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서툴고, 낯가림도 심하고, 이야기도 서툰 사람입니다.
여기 고수님들께 많이 배울 것을 다짐하며, 설날 이야기 하나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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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은 유난히 두 분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설 앞두고 둘째 오라버니가 세상을 떠나서였을까,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명절이면 늘 푸짐하게 먹을거리를 준비하시던
두 분 어머님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어려운 일 치루고 설 전에 잡곡 세트까지 마치느라 피곤함을 핑계로 만두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차례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도 구실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전도 나물도 꼭 한 접시씩만 만들면서 어쩐지 혼자서도 얼굴이 벌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분 어머니은 정말 손이 크셨거든요.
결혼하고 첫번째 제사를 지내는 때였는데, 일 못하는 저를 배려해서 어머님이 내어주신 일감이
미나리를 다듬는 거였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작은 동산만한 미나리를 다듬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리도 저리고, 거머리가 나올까봐 걱정도 되고, 이렇게 많은 미나리 나물을 대체 누가 다 먹는다 말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 제사가 끝나자 어머님은 동네 분들을 모두 청하셨습니다.
푸짐한 상을 물리고 가시는 그 분들께 어머님은 무엇이라도 한 가지씩 싸주시더군요.
손님들 가시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저희에게도 어머님은 또 바리바리 음식을 꾸려주셨습니다.
인정이 넘치고 따뜻하고 푸근하다는 생각 이전에, 아이고나 힘들어 죽겠구나는 생각만 들어
그날 이후 한동안 미나리는 쳐다도 안 보았으니, 이제 생각하니 참 철딱서니도 없었습니다.
손이 크기는 친정 어머니도 마찬가지여서 설날이 다가오면 만두를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이 만드셨습니다.
오빠 넷 모두가 만두라면 귀신이었지요.
어머니는 꼭 고기만두를 만드셨습니다.
돼지고기 간 것에 두부와 숙주나물로 소를 하시는 거였는데, 그 맛이 정말로 빼어났습니다.
차레는 큰댁에서 지냈기에 설날 전날 저녁이 우리집 만두잔치였습니다.
어머니가 빚은 만두가 커다란 대나무 채반마다 가득했건만, 먹어도 먹어도 상을 떠날 줄 모르는
오빠들 때문에 어머니는 상 앞에 앉으실 사이도 없이 다시 만두를 빚으셔야 했지요.
설밑에 장을 보면서 가장 갈등을 한 것이 만두였습니다.
빚을까 말까, 여러 번 망설이다가 손으로 빚은 만두라고 써 있는 것을 사고 말았습니다.
고기만두 대신 김치만두를 샀습니다.
시어머님은 늘 김치만두를 만드셨거든요.
만두 봉지 집어드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습니다.
만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세상 떠난 두 오라버니 때문이었지요.
어쩌자고 그리 일찍 가셨는지...
그렇게 장에서 돌아와 차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꼭 한 접시씩 차례상에 올릴 것만 만들고 보니, 어쩐지 너무나 허전한 거였습니다.
전날 내려올 식구들과 나눌 갈비찜을 따로 조금 준비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집에 무엇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과연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가 재작년 김장 때 담근 짠지무였습니다.
지난해 연말에 히말라야 떠나기 전에 김장을 담그면서 독을 정리할 때 짠지무 남은 것 몇개를 건져
냉장고에 넣어두고 갔었지요.
그 짠지무를 물에 헹구어 무친 것을 시아주버님과 서방님이 아주 좋아하시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걸 만들었습니다.

짠지무 채써는 것을 보던 남편이 그랬습니다.
"아프다더니, 그건 뭐하러 만들어?"
"아주버니하고 도련님이 좋아하시잖아."
그것만으로 어쩐지 성이 안 차서 지난 여름 작은 언니가 보내주신 김을 꺼냈습니다.
4년 전 봄, 감곡 사시는 금주 아버님이 복숭아 나무 전정을 해주셨지요.
고마운 마음에 감곡 어느 음식점에서 점심을 대접했는데, 그 집의 김무침이 참 맛깔스러웠습니다.
김을 워낙이 좋아하는 지라, 주방에 가서 요리법을 물었습니다.
거기 아주머니 대답이 그랬습니다.
"그거 비결은 딴 거 없어요. 들기름을 듬뿍 쳐야 되요!"
햇기름은 아니지만, 시골에 온 후로는 들기름이야 떨어지지 않고 짜 먹고 있으니, 그걸 만들었지요.

그러고도 서운함이 남아, 하나 또 떠올렸습니다.
제사나 차례 때면 시어머님은 늘 북어양념구이를 준비하셨습니다.
큰 며느리에게도 맡기지 않고, 그 음식은 늘 당신께서 만드셨습니다.
제삿날이나 명절에 일을 할 때면 어머니는 동네에서 만든 밀주를 받아오셔서 그 북어양념구이와 내주셨습니다.
"기름내 마시면 머리 아프니, 막걸리 한 잔씩 마셔가면서 하려무나."
얼마 전 시어머니 제사상에 올렸던 북어를 꺼내 손질했습니다.
북어를 만지고 있는 저를 보고 남편이 또 물었습니다.
"그건 또 뭐하러 만들어?"
"어머님이 늘 만들어 주셨어. 내가 좋아한다고."

어머님처럼 솜씨좋게 굽는 것이 어려워, 그냥 조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관절염에 좋다고 하여, 장에 가는 길에 눈에 뜨이면 집어오는, 홍합을 끓였습니다.

설날 준비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마침 막걸리가 떨어져 맑은 물을 마셨습니다.
맑은 물은 누가 좋아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