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어떻게 해, 김치 넣고 끓인 거지. 김칫국물 좀 넣고.”
“맛이 달라. 깊은 맛이 안나.”
“맛이 안 나긴 뭘 안나, 어제 먹고 오늘 또 먹으니 그렇지…….”
H씨와 전화로 한 얘기다.
입 짧은 것에 대한 약간의 타박이 있었다.
어제 퇴근해 보니 문제의 비지찌개 고스란히 남아있다.
싱거운데다 국물도 없고 빡빡하고 거칠기만 하다.
다시마 한 장 씻어 물과 함께 더 끓였다.

‘냄새는 제법 그럴 듯한데…….’ ‘간만 맞추면 되겠구먼.’
몇 해 묵은 조선간장 꺼내 반 술 정도 넣으니 간이 대충 맞는다.
파 좀 넣어 단 맛 보태면 맞춤이겠다 싶은데 파가 없다.
아쉬운 대로 양파라도 넣을까 하다 말았다. 살짝 심통이 나서.
H씨 아침에도 먹고 도시락 싸간다고 도토리묵 쑨단다.
묵 가루와 물 계량해 넣고 불에 올리기에 옆에서 숟가락 들고 서 있다가 휘휘 저어주며
얘기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이로 이어졌다.
“어제 전화 왔는데 울더라고.”
“왜”
“자퇴하고 싶데, 힘들다고”
“그러라고 해.”
“걔가 그럴 애가 아니잖아, 저녁 때 좀 잤나봐 그게 성질나서 하는 소리지.”
“어쩌겠어! 체력이 안 되는 걸 잘 땐 자야지.”


젓는 숟가락이 묵직해지고 폭폭거리며 작은 오름 모양으로 터졌다 꺼졌다는 반복하기에
소금으로 간하고 “들기름 넣을까?” 물으니 “그냥 올리브요.” 하기에
올리브유 넣어 몇 번 저어주다 적당한 크기의 볼에 따라 식혔다.
밤새 식고 굳어 아침이면 탱글탱글하니 쌉싸름한 도토리 맛을 내리라.
묵도 있고 재탕한 비지찌개도 있는 오늘 아침은 여유롭다.
하품하며 냉장고 여니 오이지무침도 있다. 오이지무침 미리 꺼내 놨다.
H씨는 냉장고서 바로 나온 찬 음식 싫어한다. 그래도 뭐 한 가지 더 해야지 싶어 호박 꺼냈다.
찬밥과 비지찌개 데우는 동안 채 썬 호박 후라이팬에 다진 마늘 넣고 소금 간해서 한소끔 볶아 냈다.


도마에 밤새 굳은 도토리 묵 엎으니, 탱글탱글 하니 반들반들 윤기 흐르는 게 잘 하면 얼굴 비치겠다.
도토리 묵 네 쪽으로 뚝 잘라 그 중 한 쪽 만 양념장에 야채 찢어 넣고 무쳤다.
나머지 묵은 주말에 먹고 그래도 남으면 말려야겠다.
“아침 괜찮았냐.” 대전에 내려 전화하니 “맛있었다.” 답하더라.
역시 젤 맛있는 밥은 해주는 밥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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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이에게 싸다준 도시락, 단호박 샐러드와 샌드위치
얼굴 좀 보러 갔더니 할 것 많다며 받아가며 정말 얼굴만 보여주고 가더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