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김장, 딴 집보다 좀 늦는 편이에요, 꼭 11월 마지막주나 12월 첫째주에 하거든요.
올해는 12월4~5일을 김장데이로 잡았습니다. 여기서 잠깐...저희 집 김장 설명 들어갑니다.
저희 집 김장은 친정집에서 네 집 김치, 엄마네 오빠네 남동생네 그리고 저희꺼...이렇게 네 집 김치 합니다.
이렇다 보니, 많으면 80포기(간혹 100포기), 적어봤자 50포기에요.
옛날에 한 접씩 담그던 때에 비해서 굉장히 적어진 거지만..그래도 다른 집들에 비하면 많은 편이죠. 배추가 많으면 더 하기 힘들잖아요.
김치는 엄마네 장독대 아래 지하실의 독에서 잘 익혀, 맛이 들면 각자 집으로 퍼나릅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특이한 양념 때문인지 저희 집 김치 시원하고 맛있다고들 합니다.

엄마- 총지휘 감독. 배추 사기, 배추 절이기, 절인 배추 뒤집기, 양념 씻고 썰기, 김치독에 김치 차곡차곡 담기.
칠순이 훨씬 넘은 노인인데 일이 너무 많죠?
흑흑, 불쌍한 우리 엄마...딸이 부실한 관계로...흑흑..
저- 배추 사기, 배추 절이기, 배추 씻기, 씻은 배추 나르기, (어쩌다) 속넣기, 속 넣은 김치 지하실까지 나르기
큰올케- 되는대로 하기(이맘때 대학원 시험이다 뭐다 해서 바쁩니다. 그래서 올 수 있으면 오고 안되면 못오고 그럽니다)
오빠- 무 씻기, 무채썰기, 속 버무리기(자기 아내 대신 일하는데 넘넘 잘합니다. 우리 오빠 없으면 김장 못합니다)
작은 올케- 김장하는 사람들 밥해주고 커피 타주고 과일깎아주기, 김장 후 큰 그릇 설거지하기.
(나보다 일이 쉽다고, 나는 추운데 밖에서 돌리고 작은 며느리는 안에다 모셔놨다고 하면 울 엄마 펄펄 뜁니다, 작은 며느리 고생많다고. 히~~)
사촌언니 둘- 배추 씻기, 속 넣기
여기서 잠깐 변명을 하자면, 제 일이 제일 쉬운 것 같은데..아닙니다.
까다롭게 고르는 엄마, 차에 태워가지고 다니며 배추도 사야하고, 간혹 재수없이 걸리면 제 차에 배추를 사서 싣고 오기도 합니다.
배추를 사오면 바로 절이기 들어갑니다. 이것도 장난이 아닌데다가, 씻는 것도 장난이 아닙니다. 엄마네집 단독주택이거든요.
햇살이라도 있을 때는 괜찮은데..어둑어둑할때 배추 다듬어서 절이려면 여간 추운게 아니에요.
게다가 올케들은 김장 당일에만 오면 되는데 전 보통 사흘씩 불려 다닙니다.
그리고 양동이에 가득 담긴 김치를 낑낑 대며 장독대 지하실까지 가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구요.
암튼 해마다 이랬는데...낄낄..올해는 아주 거저 먹게 생겼습니다.
오늘 엄마 아버지 모시고 어딜 좀 다녀오는 길에, 일영 근처 길가 밭에서 사람들이 배추를 절이고 있는거에요.
엄마가 거길 좀 가봤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지나쳐온 길을 되돌아서 가보니, 무슨 농장이었어요.
근데 너무 재밌는게..거기서, 그곳 큰 비닐하우스에서 김장들을 한다는 거에요.
배추도 팔고, 배추 절여서도 팔고, 또 삯을 내면 아예 속까지 넣어준대요, 주인은 김치 속 버무릴 때 옆에서 맛만 보면 된다는 거에요.
세상에, 말만 들었는데..그런 집을 우연히도 찾아내다니..., 오늘도 멋쟁이 아주머니들이 김장해서 가지고가느라 북새통이었습니다.
올해 배추값이 싸서 요새 한포기에 1천원이라고 하는데..이 집은 1포기에 2천5백원이래요.
다른 곳과는 달리 120일배추인데다가 퇴비로 키운 배추라는 거에요.
삯을 더 내면 배추를 절여서 아예 씻어서 준다는데 그건 포기당 1천원씩 더 내야하구요...
속 넣어주는 공임은 또 포기당 1천원이래요.
제 맘같아서는 다음 주중에..올케들 부를 것도 없이, 엄마랑 저랑 둘이 와서 해가지고 가면 좋겠는데...
배추도 비싼데다가, 그렇게 하면 꽤 비용이 많이 먹히게 되니까 그렇게 하자고 못 권하겠더라구요.
물론 자식들이 김장값을 넉넉히 드리기는 하지만..그래도 엄마도 좀 남는 게 있어야 재미가 있을 거 아니에요??
"혜경아, 담가 가는 건 그렇고...배추만 절여달라고 해볼까? 배추가 맛있다"
아, 이때 저 표정관리 하느라 혼났습니다.
"그러실래요? 값은 만만치 않은데..."
"그러지 뭐, 배추 절이고 씻는 게 얼마나 큰 일인데.."
60포기 절여달라고 주문하는데..주문 받는 아저씨가 "무는 안하세요?"하시는 거에요.
무도 아예 채까지 썰어준대요. 그래서 무까지 주문했어요. 울 오빠도 이번 김장 날로 먹을 듯..킬킬...
(오빠, 오빠도 신나지?? 근데 오빠가 배추 가질러 가야돼, 일욜 아침에..)
돌아오는 길에..입이 간질간질해서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어요..
"엄마 김혜경 땡 떴다. 이번 김장 거저 먹는다..낄낄..."
돈은 좀 많이 들겠지만...이번 김장은 즐 김~~이 될 것 같네요.
하하..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