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양 친구 중에 주주 라는 아이가 있어요.
주주의 엄마와 외할머니는 늘 인심이 후해서 둘리양을 자주 놀러오라고 부르고, 그래서 제가 둘리양을 데려다 주거나 데리러 갈 때 마다 직접 키운 채소를 봉지에 꾹꾹 눌러 담아주셔요.
지난 주에 아이들을 두 번 놀게 했더니 이렇게 많은 채소가 생겼어요.
개강하고 바빠서 부엌일을 좀 소홀히 하며 살았는데, 이제 더이상 미루다가는 이 귀한 채소를 버리게 될까봐 이번 주말에는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을 했어요.
일단은 무얼 만들면 이 많은 채소를 다 활용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해보니, 아무래도 추가로 장을 봐야 할 품목이 있더군요.
그래서 장을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처럼...
아닌가요?
이럴 때는 설상가상 이라는 말이 더 맞는 건가요?
암튼...
우리집 부엌은 음식 재료가 막 넘쳐나게 되었어요.
왕부담스러움...
일단은 부추와 깻잎으로 해물부침개를 몇 장 부쳤어요.
간 보면서 집어먹고, 썰다가 자투리 집어먹고, 그렇게 저의 저녁 식사가 요리 중에 이루어졌어요 ㅎㅎㅎ
주주네 외할머니와 엄마는 중국 연변에서 살았대요.
조선족은 아니고 한족이지만 우연히 연변에서 살았는데, 올케들은 조선족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키우는 채소가 우리 입맛에도 익숙한 것이 많고, 조리법도 우리 음식과 비슷하더군요.
고구마 잎을 먹느냐고 묻길래, 우리는 고구마 줄기를 먹는다고 했더니, 어머, 그것도 먹을 수 있구나! 하고 놀라며 고구마 잎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저야말로, 어머, 고구마 잎도 먹을 수가 있구나! 하고 놀랐죠 :-)
고구마는 잎도 먹고 줄기도 먹고 뿌리도 먹는 아주 효용성 높은 채소인가봐요.
이런 잎채소는 중국 - 아마도 북경 쪽? - 사람들은 기름에 볶아 먹는 것이 일반적인 조리법이지만, 조선족과 이웃하며 살았던 주주네 엄마는 끓는 물에 데쳐서 무쳐먹는 방법을 추천해주었어요.
지난 번에 얻어먹은 유맥채도 그랬고, 고구마 잎도 그렇게 먹으면 맛있대요.
고구마 잎은 끓는 물에 데치니 금새 보드라워지긴 하는데 진액이 흘러 나오는지 약간 미끈덩거리는 느낌이 생겼어요.
어쩌면 제가 너무 오래 익혀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다음에는 끓는 물을 끼얹기만 하거나 전자렌지에 익혀보려고 해요.
주주 엄마는 소금 간하고 마늘과 참기름을 넣어 무치라고 했지만, 저는 된장으로 양념을 해보았어요.
집에 된장이 많기도 하고, 푸른 잎 채소는 된장과 잘 어울리니까요.
고구마잎 나물 한 젓가락 맛보실래예?
다음은 라따뚜이의 이탈리아 버전 쯤 되는 카포나타 요리입니다.
가지가 주재료이지만 다른 채소도 여러 가지 많이 들어가는 건강식이예요.
남편의 옛날 직장 상사였던 홀 박사님께서 알려주신 레서피로 만들었어요.
가지는 깍둑썰기 해서 소금에 30분간 절여두어요.
그러면 물기가 빠지는데, 제가 사용한 것은 무척 단단한 명왕성의 가지였지만, 한국의 가지는 이보다 더 부드러우니 절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절인 가지를 물에 헹구고 물기를 대충 짜줍니다.
일단 재료를 볶기 시작하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나지 않으므로, 모든 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준비해두는 것이 좋아요.
가지와 함께 볶을 벨 페퍼 (파프리카), 양파, 마늘을 잘게 썰어두어요.
저는 마늘 얼려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 저희집 냉동고가 나니아의 옷장 만큼이나 넓어서 말이죠 ㅋㅋㅋ - 마늘 장아찌를 꼭 짜서 넣기로 했어요.
나중에 식초도 넣어야 하니까 마늘 장아찌의 달고 신 맛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두 번째로 넣을 재료인 토마토와 오레가노 잎을 잘게 썰어 따로 담아 두었어요.
토마토는 과즙을 버리지 말고 다 넣어야 맛있다고 해요.
오레가노 잎은 구하기 어려우면 과감하게 생략해도 될 것 같더군요.
어차피 마지막에 넣을 깻잎 향이 강해서 오레가노 향과 깻잎의 향이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깻잎만의 향으로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참, 재료의 분량은 명왕성 가지가 워낙 커서 가지 한 개, 이렇게 말씀드리기 보다는, 전반적인 비율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가지 깍뚝썰기 한 것이 한 대접이라면, 양파와 벨페퍼, 마늘, 토마토를 모두 합한 분량이 한 대접 (그러니 대략 양파 한 개, 벨페퍼 한 개, 마늘 한줌, 토마토 한 개 정도 되겠쥬?), 오레가노 잎 한 스푼, 레드 와인 두 스푼, 식초 세 스푼 (이지만 저는 마늘 장아찌를 넣었으므로 두 스푼만), 깻잎 세 스푼, 다진 아몬드 한 스푼, 올리브 세 스푼, 소금 후추 조금씩 들어갑니다.
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3-5 스푼 정도 넣고 뜨겁게 달구어요.
달구어진 팬에 가지, 양파, 벨페퍼, 마늘을 먼저 넣고 10분동안 볶습니다.
다음은 불을 줄이고 토마토와 오레가노, 와인과 식초를 넣고 10분간 더 익힙니다.
재료를 따로 넣는 이유는 아마도 토마토의 과즙이 들어가면 질척해지니까, 그 전에 다른 재료를 먼저 볶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요.
마지막으로 길게 썬 깻잎과 얇게 썬 아몬드, 올리브를 넣고 1분간 더 볶아주면 완성입니다.
크래커나 바게뜨 빵 위에 얹어서 전채요리로 먹는다고 해요.
크래커 없이 숟가락으로 그냥 떠먹어도 맛있어요 :-)
내일 도시락으로 싸가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저희집 아이들 보고싶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뒷모습 한 컷 :-)
그리고 앞모습도 한 컷!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