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드디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여러번의 변경후에 서울 시립미술관에 갔습니다.
이번주가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토요일 밤 자정까지도 연장한다는 소식을 여기 저기 붙여 놓았네요.


방학이기도 하고 거의 막바지이기도 해서 인파가 얼마나 몰릴지 걱정이었지만 이렇게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엄마도 있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보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되지만요.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경우 일주일에 하루, 혹은 어렵다면 이주일, 그것도 어렵다면 한 달에 하루는
자신을 위한 휴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딸아이가 엄마가 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충전을 위해서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요. 일주일에 하루, 제가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같은 장소인데도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느껴지는 ...

이번 전시에서 손, 신의 손, 악마의 손, 연인의 손, 다양한 손이 전시되었더군요.
글씨 쓰는 손, 때리는 손, 아픈 사람을 감싸 주는 손, 무엇인가를 빚는 손, 다양한 손이 더 있을 수 있겠지요?
연인만이 아니라 친구와 마주 잡는 손, 동생을 돌보는 손, 음식을 만드는 손, 악기를 다루는 손, 손이 하는
무수하게 많은 일들, 요즘 손가락에 피로를 느끼면서 더욱 더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곱살 여덟삶 정도 되어 보이는 딸과 동행한 한 여성은 계속 아이에게 제목을 설명해주고 있더군요.
오히려 아이가 질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냥 보도록 하면 어떨까? 마음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생각을 내놓고
말하긴 어려웠습니다.
중학생 정도의 한 여자 아이가 아버지랑 보러 와서 절망이란 제목의 작품앞에서 무슨 절망이 느껴지냐고
마치 스트레칭 한 것 같다고 웃기도 하고, 다른 작품앞에서는 와 야하다고 소리 내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고 이런 반응자체를 즐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두 번 전시장을
돌아보았지요.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은 춤 동작을 다룬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니진스키의 작은 조각상에서
눈길을 떼기가 어려웠던 시간, 이상하게 요즘 몸을 움직이는 일에 신바람이 나서 평생 제대로 모르고 살았던
제 몸에 대해서 관찰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 일까요?

신화속의 인물 다나이드부터 단테의 신곡,그 속의 우골리노,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 그리고 현대의 이사도라
덩컨에 이르기까지, 로뎅을 보러 갔다가 만난 인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끌리던 것은 역시 단테의
신곡이네요.

지난 번 파리에서 보람이가 먹고 싶어하던 음식때문에 결국 로뎅 미술관에는 못 들르고 말았는데
이 곳에서 새롭게 만난 작품들을 통해 아쉬움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조지 발란신의 안무로 만들어진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기로 해서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디자인전시, 평소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 전시에 시선이 간 것은 역시 건축사를 강의하는 지혜나무 덕분이
아닐까 싶군요. 디자인 전공인 그녀가 디자인의 역사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관심이 확장되어 실내디자인에서
건축 디자인으로 그 것으로 인해 역사에 관한 관심으로 계속 확대되는 공부를 지켜보면서 저도 디자인에 대해서
저절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밖에서는 야외 공연 준비가 한창이더군요.


공연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대본이라도 해도 누가 안무를 하는가, 누가 무대 장치를 하는가에 따라서 얼마나 서로 다른 호둒까기
인형이 존재할 수 있을까,그러니 텍스트는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역시 데리다와 들뢰즈를 읽고 있는 중이어서 일까요?
이상하게 캘리님과 만나면 수다가 작렬해서 언제나 충무로가 이렇게 빠리 나오다니 하고 아쉬워 합니다.
그녀가 내리고, 혼자서 지식인 마을시리즈의 데리다와 들뢰즈를 끝까지 다 읽고 나니 벌써
일산, 가볍게 지하철역의 계단을 오르면서 달라진 제가 너무 너무 신기했던 귀가길이었네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 상상불허의 일이라서요)
토요일 아침 호두까기 인형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