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 주 화요일 휴강을 한 바람에 한 달만에 가는 정독도서관, 오늘 발제라 아무래도
오랫만에 다시 기억을 되살려서 푸코에 관한 설명을 간추려보려고 지하철을 탔지요. 지하철에 타고 보니
어제 밤 수유너머에서 앙띠 오이디푸스를 읽으면서 세미나 강사인 박정수샘이 했던 말이 기억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 운송수단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경우 시원한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서
한바퀴 빙 돌면서 책을 읽으면 지하철이 독서실이 되고, 누군가 다른 용도로 지하철을 사용하면 또 그 경우
다른 것으로 전환되는 그런 예를 지하철로 들었는데 제 경우가 바로 운송수단으로서의 지하철보다는
오히려 무엇인가 읽을 거리가 있으면 버스대신 지하철을 타게 되서 재미있는 비유로구나 하고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사실 앙띠 오이디푸스는 목요일 커리큘럼인데 선생님의 사정으로 월요일로 수업이 바뀐 경우였지요.
그래서 사실은 망서렸습니다.하루 빠질까? 전혀 모르는 텍스트인데, 그래도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정수샘의 강의가 궁금하니 텍스트를 전혀 읽지 않은 상태라도 그냥 들어보는 것이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아무튼 월요일 식사 당번이기도 하니 일본어 수업끝나고 밥만 하고 돌아오는 것도 좀 그렇지?
이렇게 망서리다가 들어간 수업인데 알고 보니 제가 앙띠 오이디푸스 책 제본도 부탁해놓은 상태더라고요.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책도 생기고, 수업중에 진행되는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서 아니 이렇게
좋은 기회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뻔 했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시간이 기억납니다.

경복궁을 지나서 정독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도 지난 밤의 놀라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고 할까요?
그 수업 전까지만 해도 유토피아에 관한 것으로 루니 2학기 에세이를 쓰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단 한 번의 수업으로 마음이 바뀌어서 그렇다면 잘 모르지만 공부를 더 해서 들뢰즈에 관한 것 .아니면
들뢰즈의 사유를 촉발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것으로 미세한 것 하나를 잡아서 이야기를 내 삶과
연관해서 써볼까? 아니, 그런데 늘 들뢰즈 책 읽다가 중간에서 그치고 말았던 쓰라린 기억이 있는데
어떻게 한 번 수업으로 이렇게 마음이 바뀔 수 있나?

우연이 촉발하는 대단한 에너지를 여러 차례 실감하면서 2009년과 2010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온전히 우연인 것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런 우연적인 만남이 있을 때 그것을 그 다음에
지속시키고 촉발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이 균등하지 않을 때 밀고 당기는 에너지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런 의문으로 푸코는 어딘가로 물러나고 제 안에서 다른 생각들이 뭉글뭉글 피어나는
중이었습니다.

철학 시간에 즐거운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정독도서관에서 우리들 모임에 지원을 해주어서 고병권 샘을 모시고 두 번에 걸쳐서
니체 강의 들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수유너머에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지원 대상이 되었다고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선생님을 만나보도록 하면 어떨까, 거기까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도서관 예산이 줄어들어서 한 번 정도 가능한 액수이지만 한 번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하니
개개인이 십시일반해서 강의를 한 번 더 들어보면 어떨까 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답니다.

사실 지난 번 발제가 조금 남았던 조르바님 먼저 내용 이야기 하고 나서 제 차례가 와야 했지만
오랫만에 만나기도 했고 내용에 대해서 덧붙이는 말, 내용과 상관없이 의견을 내놓는 말, 이런 공부가
과연 우리의 일상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회의적인 의견에 이런 저런 점에서 사실 도움이 된다는 간증같은
분위기의 발언까지, 그렇게 하다 보니 요상한 수업이 되고 말았지만 사실 철학시간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수업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소개된 영화에 눈길이 가서 한 장, 대부 옆에 붙은 포스터의 감독 작품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관심이 가서요.


노니님 소개로 오늘 새롭게 참석한 프리님, 저는 사실 키친 토크와는 인연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요
그녀가 프리님이라고 하자 아트마니아님 얼굴이 환해지면서 영광이라고 해서 웃었습니다.
묘하게 소란스런 수업시간에 첫 발을 디뎌서 고개 갸웃했을지 모르나 점심 after까지 함께 한 그녀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키친 토크에 가서 그녀와 노니님의 글부터 읽어볼꺼나?
아니 그러면 일이 하나 더 늘어서 곤란하게 될까? 망서리게 되는 묘한 시간. 이것이 들뢰즈와 더불어
어제 오늘의 사건이로군요.제겐
그 날이 그 날같은 조용한 삶에도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그것이 제겐 차이자체라고 말한 들뢰즈의
말과 연관해서 즐거운 상상이 끓어오르는 날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