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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또다른 생일상

| 조회수 : 21,516 | 추천수 : 108
작성일 : 2007-05-07 23:43:22
오늘은...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의 여든다섯번째 생신이셨습니다.
어머니랑 저희 삼남매의 작은 소망이 있었다면...오늘, 이번 생신만이라도 같이 보내주셨으면 했던 것인데...
그 3주를 못참고..그냥 가셨어요...
저희는 압니다, 아버지가 조금 일찍 가신 건 엄마에 대한 사랑때문이라고..하루라도 아내를 덜 고생시키려는 때문이라는 거..

돌아가신 후 맞는 첫번째 생신이라서, 엄마랑 저랑 둘이서 대전 국립현충원엘 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고속도로는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으로만 아는 사람인데...
이 얼마 만의 고속버스 여행인지.... 설레임 반, 걱정 반...




아침 9시10분 녹번역 플랫폼에서 엄마를 만나서 강남고속터미날에 가보니까, 9시50분.
10시에 출발하는 유성행 우등고속버스가 있어서 얼른 탔어요.
우등고속버스라는 걸 처음 타봤는데..좋던데요..의자와 의자 사이가 널찍하고 의자 등받이가 뒤로 확 젖혀지고..^^
타자마자 잠이 들어서 유성 다 가서 일어났어요.
내려보니, 12시5분.




유성터미널 근처에서 전복삼계탕을 먹었는데..1인분에 1만원이나 하는 그 삼계탕, 머리털 난 이후 그렇게 맛없는 삼계탕은 첨이었어요.
아기 전복 한마리가 얹혀져있다는 걸 빼놓고, 아무리 점수를 주려해도 줄 수 없었다는..
국물은 밍밍하고, 고기는 퍽퍽하고...ㅠㅠ...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나서, 유성에서 아버지 생신상을 준비했어요.
일요일 마다 재를 올리니까 전이니 나물이니 지지고 볶는 건 하지말자는 것이 어머니의 의견.
그래서, 내일이 어버이날이니까 우선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 사고...
(흰색 카네이션 바구니는 없네요..하는 수 없이 빨간 카네이션으로..)

생일케이크도 제일 쬐끄만 걸로 하나 샀습니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엘 들러서 가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호도과자를 사려고 했는데, 휴게소를 거치지 않아서,
대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찹쌀떡과 단팥빵, 그리고 소보로빵을 샀어요.

과일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바나나와 참외와 포도를 사고,
또 너무너무 좋아하시던 콜라와 담배도 샀어요.

아, 너무나 사랑하시던 커피는 제가 집에서 타가지고 갔구요.
커피를 타면서, "나, 설탕 더 달라!"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귀에 생생해서, 커피를 아주 꿀죽을 만들어갔어요.




생신상 준비를 다해가지고 택시를 타고 국립현충원엘 들어가니까, 2시10분쯤,
아직, 아버지 묘에는 석비가 세워지지 않았어요.
멀리 보이는, 미처 잔디가 자라지 못한, 목비가 즐비한 곳에 저희 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세요.

마침 대전청사의 조달청에 볼 일 보러 서울에서 내려온 오빠가 2시50분쯤 도착, 함께 상 차리고 아버지께 절을 올렸어요.
회사일때문에 함께 오지 못해 아쉬워하는 동생에게는 포토메일을 날려주는 쎈쑤!!
당근 고맙다는 문자도 받았죠!!




자리를 펴고, 아버지 앞에서 엄마랑 오빠랑 도란도란,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십년 태우시다가 불과 3,4년전 끊으셨던..담배도 두대나 드렸어요. 엄마의 승인하에..
엄마가, "여보 미안해, 담배 못피우게 하느라, 내가 각서도 받고, 그 각서 코팅해서 문에다 붙여놓고, 못되게 굴었지"하면서...
아버지랑 잠시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아버지, 현충일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니까..현충일 지나서 다시 올게요..○○이네가 이번 주말에 다녀갈거에요"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솔직히..발걸음은 잘 안 떨어지대요..
언제 석비가 세워지나, 어서어서 잔디가 좀 자랐으면..뭐 이런저런 생각에요...
그래도 오늘은 별로 안 울었어요.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햇볕이 잘 드는 좋은 곳에서 친구분들과 쉬고 계시는데...울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돌아오는 길은 잘못 나서면 길이 너무 막혀 고생힌다며 천천히 올라가자는 오빠,
서산쪽에 가서 낙조나 보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해서 차머리를 그쪽으로 돌렸는데...
해가 떨어지면서 구름속에 가려진데다가 대호방조제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도 저물어서,
낙조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삼길포에서 우럭회 먹고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겨우 귀가했어요.

하루 종일 차 타고 다녀서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아주 기쁩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이담에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갈란다" 하실 때 너무 먼 곳이 아닌가 했는데..
사실 멀다는 것도 자손들이 성묘가기 먼 곳일뿐, 아버지께서야 그곳에 계시는 것이 명예 아닌가 생각했는데..
역시 아버지 뜻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모시길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아버지가 잘 계신 걸 보고왔으니..저도 이제부터는 울지않고, 씩씩하게 잘 살려구요...
그리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냥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려구요...


3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들들맘
    '07.5.8 12:23 AM

    힘내세요
    눈물나요
    정말 힘내세요

  • 2. 랄랄라
    '07.5.8 12:29 AM

    ...아버님을 평안히 잘 모신 것 같아 좋네요. 힘 내세요..

  • 3. lorie
    '07.5.8 12:31 AM

    또다른 생일상이라셔서 궁금하여 로긴했더니,,,,
    샘 힘내세요...

  • 4. 깜찍이공주님
    '07.5.8 12:40 AM

    돌아가신 분의 생신날의 슬픔은 말로 다 못하지요
    내내 마음이 흐린 날이었을 선생님...기운 내세요

  • 5. 왕사미
    '07.5.8 12:48 AM

    묘비를 보니 괜시리 눈물이납니다...
    그래도 힘내세요~!!

  • 6. 코알라^&^
    '07.5.8 1:33 AM

    선생님....

  • 7. Blueberry
    '07.5.8 1:43 AM

    생신 며칠 앞두고 돌아가셔서
    더 안타까우셨겠어요..
    담배....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사시라고
    친정어머니께서도 덜 피우시라고 하셨을터인데
    친정아버님께서도 천국에서 담배연기 맡으시며
    그 마음 다 이해해주시고 계실것 같네요..

  • 8. Joanne
    '07.5.8 2:39 AM

    아버님께서도 그런 선생님 모습 보고 흐뭇해 하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 존경합니다.

  • 9. 아줌마
    '07.5.8 6:29 AM

    가슴이 싸~하네요
    그래도 처음 보다는 좀 안정이 되어 가지요
    그래도 순간 순간 울컥하며 저 밑바닥에 있는 아픔이 올라와 눈시울을 적실거예요
    참 좋은때에 나셨다가 좋은때에 가셨네요
    아버님 복이 많으셨던 분이시네요
    가신뒤에도 이만큼 생각 해주는 가족들이 있어서요

  • 10. 꽃봄비
    '07.5.8 7:04 AM

    선생님 올리는 글 읽을때마다 자꾸 눈물나요.
    어떤 마음이신가 조금은 느껴지기도 하구요.
    여러 분들의 위로와 격려에 작지만 저의 마음도 보탭니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아버님 얘기로 웃음꽃 피우는 어버이날 되길 바랄께요.

  • 11. 봄무지개
    '07.5.8 8:28 AM

    오늘 어버이날이라 더 눈물 나네요.
    살아계실때 정말 잘해드려야지 싶어요. 늘 맘만큼 안되지만..
    기운내시고, 힘내세요, 선생님..

  • 12. 아짐^^*
    '07.5.8 8:35 AM

    부모님..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나게 보고싶고 그리움 가득하지요..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 13. 느림의미학
    '07.5.8 8:43 AM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줄줄 흘리는 이유는 뭘까요...
    지난 주말에 엄마를 뵙고 왔어요.
    간경화에 골다공증이 심해서 무척 고통스러워 하시더군요.
    그렇게도 희생적이었고,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으셨었는데
    병마가 엄마를 변하게 하네요.

    선생님의 글은 항상 저를 채찍질해요.
    가족을 위해 기꺼이 맛있는 상을 차리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고...

    이기적인 저의 모습을 반성하며
    가정의 달인 이 때,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렵니다.

  • 14. 포도공주
    '07.5.8 9:00 AM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글을 읽으며 마음 한켠이 찡해져 옵니다.
    부모님 살아계실때 잘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구요.
    오늘이 어버이 날이네요. 오늘 뿐 아니라 이 마음이 일년 내내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의 마음에도 평안이 가득하길.. 특히 어머님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 힘드실 수도 있는데 늘 올려주셔서 감사하구요.

  • 15. 겨울미소
    '07.5.8 9:07 AM

    샘님 글 읽었었지만, 첨으로 답글 써봅니다.
    아픈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전 샘님이 부러워요. 제 아버지는 열살때 돌아가셔서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어느분이 그러시대요...부모님께 전화 잘 안드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살아계실거라고 생각하는거라구요...저희 동네 삼길포에서 회드시고 가셨다니...샘님글이 더욱 반갑습니다. ^^

  • 16. 산하
    '07.5.8 9:25 AM

    4년째인 울 어머님도 못 잃고 계신데
    오늘같은 날은 더 할 것 같네요

  • 17. 가브리엘라
    '07.5.8 9:41 AM

    가슴이 아려오네요.
    어버이날이라 더 부모님 생각나요.

  • 18. 핑크홀릭
    '07.5.8 10:53 AM

    저는 사후 화장을 찬성하는 사람인데... 이 글을 보니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네요~ 참 좋은 따님이세요~

  • 19. 미란다
    '07.5.8 11:49 AM

    근데 왜 제가 눈물이날까요?! ㅜㅜ

    눈으로 볼 수 없을뿐 분명 가까이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을것만 같아요...

    부모님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말로 표현 못하는 제 자신이 바보같네요

  • 20. 선찬엄마
    '07.5.8 1:17 PM

    글을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생각나네요.. 좀더 같이 계셨으면..
    이맘때면 항상생각납니다.. 너무 잘해주셨는데..
    선생님 힘내세요..파이팅!!

  • 21. 왕언냐*^^*
    '07.5.8 1:44 PM

    읽으면서...저두 자꾸 저희 아버님이 생각나고, 눈물납니다.
    정말 좋으신 분이였는데...
    너무 빠른 천국행으로 두고두고 아쉽고 그립답니다.

  • 22. 하얀자작나무
    '07.5.8 2:19 PM

    샘~
    글을 읽을 때마다 가끔 못되게 굴고 성질피는 제가 너무 부끄럽고
    아부지께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오늘만이 아니라 날마다 삶속에서 효도하면서 살도록 다짐해봐요.
    감사합니당~ ^^

  • 23. 기분좋은날
    '07.5.8 3:17 PM

    선생님,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픔없는 좋은곳에서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나마 어머님이 계시니 효도하실 기회가 남겨져있네요... 힘내세요~~~~~~~~~~

  • 24. 연다래
    '07.5.8 7:42 PM

    저도 다음번에 시부모님 계신 납골당 갈 때 평소 좋아하셨던 것 준비해서 가야겠어요.
    항상 제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거든요.

  • 25. 열쩡
    '07.5.9 10:22 AM

    막 울고싶어져요.
    저는 좋은 아버지를 갖지 못한게 큰 한인데
    저희 아버지도 그 못지 않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 저는 저렇게 못해요. 죄송합니다.

  • 26. 빨간풍선
    '07.5.9 10:50 AM

    저희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아버지 어제 뇌경색 초기라고 진단받으셨거든요.
    참 무뚝뚝하고 정없으신 분인데 나이드시면서 가끔 정겨운 말씀하시는게 생기셨어요.
    오늘도 통화하는데 아버지가 너희들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하시데요.
    우리 아버지 오래 사셔야 되는데....
    참 행복하게는 못사셨는데...
    선생님같은 효녀두신 아버님은 행복하셨을꺼에요..

  • 27. 산사랑
    '07.5.9 12:56 PM

    선생님글 보면서 효도가 왜이리 어려운일인지...-.-;;;;
    부모님한테 잘해드린 기억이 별로 없네요....정말 산 교육을 하고 계신것 같아요..(특히 저한테.....;;;;)
    이제부터라도 정말 잘해드려야지 다짐합니다..(진짜로...^^;;;;;)
    따지고 보면 사실날도 얼마 안남으신것 같은데....선생님은 진짜 효녀 효부시네요......
    남편께서 부인을 정말 잘 만나셨군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28. 썬!
    '07.5.9 2:38 PM

    항상 샘의 글을 보면서 효도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세여!

  • 29. 레먼라임
    '07.5.9 6:11 PM

    선생님의 긍정적이고 힘찬 모습에서 멋지셨을 선생님의
    아버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선생님 화이팅이에요.^^

  • 30. morihwa
    '07.5.9 6:32 PM

    생전에 커피와 콜라등을 좋아하셨나봐요.
    케잌과 더불어 나란히 있는 음식들...,어버님이 훌륭한 분이셨더군요.
    울 아버지 생각납니다.

  • 31. 모란꽃
    '07.5.9 8:23 PM

    두분이서 다정하게 다녀오신걸 그려보니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저도 담달 엄마 대전갈때 따라가 드릴까봐요....

  • 32. 강혜경
    '07.5.10 9:39 AM

    선생님...
    대전엘 다녀가셨군요.
    저희도 그날 그시간에 그곳을 지났는데....
    좋은곳에서 편안하실껍니다
    이렇게 생신 챙겨주는 딸이 있으니 행복하실듯~~
    항상 어머님 건강~~~챙겨주시길 바라면서~~

  • 33. 미스타손
    '07.6.7 9:05 PM

    넘..멎진분이세여..ㅋㅋㅋ
    사진보구..글보며
    저또한 부모님 생각을 한번 더해보는 시간이였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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