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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

| 조회수 : 6,806 | 추천수 : 29
작성일 : 2011-07-01 14:38:31
시래기 밤새 불렸다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간장과 다진 마늘, 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들깨가루 풀어 놓은 물에 다시마 한 조각 넣어 볶듯 조렸다.







쪄낸 근대 잎, 상추, 쑥갓, 풋고추, 양념장으로 차린 밥상

상추에 근대 잎 한 장 얹고 쑥갓도 올리고 밥 한술 그리고 시래기 한 젓가락 올려
미어지는 입으로 오물오물 씹어 먹는 쌈밥에 이어 풋고추 한 입 베어 물면 알싸하게 퍼지는 매운 맛.
딱 그만인 맛이다.




-------------------------------------------------------------------------------------------


K에게

오늘부터 기말고사구나.
시험에 대해선 묻지 않을 게. 그냥 수고한다는 말 밖에 응원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시험기간 네게 뭔가 힘이 되거나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재기 넘치는 편지를 써야지 하고
내용을 고민해보고 이것저것 찾아도 보고 했는데 마땅한 게 없어 ㅠ.ㅠ  
그래서 포기하고 대신 고백하기로 했어. 내가 너에게 편지 쓰는 이유 말이야.

열아홉 살 너에게 어쩌면 뜬금없을 수도 있고 괜한 잔소리 같기도 한 편지를, 넌 어떻게 받아들일까?
살짝 걱정되기도 해.

만약 내가 하는 말이 잔소리처럼 들린다면 그건 네가 아닌 내게 하는 잔소리라 생각하렴.
뜬금없는 소리라면 그건 내가 지금 뜬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거야.

무슨 말이냐고?
네게 쓰는 편지지만 사실 내게 하는 말이라는 거야.
십년 전 이십년 삼십년 전에는 나 살기 바빠 또는 아직 세상 물정 몰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어려서 몰랐던 것 알아도 실천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고 반성이야.

비록 부모 자식으로 만났지만
곧 성인이 되는 너와 함께하는 앞으로 시간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질의 시간일 거야.
너는 네가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도 져야 할 테고 그 속에서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변하겠지.
한마디로 우린 동시대인이 되는 거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너에게 ‘나 요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산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 이해하니?
나는 비록 먼저 출발했지만 내 출발선이 너의 출발선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네가 오롯이 너의 책임 아래 두게 되는 네 삶의 출발선은 바로 지금이야
그리고 그 출발선을 아빠인 나는 지금 통과하고 있는 거고.
이제 너와 나는 함께 길을 가는 길동무가 되는 거야.
나는 나의 삶을 너는 너의 삶을 그러면서 ‘우리시대의 삶’이라는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

편지는 새로 만난 길동무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내게 하는 잔소리기도 하고 지난 온 얘기기도 해.
그래서 설익은 생각, 다소 비약과 생략이 있는 얘기가 담겨 있을 거야.
하지만 설익은 생각과 비약과 생략은 함께 가는 길 위에서 우리가 채우고 마저 알아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K, 이 보게 친구!!!
우리 함께 가는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세.
자 떠나보세…….

비록 출발선이 달라도 지금은 함께이지 않은가.

친구, 오늘도 행복하게.
자네 행복이 내 행복이야.
물론 내 행복이 자네 행복이겠지.
그래서 나도 오늘 행복하려네.
부디 행복하게나 시험 따위에 연연하지 말고.


*고백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재미없는 편지가 되었다.
뭔가 비밀스럽고 흥미거리를 기대했다면 미안. ^^*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잎새바람
    '11.7.1 2:55 PM

    아빠세요?
    훌륭하세요
    공감합니다
    저도 19살 아들이 있어요,셤중이구요

  • 2. 수짱맘
    '11.7.1 3:20 PM

    처음 댓글 답니다.
    글 잘 보고 있어요.
    훌륭하세요.

  • 3. 카산드라
    '11.7.1 3:35 PM

    우리애들(초딩) 오늘 기말고사 봤어요.

    저도 곧 거시기한 때가 오겠죠? 좋은 부모님이신 것 같아요.^^

  • 4. sweetie
    '11.7.1 4:19 PM

    음식도 맛나게 보고 내려 오다
    글구 보너스로 읽은 편지
    정말 멋진 부모님이신것 같네요!!!

  • 5. 오후에
    '11.7.1 4:21 PM

    수짱맘님//읽어주셔서 감사...

    카산드라님//ㅎㅎ 거시기한 때... 네 거시기 하게 올겁니다. 좋은 부모? 글쎄요. 좋은 부모는 글로 되는게 아니니까요. 그냥 남은 여정 괜찮은 친구로 남았다.... 내리면 할 뿐입니다.

  • 6. 오후에
    '11.7.1 4:22 PM

    sweetie님//음식이 맛나 보이신다니 급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감사 ㅋㅋㅋ

  • 7. 최살쾡
    '11.7.1 5:03 PM

    친구같은 부모. 정말 어렵지요.
    전 부모가 안되서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지만.
    오후에님 같은 부모님이 되고 싶네요.

    낼은 ㅈㅈ도서관으로 출동해서 오후에님 실물 보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전 ㄱㅁ 도서관에 자주 갑니다.)

  • 8. 무명씨는밴여사
    '11.7.2 6:38 AM

    으흥, 으흥 ^^
    그런 편지 받는 사람은 행운.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푸성귀 반찬 구경 잘 했어요.

  • 9. jasmine
    '11.7.2 9:05 AM

    너무 풀밥상 아닌가...인간미가 읎써~~~하다가
    장떡에서 철푸덕 주저앉습니다. 오늘 비가 슬슬 올것 같은데...ㅠㅠ
    진짜...레알...맛있겠어요...고추장만 넣으시나요? 아님 된장도 쬐끔 넣으시는지...

  • 10. 콜린
    '11.7.2 9:52 AM

    따님께 정말 최고의 친구이실 것 같아요~
    덕분에 항상 편지 잘 봅니다~ 감사해요!

  • 11. 그대로
    '11.7.2 2:08 PM

    오후에님^^
    클났어용~클났어용~
    울 동네 아짐들 오후에님의 왕~쀈이 되어 열광하고 있쓤돠^^
    저님이 홍보부장쯤 되시겠나여~~~^^;;;;;;;;;; 헤헤

    지난 번 [감사하기]에 대한 퀴즈내셨을 때..
    먼 말인지 갸우뚱 파다닥의 이유를 알았습니도~ㅑ..
    글쎄글쎄글쎄나..
    제가.. 난독증이 생긴.. 거시였던~거시였던 거십니다여~그려..
    [무언가를 당연시 여기지않고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당연시 여기며로 읽었으니..
    고저고저..?????.. 멍미멍미멍미.. 그랬던 거였지요

    눈은 제대로 읽어도 머리에서 딴 짓을 해대설라믄.. 늙는구나~!!! 드뎌..
    했는뎅.. 이젠 눈도 제대로 몬읽어가고 있습니다용..이궁

    오늘도 약이 될 것만 같은 음식과
    읽는 순간 비타민내지는 박카스가 되어버리는
    오후에님의 주옥같은 글품새에 역시나 왕쾀동했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솨요 *^_~*

  • 12. 달개비
    '11.7.2 3:14 PM

    반듯한 모습의 k...제 아이도 이렇게 자라주기를 기도합니다.
    오후에 님의 글을 보며 저는 반성하고, 새 다짐을 하고 ...힘을 냅니다.
    좋은 글과 좋은 음식 ...감사합니다.

  • 13. 고독은 나의 힘
    '11.7.3 9:24 AM

    따님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로 봐주시는 오후에님은
    대한민국 1%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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