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 4분, 알람이 울리고 ‘뭘 하나?’ 생각해보지만 멍~하니 떠오르는 게 없다.
심호흡 몇 번하고 일어난 시간이다.
불 켜고 부엌 창부터 연다. 습기 머금은 바람이 시원하게 밀려온다. 압력솥에 찬밥 있는데 애매하다.
H와 K 아침은 충분한데 H씨 도시락은 안 되겠다. 냉장고에 오래된 찬밥 있나 열어본다.
이런, 밥뿐 아니라 그릇그릇 담긴 반찬통들이 보인다.
일단 보이는 대로 주섬주섬 꺼내 놓고 찬 밥 한술 솥에 더 보태 약 불에 올렸다.
꽈리고추가지조림, 고구마줄기볶음, 다시마초무침, 깻잎절임이 있고 먹다 남은 풋고추가 보인다.
‘과유불급, 찬이 더 필요할 것 같진 않다.’ ‘그래도 뭘 좀 해야 하지 않나.’는 두 마음이 부딪친다.
망설이며 습관처럼 열어 본 김치냉장고 야채 칸에
조막만한 호박 한 조각, 가지, 호박잎, 고구마줄기, 버섯 따위가 보인다.
이것저것 넣고 건더기 많은 된장찌개라도 끓여야겠다. 호박 잎 쌈도 준비하고.
‘보이는 만큼 욕심낸다.’더니 결국 새 찬을 준비하자는 마음이 이겼다.

뚝배기에 물부터 올리고 고구마 줄기, 가지, 깍뚝 썬 호박을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버섯과 매운 청양고추 씨와 속 빼고 다져 넣었다.
가지와 호박이 충분히 물러질 때쯤 된장 풀고 불에서 내렸다.
호박 탓인지, 가지 탓인지 달큰한 된장 맛이 제대로 난다. 매운 맛은 생각보다 약하다.
찌개 준비하는 동안 데친 호박잎과 풋고추 접시에 담아내고 냉장고서 꺼낸 반찬들로 상을 미리 차렸다.
30분쯤 후면 적당히 찬기 가실 거고 뚝배기 속 찌개도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할 거다.
오늘은 찬 그릇이 여섯 개나 된다.



‘이걸 다 먹을 리 없고 또 얼마나 남기게 되려나.’
‘된장찌개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는 늦었다. 맛있게 먹어주길 바랄밖에.
참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음식이고 상차림이다.
어떤 날은 할 수 있는 한, 재료가 되는 대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리고 싶고
어떤 날은 간촐하게 양도 모자라다 싶게 내고 싶고 또 어떤 날은 만사 귀찮아 되는대로 먹이고 싶고
‘알약’하나로 밥을 대신할 날은 언제 오나 기다리기도 하는 게 상차림이려면.
항상 먹는 것에 대한 지나침을 경계하자 마음먹지만 그저 마음일 뿐.
어느 날은 한 점을 먹어도 최고급으로, 어느 날은 자극적인 맛만을 찾아
또 어느 날은 사람이냐 돼지냐 싶을 만큼 많이 먹게 되는 식탐을 어쩌지 못하고 산다. 어려운 문제다.

고기 육수나, 멸치 국물을 쓰지 않는 우리 집에선 다시마를 우려내 국물 요리에 쓰곤 한다.
은근한 불에 장시간 진하게 우려낸 다시마물이 시원하고 단백해서 좋긴 하지만
다시마 건져내 버릴 때면 아깝다는 생각을 넘어 죄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다시마초무침을 하곤 한다.
국물 우려내고 건진 다시마 적당한 길이로 잘게 잘라
식초와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을 넣고 들기름에 무친 거다.
매번 이렇게 무쳐 먹으면 좋으련만 재활용 꽃놀이도 한두 번이다.
2010년 7월 16일은 “된장찌개 달랑 하나했을 뿐인데 아침밥상은 화려했다.”고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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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6일

나는 밀가루 또는 면 종류 음식을 좋아한다.
부침개, 수제비, 국수 같은 걸 무지 좋아한다.
국수, 수제비는 하루 세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365일 먹는다 해도 "좋다" 할 거다.
나는 성인이 되기전에 피자나 파스타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피자는 딸하고 싸워가며 먹고 파스타도 딸만큼이나 좋아한다.
나는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밭일, 논일 중간에 새참이란 걸 먹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러가지 국수 요리 중 가장 좋하하는건 '맨 국수'다
맛난 어떤 국물에 말아 먹는 것도 무언가에 비벼먹는 것도 아닌
그냥 삶은 국수 가락 그대로인 맨 국수를 가장 좋아한다.
새 참으로 나온 맨국수 위에 김치 얹어 먹어 본 경험이 없는
내가 그걸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연유로 또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도 기억에 없다.
방학한 딸내미 데리고 서울 나들이 가신 어부인 기다리며 저녁에
국수 잔뜩 삶아 열무김치 얹어 먹었다. 맛났다.

열무김치 한 젓가락 국수 위에 척하니 얹어 후루루룩~ 최고로 맛나고 귀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