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다음 날인가? 장보기도 마땅찮던 때,
냉장고 뒤져 마른 오징어 밤새 물에 불려 고추장 볶음, 우엉채 조림,
김밥 싸고 남은 단무지 꼭짜서 고추가루와 깨 뿌렸다.
무밥해먹고 남은 무 커다랗게 잘라 넣고 끓인 어묵국으로 한 상.

지난 가을 말려두었던 호박, 다시 불려 들깨가루 넣고 말린호박들깨탕
--------------------------------------------------------------------------------------------
“형은 K에게 뭘 바래?”
“K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든가 이런 거”
“글쎄…….”
“제 앞가림하면 되지.
경제적으로 나보다 힘들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와 남자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일 없었으면 한다는 정도.”
“경제적으로 힘든 게 어때서? 부끄러워?”
“아니 짠하잖아, 그런 건 안 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나처럼 비정규직으로 이러고 살면 짠한 거야?”
“우리 부모님도 짠해야 하는 거야?”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잠시 멍하고 있는 사이)
“결국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잖아.
남들보다 돈 많이 벌고 권력도 있고 떵떵거리며 살기바라는 선배 욕심이야.”
“애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질까 걱정되면 형이 많이 벌어, 선배가 많이 벌어서 짠하지 않게 주면 되겠네.”
“그런가? 내 욕심일까? 니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짠한 건 몰라도 부모님은 걱정 하시지 않겠냐?”
“그렇지! 자 한 잔 해”
“남자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일 없었으면 한다는 거, 그 건 맘에 드네.
그거 아주 못난 짓이거든. 암 그런 일은 없어야지”
“건배!”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입시철이기 때문인지 어쩌다보니 애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고
뒤풀이 술자리에서 좀 돌발로 터져 나온 얘기다.
그런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삶을 살지 아직 모른다. 아니 사실 아이와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내 맘으로 아이 삶을 경제 조건만으로 재단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혹 내 욕심은 아닌지.
들 때는 몰라도 내려놓긴 힘들다는 욕심, 허리가 휘도록 무거운 줄도 모르고 잔뜩 짊어지고
‘밥 한 술 더 뜨라’는 부모 마음인 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한테 얘기하던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내게 해야겠다.
“지금 욕심을 버려야 내일 다시 어리석어지더라도 짊어질 거 아니냐.”고.


후라이팬에 토마토 구워 올리브유에 한번 굴려주고 파마산 치즈가루, 후추 얹었다.
다음엔 뭔가 더 얹어봐야겠다. 향이 있는 풀이라면 더 좋겠다.
연근을 후라이팬에 굽다 양송이 버섯 넣었더니 버섯물 때문에 저리 기름 두른 것처럼 보인다.
좀 촉촉해졌지만 아삭한 맛은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