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그 숙제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수월하게...
우리 식구 들 먹을 밥, 국에 보리차까지 끓이고, 돼지고기 삶아놓고 집을 나선 건 오전 10시쯤.
오빠가 늦잠 자고 나타나서 이제쯤 배추를 가지러 갔으려니 하고 핸펀 때려보니...한 옥타브쯤 높은 엄마 목소리.
"엄마 어디야?"
"집이지!"
"벌써 배추 실어왔어?"
"그럼 김치냉장고까지 왔다, 언니들 다오고.."
어제 파랑 갓 다듬는데, 엄마가 그러시네요. 내년에는 아무래도 김치냉장고를 바꿔야겠다고. 용량이 너무 작아서 안되겠다고.
"그럴 게 뭐 있어, 바꾸려면 당장 바꾸지.."
엄마, 올해부터는 독에다 김치 안넣으시겠대요. 넣는 것도 힘들고 꺼내 먹는 것도 힘들고 다 먹은 독 닦는 것도 힘들고.
왜 안그렇겠어요? 연세가 얼만데..
그래 그래 그럽시다, 엄마 편한대로 하고 삽시다, 했던 터라,
"엄마, 독에다가도 안넣겠다며, 아무개네(동생네) 꺼까지 여기서 보관해야하는데...그냥 사요..."
해서 어제 불광동 하이마트에서 딤채 156ℓ짜리..저지르셨어요. 오늘 오후에 가져다 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아침부터 온 모양이더라구요.
차라리 잘됐죠, 김치속 넣기 전에 제 자리 잡아두고 김치통도 씻어 말리고...

절여서 씻어 온 배추는, 역시 기술자들 솜씨라 다르네요, 너무너무 잘 절였어요, 엄마도 이렇게는 못 절일 것 같다며, 맘에 들어 하시네요.
게다가 주문하면서 크고 작은 포기를 일률적으로 한포기씩 치면...
작은 포기가 많이 걸리면 손해 아닌 가, 포기가 작으면 김치분량이 적지 않으려나...하고 걱정했는데,
그 인심좋은 농장 안주인이 작은 건 2포기를 한포기로 치더라는 거에요, 글쎄.
그래서 60포기를 샀지만 실제로는 80포기가 넘는다는 게 오빠 얘기!
큰 통에 무채 버무리는 건 오빠 담당, 울 오빠 "김치가 짭짤할거야, 내 땀이 들어갔거덩..."하며 농담해가며 버무려줬어요.
오빠가 아주 큰 일 했죠!!
바빠서 아예 못올거라고 생각했던 큰 올케가 등장해서 얼마나 환영을 받았는지...
사촌 언니 둘, 큰 올케, 그리고 저..이렇게 넷이 속 넣고, 엄마는 이것저것 감독하고, 작은 올케는 밥 당번했어요.
속 넣으며 "에구 힘들어, 에구 허리야"하고 징징거리고 보니,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언니들도 아무소리 안하고 일하는 거 있죠??
에구 민망해라...
80포기지만 속 넣기 시작해서 2시간 반쯤..암튼 점심도 먹기 전에 끝났어요. 이렇게 수월하게 김장한 게 첨이에요.
우리 집, 그 큰 김치통으로 다섯개, 오빠네 동양매직 김치냉장고 김치통으로 다섯개,
엄마네 만도 김치냉장고 통으로 여섯개, 그리고 동생네 바로 가져갈 타파김치통으로 한개...
이렇게 담아놓고 보니 어찌나 뿌듯한지...
김치를 담그면서 보니까 배추가 맛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은 건 2포기를 1포기로 쳐주니까 값도 그리 비싸지 않은 것 같구요.
무엇보다, 일이 없네요..쓰레기도 없구요...
해서..연락처 가르쳐드릴게요, 실은 올 김장 다 먹어보고, 검증이 끝난 후 내년 가을에나 이곳 연락처 알려드리려고 했거든요.
부부농원이에요, 일영유원지 앞에 있구요...전화는 031- 855-5565, 031-855-5094에요.
배추는 한포기에 2천5백원이고, 절여서 씻어주면 1천원씩 더받아요.
무채는 썰어놓은 거 한 봉지에 1만원..저희 집은 4봉지 했는데..그 분량은 그 농장 안주인이 가르쳐 줘요.
또 아예 거기서 버무려 오려면 고춧가루 젓갈 마늘 생강 새우 등등 집에서 가지고 가면 되요.
준비가 안되어있으면 그냥 가도 되요. 거기에도 깨끗이 씻어 썰어놓고 파는 양념들이 있어요.
이때 거기 계시는 아주머니들께 속 넣어달라고 부탁할 경우 포기당 1천원씩 더 내면 돼요.
울 엄마...첨엔 절인 배추 포기당 3천5백원이라서 비싸다 싶었는데..아주 만족스럽다고 하시네요.
포기를 더 받은데다가 공임에, 소금값에 생각하면 비싼데 아니라며...
내년에는 아예 거기 가서 하기로 했어요.
바쁜 올케들이랑 오빠랑 김장하라고 불러들이지 않고, 엄마랑 저랑 둘이서 하기로 했답니다.
암튼...식량농사 끝내고 나니..홀가분하고, 뿌듯하고...걱정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