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별거를 하거나 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늘 바빠서요.
여느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처녀적엔 정말 예쁘셨어요
전 발끝도 못따라가요.
가끔 엄마 옛날 사진을 보곤 하는데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더군요.
이렇게 예쁜 얼굴이 어디로 가고
이젠 머리 희끗한 초로의 여인이 되어 아직도 장가못간 자식걱정에
편할 날이 없는 ...
(지난 토요일에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렸답니다.
시누이 가족들이랑 모두 모여 시끌벅적 재미있게 보냈어요.
어릴땐 집에 사람들 북적이는게 그렇게 싫더니
이젠 가족들 모이고 배아프게 웃고 떠드는게 참 재미있어요.
그맛에 더 열심히 잔치상을 차린답니다.)
엄마는 둘째며느리로 시집왔지만
아빠 하던일이 잘 안되어 우리 어릴적에 시골 할머니댁으로 이사하면서
사실상 외며늘 역할을 하고 살았어요
옛날 노인네들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가는게
모든걸 큰아들한테 올인하잖아요
큰아버지 시골에서 전답 팔아가며 대학공부시켰답니다.
그러나 뚜렷한 직업이 없이 서울살면서 평생을 안방지키며 사셨지요.
그나마 남은 전답 몰래몰래 팔아가며 생활하는동안
시골에선 새 전답임자가 찾아와서야 팔린줄아는 생활을...
제 부모님은 모두 지켜보며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았답니다.

( 두릅전, 당근카레전, 꼬막전... 어른들은 두릅전이 맛있다시네요.
아이들은 색깔예쁜 당근카레전에 먼저 손이 가고...
전 꼬막전이 제일 맛있었지만 너무 손이 많이가요.. 담엔 안할까봐요...^^)
큰엄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한번도 시골에 내려오지않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중풍으로 오랫동안 누워계시다 가시도록
엄마에게 고생한다 미안하다 한마디도 안했대요
그래서 늘 농사로 병수발로 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하고 동생들 돌보고
그러다 보면 밤이 되고 공부하다 잠들고...
엄마와의 추억은 고사하고 노느라 바쁜 유년시절도 없었던것같네요^^;;

(묵잡채 했어요. 쫄깃거리는 묵이 고기보다 더 맛있지요. 눈물나게 비싼 한우를
볶아 넣었더니 입에서 살살 녹고 맛도 좋은데 .... 너무 비싸요 ㅠ.ㅠ)
명절마다 다른 친구들은 전부 모여서 노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계시니 손님은 많고
일할사람은 없으니
어린시절부터 반 주부가 되어 죽어라 일해야 명절이 지나갔어요
제가 초등학교때부터 명절증후군이 있었다면 말 다했지요^^
전 정말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요.
입버릇처럼 일도 안하고 손에 물도 안묻히고
가정부가 해주는 밥 먹고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겠다 했지요
엄마는 웃고 말지만 그땐 정말 비장했답니다.

(궁중요리인 오이선은 미리 만들어 시원하게 두었다가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렸더니
상큼하고 맛있고... 게다가 예쁘니 처음 드시는분들은 아주 맛있다하셔서 좋았어요)
집에 손님이 오는것도 싫고
없는 살림에 우리도 못먹는 맛난 음식
손님들만 주는것도 싫었거든요
그렇게 자라고 직장다니며 독립하고
결혼이란걸 하게 되었는데
저도 몇년간 똑같이 시부모님 모시고
일에 바빠 동동거리며 살게 되더군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했는데
어느순간 돌아보니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엄마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제가 보였어요
날개달고 정말 멋지게 살줄 알았는데
저도 어쩔수 없이 반찬걱정하고 생활걱정하며 살게 되더라구요^^;;

(대하잣소스무침이에요. 맘에 드는 죽순캔을 찾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잣소스에 레몬즙을 첨가해서 고소하고 상큼한 맛이 나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다른건 다 제쳐두고
우리엄마한테 많은 복을 주셔서
엄마가 이젠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결혼을 하고 나서 시부모님 생신상을 처음 차려드리면서
어찌나 친정 부모님께 미안하던지...
신혼때는 솜씨가 없어
친정부모님 생신에 형제들이 모여도
거의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 먹고 헤어졌거든요.
이젠 저 혼자도 16명 식구들 잔치 음식 뚝딱 해내는 아줌마가 되었어요.
좀더 일찍 엄마 생신상도 차려드리고 평소 식사도 챙겨드리고 올걸...


(도라지나물, 죽순나물, 그리고 쑥부쟁이 된장무침 해서 나물 세가지...)
시어머니도 그에 못지않은 시집살이를 하셔서
그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면 하루는 얘기하실수 있대요.
그래서인지 시어머니를 뵈면 친정엄마처럼 마음이 짠해지지요.
다른건 몰라도 시어머니 생신상만큼은 절대 밖에서 안사먹고
제가 직접 차려드리자 다짐했었습니다.
아직은 잘 지켜가고 있네요.
다들 애쓴다며 밖에서 먹자고 하지만
정작 집에서 잘 차려진 밥상 내놓으면 너무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서 차리니까 힘이 드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큰시누가 준비해온 숭어와 전복회가 아직 오르지 못했군요.
밑반찬으로 꽃게무침과 조개젓도 있는데...
후식으로는 흑미, 백미절편 그리고 단호박식혜 만들어 내었어요.
단호박식혜 처음 해봤는데 너무 맛있어요. 그날 홈런날렸다니까요.
저 상 두개를 치우니 그릇이 싱크볼에 산을 이루고 있던데
동작빠른 작은 시누가 얼른 치워주기에 너무 고마웠어요.
큰시누는 맛난걸 많이 챙겨오니 이쁘고
작은시누는 부엌에 들락거리며 많이 도와주니 이뻐요.
모두 손위시누인데 제가 도움을 많이 받는답니다.)
이젠 가족이 가장 큰 재산이자 행복의 원천임을 압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을 했지만
엄마와 똑같이 식구들 불러모아 밥먹이길 즐기는 아줌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이쁜옷입고 내 몸치장에만 신경쓰던 아가씨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지요


근데 제일 맘에 안드는사람이 누군줄 아세요?
바로 나랑 같이 사는 "넘의아들"이에요.
세상에 잔치준비하느라 2박3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와중에 딸기잼 만들어 새끼들 준다고
딸기를 24키로나 사왔지 뭡니까!!!
아주 미워서 혼났어요. 딸기 상할까봐 부랴부랴 만들어서 병사다가 소독해서
채워넣었지요.
(시원한바람님!!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들통 타던지 말던지 약한 불에 올려두고
다른 일 해버렸어요. 다행히 많이 안탔더군요.)
제가 얼마나 바쁠지 정말 몰랐을까요?
그래서 식구들 모였을때 신랑 흉보며 덕분에 얻어먹는줄 알라고 큰소리치며
시누들 두병씩 나눠줬어요.ㅎㅎ
새로 담은 김치랑 불고기 재운거랑 전이랑 떡이랑 골고루 나눠 들려보내니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신랑아...
나의 숨은 안티였구나! 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