고 보통 물김치 담듯 풀물 끓여 식혀서 만들었더랬죠.
그런데 울 시엄니께서 먼젓번만 못하다 하시더군요.
앵배추가 좀 질기다고... 저는 뭐 그런대로 아삭아삭하니
씹을 만하고 국물이 사이다 넣었을 때 보다 맛있어서
괜찮다 했는데......이가 부실한 어른들껜 양배추 질긴 맛이 성가셨나 봅니다.
레시피를 보면서 왜 궂이 사이다를.... 싶었든 의문이 여기서 풀리더군요.
아마도 사이다의 탄산이 앵배추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나 봅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레시피대로 충실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천도 복숭아 통조림. 복사꽃님께서 알려 주셨죠.
복숭아철 끝나기 전 만들어 두려고 바쁜 와중에 만들었답니다.
천도 복숭아 15개가 겨우 이 유자차 병 두 개로 줄었네요.
설탕을 2:1로 해서 좀 달게 되었어요.
짬나면 좀 더 만들어 두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 봅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이건 만들어 둔지 조금 된 놈입니다만
토요일 저녁 먹으러 왔던 후배 둘이 하도 맛있어 하기에 선보여 드립니다.
익지 않은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피클입니다.
고은옥님께서 알려 주셔서 따라 해 본 것인데
저야 워낙 모든 걸 맛있어 하는 입맛을 가졌기에
후배들의 입을 빌어 검증을 받았습니다.
후배들이 맛있다고 이놈만 집어 먹길래 조금씩 싸 주었더니
그나마 적은 양이 얼마 남지 않아 지금 파란 토마토 섭외중입니다.
만드는 법은 오일 피클과 동일하게. 파란 토마토 구할 수 있는 분이라면
꼭 한번 해보세요.

이번 토요일에 손님 몇분을 초대 했어요.
제가 담은 김치들이 맛나게 익어서 그분들 입에 잘 맞아야 할텐데...
은근 걱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