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 목청껏 높이는 여기저기 “떨이”란 소리가 왁자하지만 파장이라 그런지 오히려 한가하다.
그늘 막과 천막 밑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는데,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몇 개씩 담긴 오이와 ‘2천원’이란 푯말이 보인다.
아삭하고 짭짤한 오이지무침이 떠오르며 신 침이 올라왔다.
2천원이라는 두부모가 너무 크다.
“혼자 먹는데 절반만 팔 수 있냐.” 물으니 두말 않고 절반 뚝 잘라주며 “천원.” 한다.
“콩나물도 오백원어치만 주세요.”

뭐니 뭐니 해도 장구경은 먹는 게 최고다. 수수부꾸미와 녹두전, 각종 튀김이 후끈한 열기를 더하고 있다.
‘장 국수나 한 그릇 먹을까.’ 하는데 부추전이 눈에 띈다.
“얼마예요.”
“한 장에 천원.”
“하나 주세요.”
“좀만 기다려요. 금방 데워줄게.”
“아니 그냥 주세요. 더워요.”
“가져가시게?”
“아뇨. 먹고 갈 거예요.”
“그래도 따뜻해야지, 좀만 앉아 있어”
어린 고추 잎과 애호박 파는 할머니에게 “고춧잎 어떻게 해요?” 물으니,
“이 천원” 하신다. “양이 많은데 천원어치만 주면 안돼요? 혼자 먹어서요.”
“안 많아, 삶으면 얼마 안 돼.” 하며 그냥 담으신다.
할 수없이 값 치르며 한주먹 더 담으시는 할머니께 덤은 안주셔도 된다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오이지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한 바퀴 휘 돌며 베주머니와 면 보자기도 사고 처음 그 자리에서 물건 차에 싣고 있는 아저씨께 오이 한바구니 샀다.

‘아~ 비!’하며 후드득거리는 소리에 잠결을 헤매다 벌떡 일어났다. 창문을 닫는다. 이미 비는 들이쳐 창틀과 바닥에 물기가 있다. 걸레로 물기 닦고 시계를 보니 5시다. 밝은 것도 어두운 것도 아닌 새벽녘, 다시 잠들긴 글렀다. 뒹굴뒹굴 책장 넘기는데 땀이 밴다. 한줄기 소나기가 퍼부은 아침은 덥다. 끈적거리며 은근한 땀이 나고 바람도 없다.
‘아침은 뭘 먹나?’ 우선 콩나물 꺼내 씻는다. 5백 원어치도 많다. 반쯤만 꺼내 씻는데 콩나물 길이가 길다. 지난 번 콩나물 냉채 준비할 때 마트서 긴 콩나물 찾던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침은 콩나물김치국밥이다. 날도 덥고 끈적거리는데 ‘이열치열이라고 이왕에 땀나는 거 콧잔등부터 확 흘려보자.’

냄비가 작을 듯해 양은 양푼에 콩나물과 김치, 적당량의 물을 넣고 끓였다. 김치 익는 냄새가 날 때쯤 다진 마늘 넣고 소금으로 간 맞췄다. 별다른 양념도 없고 맹물 넣고 끓여서 그런지 국물 맛이 별로다. ‘다시마라도 넣을 걸…….’ 후회는 늦었다. 궁여지책으로 신김치국물 한 국자 보태고 두부 좀 넣고 아예 찬밥도 넣어 팔팔 끓였다. 마지막엔 계란도 하나 얹어 ‘국밥집’ 흉내를 냈다.
김치국물이 그래도 좀 통했나보다. 밥도 좀 풀어져 걸쭉해진 게 제법 괜찮은 국밥이 됐다.
너무 뜨거워 콩나물과 김치부터 젓가락으로 건져 먹어가며 땀으로 목욕했다.

밤새 소금물에 절여진 오이, 색이 맘에 든다. 아침에 소금물 한 번 더 끓여 담아두고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