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두명밖에 없구, 또 주말 빼고는 남편이 집에서 밥먹는 일이 드물어서 뭘 만들어 보고 싶어도 혼자 먹자고 만드는게 쉽지가 않은일인것 같습니다. 1인분만 만드는것도 어려운 일이고, 또 혼자 만들어서 혼자 먹으면 맛없는건 둘째 치고...왠지 슬퍼지는 때도 있고...
아무튼, 지난주말 친구들이 찾아와서 전부터 만들어 보고 싶던 무사카를 만들어봤습니다. 무사카는 그리스 음식으로 이태리의 라자니아와 비슷한 음식입니다. 다만 파스타 대신 감자, 가지등의 야채로 층을 만들어 주고 제일위를 베사멜 소스로 덮어 줍니다. 이날은 저 포함 세명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해서 무사카를 만들고 곁들이로 샐러드와 비축해놓은 빵을 내었습니다. 레스토랑 흉내낸다고 고구마랑 마늘도 같이 구워봤지만 마늘이 엄청 매워서 혀가 아팠다는 슬픈 후기가..
제 친구들은 여자여서 그런지 초대받으면 음식만드는데 고생했다며 맛있게 먹어주고, 또 설겆이 하기 편하라고 남기지 않고 먹어주려고 애를 써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도 남자랑 여자의 차이점 존재하는것 같습니다. 아니, 요리를 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의 차이 인가요?
제가 만든 무사카의 단면입니다.
처음 만들어봤는데, 다음에 만들때는 감자랑 가지를 더 넉넉히 넣을까봅니다. 다음에는 내공을 더 쌓아서 과정샷도 찍어보겠습니다.
그리스 요리를 만드니 엄마랑 같이 그리스를 갔던 기억이 다시 나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사실 제가 그리 오래도 안했는데 직장생활중에 건강이 아주 안좋아졌었습니다. 힘들기도 하고 솔직히 많이 괴로워서 직장을 그만두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집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세상에 쉬운일이 어디있고, 남의 돈 벌면서 기분 좋게 하하호호 하면서 버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부모님도 그렇게 살아오셨고, 다들 그렇게 살면서 돈버는 거라고 고비만 넘기면 좋아질꺼라고 만류를 하셨는데... 진짜로 좀 심하게 아프자 당시 그리스 크루즈여행에 꽂혀계셨던 어머니께서 "딸아, 모든것을 잊고 그리스로 떠나자"로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었답니다.
아무튼, 여차저차 하여 그리스로 떠나게 되었는데, 지중해를 도는 배를 타기 위해서 먼저 이스탄불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엄마랑 산책을 하며 걸었던 이스탄불 시내입니다. 눈앞에 모스크가 바로 서있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요.
저는 원래 여행할 때, 역사서도 좀 읽고, 여디서 맛있는걸 뭘파는지도 조사도 많이 하고 떠나는 편인데, 당시에 심신이 별로 양호하지 않아 정말로 전날 그냥 주섬주섬 옷가지 몇개 챙기고 관련서적 몇개 넣고 백지 상태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스탄불은 공부를 하고 떠났으면 좋았을껄 후회가 많이 들었습니다. 바다건너 저 병원은 나이팅게일이 크림전쟁 당시 근무하던 병원이고, 저기 저 건물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나오는 역이고 이 역뒤에 있는 호텔에서 아가사 크리스티가 소설을 썼고 등등 이야기 거리가 무궁무진한 도시더군요...
터키의 허름한 호텔에서 먹었던 아침식사입니다. 빵, 오이, 토마토, 올리브, 치즈, 요그르트 그리고 오렌지.
비주얼은 남루하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특히 저 빵. 촉촉하면서도 고소한게 먹으면서 아... 내가..내가 지중해에 왔구나. 와서.. 매일매일 신선한 야채와 치즈, 맛있는 빵을 먹겠구나 혼자 감격에 젖어있던 순간이었습니다.
.... 오후에 크루즈라는 대형 냉장고에 들어가게 되는줄도 모르고 ... 이때가 좋았죠..
배에 타기전에 이스탄불을 둘러 보았습니다.
톱카프 궁전이라고 술탄이 살던 궁전도 가고
아야 소피아도 둘러보고
500년이 넘었다는 시장 그랜드 바자르도 갔었습니다.
제가 여행을 떠나기전에 꼭 하고 싶은게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1. 그리스에서 무사카와 우조,기로스를 먹는다.
2. 그리스에서 당나귀를 탄다.
3. 터키에서 쫄깃쫄깃 아이스크림과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는다.
엄마랑 둘이 시장을 떠돌다 터키 초등학생에게 둘러쌓여있는 아이스크림 아져씨를 발견!
제가 사실 좀 기운이 있고 의지에 불타고 있었으면 터키돈을 좀 환전을 했었을텐데 전 그냥 방전상태에 달러만 챙겨갔고, 엄마는 여기서 걍 유로로 밀어붙이실 예정이셨습니다. 수중에 미국돈 밖에 없어서 아저씨 한테 달러로 얼마에 파시냐고 물어봤더니
"투 달라"를 외치시더군요. 별생각 없이, 일달러 어치만 주세요 그러니 너무나도 흔쾌히 오케이 하시는게 그순간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 나... 바가지 썼구나 ...
분위기가 일달러로 깎아주세요로 알아들으신것 같고. 뭐, 사실 1달러 이하의 잔돈도 없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평소에 꼭 먹고 싶었던걸 사먹는 순간이라 브이자를 그리고 사진찍고 있으니 (안습인 제모습은 편집..근데, 이거 강남역이나 명동에서 판다면서요...) 아저씨가 뒤에서 같이 브이를 그리시며 사진을 찍으시더군요.
바가지는 씌워도 터키사람들은 나름 굉장히 유쾌한 사람들 같았습니다.
뭐, 그랜드 바자르는 돌아보니 외국인 관광객한테 바가지 씌우는게 세계적인 수준인것 같더군요.
한국에서도 흥정 못하는 성격인데 터키까지가서 페르시아상인의 후예를 상대 할 여력이 없어서 어슬렁 어슬렁 구경하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모친께서 한 공동품가게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십니다.
사실...전 쇼핑에 그닥 조예가 없어서 밖에서 쇼핑을 하시는 모친의 사진이나 찍고 있었는데 모친께서 하도 안나오셔서 들어가 봤더니, 엄마가 굉장히 순진하신 표정으로 "하우 머치 이즈 잇?"을 외치고 계시더군요.
잘 기억은 안나지만 주인 할아버지가 얼마라고 이야기 하시자 다음순간 엄마가 가장 싸게 얼마에 주실 수 있냐는 라는 조커급 빅카드를 바로 꺼내십니다.
제가 옆에서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처음부터 최저가를 말하라고 하면 더 이상 깎을 수가 없는거 아니냐"고 치고들어가 할아버지보고 "안되요, 저희는 그 반값이상 못드립니다"라고 말하자...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장사 잘되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동양여자가 들어오더니 $%&*&^$!@#$%#$%%^&라고 외치고 가격을 반으로 쳐내며 방해하고 있었겠죠..)
...할아버지께서 살면서 그렇게 슬프고 충격적인 이야기는 처음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의 떨리는 목소리로
"후~아~았" (W...h...a...t...) 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YOU WIN...
바로 페르시아상인의 후예가 제시하는 두번째 가격을 지불하고 모친을 모시고 가계를 나왔습니다.
그때 산 페르시아왕국 전래동화인지 설화가 그려져있는 붉은색 쿠션커버는 현재 제가 잘 쓰고 있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모친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오후에는 저희가 타는 배가 이스탄불 항구로 들어와 탑승을 했습니다.
이제부터의 여행의 숙식은 다 이배에서 하게 됩니다.
저희가 탄 배는 이날 이스탄불에서 하룻밤 정박하고 다음날 저녁에 출발합니다.
다음날 배에서 다시 이스탄불 시내를 돌아보기 전에 먹은 아침식사입니다.
아침을 먹고 일단 항구 근처에 있는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갈라타 타워로 올라가는 길은 주택, 학교 등이 모여있더군요. 조용하니 좋았습니다.
갈라타 타워가 있는 언덕꼭대기에 올라갔더니, 타워 바로 앞에 이런 가게가 있습니다.
진열장을 자세히보니 이런 터키 디저트를 파는 곳이더군요.
창문너머 어예쁜 터키 여학생들이 몇개 사는걸 보고 엄마랑 저도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to 주인 아저씨: "저희도 아까 학생들이 산것과 같은 것을 사겠습니다."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터키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된다고 마음먹고 있었기에, 얼마냐고 여쭤보고 가겪을 깎고 이만큼만 내면 안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엄청 당황을 하시며 그..그러라고 하십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저씨는 현지인들 내는 가격을 말씀하셨는데 저희 모녀가 가격을 깎은거 같습니다.
어디를 가나,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이 있으면 정가를 그냥 받는 사람이 있는게 진리인데,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가 운영하는 남의 영업집에서 아침부터 진상된 것 같아서 엄마랑 마음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이따 배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려서 좀 더 사자고 엄마랑 이야기하고 일단 갈라타 타워에 올라갑니다.
이스탄불 시내는 이 타워에서 가장 잘보일것 같습니다.
꼭대기층 레스토랑에서 터키 커피를 시키고 아까 구입한 바클라바를 먹어봅니다.
아까 아저씨한테 더 미안하게, 이거.. 맛있었습니다.
페이스트리 같은 파이지 사이에 달콤한 견과류가 들어있는데 달콤하고 고소한 맛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남은 찌꺼기로 점을 본다기에 엄마와 의기투합하여 우리도 한번 해보기로합니다.
엄마는 커피잔에 남은걸 보는 거라고 하시고, 저는 컵을 뒤집어서 접시에 붙은걸 보는거라며 진정한 의기투합이 안됩니다.
사실 찌꺼기를 뒤집어봤자 해독할줄 몰라 그냥 안했습니다.
앞의 가게에서 산 바클라바를 먹어보려고하니 접시와 포크도 갖다주는 친절한 곳이었습니다.
배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부두의 시장에도 가봅니다.
싱싱한 생선도 팔고
싱싱한 생선을 구워주는 곳에 옆에서는 고양이들이 누군가 생선을 나누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랜드 바자르 옆 이집션 바자르에도 가서
샤프란을 살까 말까 고민도 해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좀 살껄 그랬습니다
시식을 후하게 주시던 치즈가게 테이블 밑에서는 노란고양이가 혹시 치즈가 떨어질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 배는 6시에 이스탄불에서 그리스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는건 좋은데...
무슨 선장과의 칵테일 아워가 있다나???
당시 제가 가져간 짐은...
운동화 한켤레, 신고 현지에서 버릴 검정 샌들, 카고바지, 청바지, 잘때 입을 추리닝,남방두개, 추울까봐 무채색의 가디건과, 스워터들....
니가... 아프긴 많이 아팠구나... 왜그랬어...
크루즈 타러간다면서 왜 짐을 그따위로...
탑승 수속하면서 짐을 배에다 실어주시는 할아버지한테 "제 짐은 제가 그냥 들고 갈께요" 했다가
"방까지 가져다 줄꺼니까 제발 좀 건드리지말라"고 한소리나 듣고.. 슬펐습니다....
뭐, 물론 안가면 그만이지만, 한껏 들떠계신 모친을 혼자 보낼 수도 없고
마지막날에나 입으려고 가져온 원피스를 입자니 앞으로 매일 입을 수도 없고 해서
(지금 생각하니 누가 내가 옷을 매일 똑같은걸 입던, 바꿔입던 그걸 누가 관심갖는다고
그냥 제대로된 옷 입지.. 야, 사람들 너한테 관심 없거든! 미안하지만 너 안쳐다보거든! T.T )
가져간 흰남방과 흰 가디건에 엄마의 라인댄스용 검정스커트를 빌려입었습니다.
입고 보니 완전 심훈의 상록수를 지중해에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아님, 유관순인가?
상록수는 둘째치고 엄마의 라인댄스 스커트가 저한테 맞는다는것의 거의 재앙 수준의 충격입니다. 그냥 한번 입어본거 였는데..
가져간 일회용 렌즈도 모자라서(눈 피곤하다고 웬만하면 안경쓸 예정이었음), 검정뿔테안경을 쓰고 상록수 룩을 완성합니다.
칵테일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선장과 같이 기념촬영을 하기위한 줄이 깁니다.
앞뒤로 갖은 치장을 다한 백인 할머니들로 둘려 싸여있으니
아니.. 내가 무슨 타이타닉에 탄 잭도 아니고... ..
입구에서 선장을 만났습니다.
얼씨구... 생긴게 완전 영화배우입니다. 그리스 조각같습니다. 더 짜증납니다.
나이도 젊은것 같은데 선장은 외모로 뽑나...
아무튼, 조선의 상록수마을 대표로 선장과 기념촬영을 합니다.
한국사람이 다 이런거 아닌데 오해하실까 걱정입니다.
다음날 아침, 데크에서 해뜨는걸 보고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배에는 세개의 식당이 있습니다. 앉아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포멀식당이 두개, 이런 부페식 캐주얼 다이닝이 하나있습니다.
아침은 늘 이런 부페식으로 차려졌습니다. 과일과 요그르트도 보이고
햄,치즈,빵,등도 보입니다.
배의 승무원들은 매니져급?은 그리스인도 많았지만 동유럽하고 필리핀에서 온사람이 많은것 같습니다.
제가 음식사진 찍고 있으니까, 오른쪽의 아저씨 분이 절 부르시더니 자기도 같이 찍으라고 하십니다.. (응?)
찍은김에 한국에와서 아에 인터넷에 올려드립니다. 승무원은 대부분이 따뜻하고 친절했습니다.
배는 그리스에 오후 세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20시간 이 넘는 항해에 승객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계속 프로그램을 돌립니다.
바카몬경기및 강습이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온사람은 저 혼자군요.
영화에서 보고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던 보드게임 과외도 받고
그리스어 강습에도 얼쩡거리다가
라인댄스 교실에서 춤추고계시는 엄마 사진도 찍어드립니다.
일부러 댄스슈즈랑, 치마도 가져가셨는데 즐거워 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무사카 요리강습에도 갔었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이 배에는 식당이 세개가 있는데...
캐주얼 식당은 뭐랄까... 그냥 대중적인 맛이고. (서양인 기준에 정 먹을게 없으면 늘 만만하게 먹는걸로 차려놓은것 같았습니다.)
정찬식당은...정말 맛이 없어서. 정말 제가 아주 깜.짝. 놀랐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국사람들이 맛없어서 못먹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당혹해 했었기에. 제가 정말 우리가 맛없게 느끼는건가, 다른 사람들도 맛없다고 느끼다나 두리번 거리면서 돌아보았지만, 주변의 서양사람들은 그냥 별문제 없이 먹는것 같았습니다.
정찬레스토랑은 전체에, 본식에, 디저트까지 매뉴에서 고르면서 먹는건데...결국 다들 남기고 마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후 저희가 이 배의 음식을 짜고 맛없게 느끼는건 한국과의 소금 염도가 달라서 일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어쨌든 결른은...맛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왜 지중해까지 와서 이런걸 먹어야하나 좌절스러운 순간들이었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한국사람들을 보고,식당 매니져 같으신 분이 너무 근심어린 표정으로 다가오십니다.
왜 못먹냐고,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당시 제일 나이가 어린 제가 총대를 매고
"사실...저희가...배가..안고파서.."라는 비루한 대답을 날립니다.
그러자 그리스인 아저씨는 눈을 1센치는 더 크게 뜨시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예리하시긴...
다음날 점심때 요리교실에 가니, 어제 그분이 무사카를 요리하고 계십니다. 매니저가 아니라 헤드쉐프셨던든.
어쩐지 열심히 만든 음식을 맛이 없어한다는데 너무 안타까워하시는것 같더라니.
미안혀요, 나도 음식 만들어보니 열심히 만들었더만 맛없다고 안먹으면 가슴이 찢어지더이다...
요리교실 이후에 점심으로 제공된 무사카.
그리스에서 무사카를 먹든걸 그렇게 기대했건만, 솔직히 이태원에서 사먹는게 더 맛있었습니다.
무사카 옆에 마주치면 먹어주는게 예의인 매쉬드포테이토+ 그레이비에 더 만족하던 점심.
서서히 육지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초록 풀밭에 하얀집들.
아.. 그리스는 정말 이렇게 생겼군요.
우리가 내린곳은 미코노스. 배에서 내리니 문어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착장 코앞에 관광객을 의식한 설정인듯합니다만.)
미코노스섬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를 쓰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조깅코스였던 사진의 바다건너에 보이는 호라항구를 넘어서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까지 가보겠다고,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을 무조건 찾아떠나, 엄마를 이끌고 산을 넘어보려고 언덕을 열심히 올라가던 기억은 여행중 제가 가장 좋하던 순간입니다.
비록 카메라 건전지가 다 닳아서 사진은 찍지못했지만, 꽃을 좋아하시는 엄마의 발을 붙잡던 지천에 널려있던 꽃들과 제가 만나기를 염원하던 풀밭에 혼자 서있던 워낭소리급으로 바싹 마른 당나귀.
제가 "당나귀야 이리온, 이리온" 부르니 저를 향해 쓰러질듯 비틀브틀 다가오는 당나귀가 어찌나 안쓰러운지 배에는 음식이 쌓여있는데 바나나라도 하나 챙겨올껄 어떻게하나, 어떻게하나 동동거리던 저에게 엄마가 영화 각설탕에서 임수정이 말한테 각설탕을 먹이더라며 당나귀한테 주라고 건네주시던 한국에서 건너온 버터스카치 캔디.
결국 산을 넘어가는건 실패했지만 산꼭대기 망가진 풍차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하얀집이 미로같이 얽혀있던 미코노스의 항구마을 그리고 바다.
옆에 앉아계시던 엄마를 정말 가깝게 느끼던 순간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산을 내려와 다시 항구마을에서 해가지기를 기다리며 무사카먹고와 그리스 술 우조를 마셨습니다.
어디가 맛있는 곳인지 몰라서 이가게 저가게 둘러보며 식당앞의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그리스인 주인아저씨가 너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지금 당장 먹기는 그렇고 좀 더 구경을 하고 싶어서 "저기 죄송하지만, 좀 더 돌아보고 다시 오면 안될까요?"라고 말하니 아저씨가 어떻게 그런 서운한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간다고 서운한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인정없는 사람으로 보이냐는 서운함) 당연히 되지, 이따가 다시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리스인들은 표정으로 많은것을 전달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항구의 석양이 보이는 식당에서 우조한잔이랑 무사카를 시켰습니다. 우조는... 소주랑 비슷한 맛이었구 (저 술잘몰라요. 그냥.. 그런느낌?) 무사카는 맛있었습니다.
빵이 딸려나오기에 한국처럼 서비스로 공짜로 주는줄 알았더니 계산서에 0.5유로 청구가 되어있습니다.
먹기는 룰루랄라 맛있게 먹었는데 그래도 시키지는 않은게 나왔으니까, 제가 계산하면서 말해본다고 카운터로 갔습니다.사실 동전이 5센트짜리 밖에 없기도 했구요.
아무튼 계산하면서 기껏 카운터가서 한말은...
5센트짜리를 보여주면서 "이건 50센트가 아니죠오?"
(네, 저 소심한 여자에요.)
그랬더니... 주인아저씨가 하시는 말이
"응, 됐어, 그냥 너 가져"
OTL ... 그...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T.T
"에엥. 진심이세요?" 라고 물어보니
"(0.50유로가) 이게 뭐 얼마나된다고" 그러십니다.
다음날 밧모섬에 도착해서는
사도요한의 수도원에 들렸었습니다.
사도요한이 이곳에서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합니다.
뭐, 요한계시록도 중요하지만, 밧모섬의 특산과자인 부기를 구입하는것도 중요했습니다.
밧모섬 과자가게에서 부기를 구입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크루즈를 타면... 안좋은점이 음식이 무제한 제공된다는 겁니다.
아침,점심,저녁 주고, 오후에 간식, 저녁에 간식을 줍니다. 주류는 따로 구매해야 하지만
나머지 음식들은 이미 다 선결재가 되었습니다.
이게 왜 나쁜점이냐면... 여행가면 현지서 산 간식을 야곰야곰 아껴먹고, 야껴둔거 배고플때 또먹는 재미가 있는데 도통 항상 배가 불러서...간식먹는 재미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 부기도 사서 부랴부랴 배에 올라 바로 밥먹고
먹을 짬이 잘 안나더라는... 사실 배의 밥을 거절하고 외부사식을 사먹으면 되지만
계속나오는 이미 값을 지불한 밥을 거절못하는 성격이 정말 쿨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부기 옆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에 살때의 일들이 많이 포함된 에세이입니다. 사실 배에서 신선처럼 띵가띵가 살줄알고 매일 한권씩읽으려고 책을 꽤 가지고 갔었습니다. (작은페이퍼백 위주로 가져가서 별로 짐이 되지는 않았어요.)
딴에는 그리스 작가가 썼다고 이솝우화-.-, 그리스로마신화, 터키문화재 안내, 에베소랑, 요한계시록쓴데 간가고 성경 등 ...
가기전에는 이런데 누워 신선처럼 책이나 볼줄 알았지만
매일 탔다 내렸다 너무 강행군이었는지 책만 손에 들면 혼수상태입니다.
옆에 서양사람들은 비키니입고 누워있는데, 4월의 그리스는 저에게 너무 추웠습니다.
검정스웨터에 스카프 칭칭감고... 책을 손에쥔채 그냥 혼수상태.
어느날 아침,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지중해 바다위에서 텔레비전을 틀었건만 대한민국보건 복지부장관이 나와서 한국말로 돼지가 어쩌구, 수녀님이 어쩌구 이야기를 합니다. 알고보니 당시 돼지독감이라고 불리던 신종플루가 퍼지기 시작하여 한국까지 도착했다고 나온 뉴스더군요.
집에 우리는 잘지낸다고 이메일을 보내니 언니도 아빠도 손잘씻고 사람들많은데는 피하라고 신신 당부를 합니다.
(매일매일 세계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타고내리는 배에서는 너무 무리한 당부였다는..
어쩐지 그래서 식당앞에서 손소독제를 너무 지극정성으로 손에 직접 짜주었구나.)
낮에 돌아다니는게 힘들었는지 밤에는 끙끙 앓으면서 잤습니다. 사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이 아까워
매일 밤 육지에 닿기전에 이 책을 다 읽어야한다는 부담감에 쩔어 책을 손에 들고 구겨져 잠을 자는 바보같은 행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미련하게 느껴져서 '야야야 그냥 보지마'하고 포기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제가 워낙 좋아해서인지 읽고 또 읽어도 항상 즐거웠습니다. (보다 자지않은 유일한 책)
예전에 에베소였던 터키의 쿠사다시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집은 정말 방한칸 인데 나오는 출구옆 꽃밭에 앉아 있던 아기고양이 한마리.
너무 귀여워서 옆에 쭈구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고보있는데
집을 둘러보고 나오는 한 서양아줌마가, 아기고양이를 보고 "오호호호~ 너 홀리키티구나" 말을 건네십니다.
약 5미터 떨어진 나무그늘에서는 아기고양이의 모친께서 입까지 벌리고 제대로 주무신고 계십니다.
저희 일행중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국이었으면 유적지에 고양이가 가당키나 하냐고. 돌던지고 해꼬지하고 괴롭힘 당하다 쫒겨났을꺼라고. 그런데 이 고양이는 어려서 부터 이곳을 방문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기에 자기 새끼가 떨어져서 낯선 사람과 있어도 그곳에서 자기가 그랬듯이 당연히 사랑받고 있을꺼라고 믿고 의심도 걱정도 안하고 자고 있다고. 이런게 천국의 모습이 아니냐고 말씀하신 말이 정말 가슴에 많이 남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들판을 지나
에베소의 로마유적지도 돌아보고
다시 배를타고 다음날 그리스 로도스섬에 도착하여 중세 기사들이 걸었던 거리를 엄마랑 걸어봅니다.
우리와 같이 중세 거리를 걸어다녔던 그리스 개
로도스 섬에서는 염원하던 기로스도 사먹었습니다.
배 밖에서 사먹는 음식은 다 맛있었습니다.
크레타 섬을 방문한 날은
점심으로 콩샐러드와
그리스의 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리를 먹었습니다. 엄마는 부페식당가고 싶어 하셨지만, 맛이없더라도... 그래도 그리스 칼라마리를 먹고 싶었습니다.(비록 행여 부엌에서 필리피노 요리사가 튀겼더라고...지중해위에서 칼라마리를 준다는데,...)
대신 이날 우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동양계 미국인 커플에게서 당나귀를 탈 수 있다는 아주 큰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도착한 산토리니는 그냥 카메라만 들이대면 엽서사진이 되더군요.
산토리니의 이야마을은 차가다닐 수 없는 구조여서 당나귀가 짐을 지고 다닙니다.
산토리니에서 우리배가 머무르는 시간은 단 네시간.
아마도 이 아름다운 섬은 저런 큰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없다는것이 이유인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작은 셔틀배를 타고 크루즈까지 가야합니다.
해가지고 저희가 타기전에 저 배가 떠난다면, 저희가 마지막 셔틀배를 놓친다면
여권도, 짐도 다 저 배안에 있는 저희는 대재앙을 맞게 됩니다.
그래도 내가 언제 또 이곳에 다시 올수 있을꺼라고 꼭 당나귀를 타고가고자 케이블카를 거부하고 당나귀를 타고 내려가려고 당나귀 마구간(?)으로 달려갑니다. 성수기에는 길게 줄서서 탄다는데, 비수기여서인지 저랑 엄마만 당나귀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구간에는 그리스인조르바 처럼 생긴 아저씨들이 한무더기가 계시는데 제가 온갖 협박을 하고 사정을 하면서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지금 이글이 심각하게 길어지고 있어서 간단히 말하면
"우리,배 놓치면 끝장이다." "어서 당나귀를 출발시켜라" 제가 난리난리를 쳐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우리 쓱 돌아보며 오케이 오케이
다시 요지부동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참, 간만에 그렇게 행복한 사람들은 처음 만났습니다.
결국 미국인 대학생들 세명이 당나귀를 더 타러와서 다섯마리가 한꺼번에 떼지어 출발하여 저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나머지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것 같습니다. 엄마도 케이블카타고 내려가시라고 내려가서 만나자고 하니 당황+실망한 표정으로 엄마도 같이 당나귀타실꺼라고 해서 같이 저 지그제그길을 당나귀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왠지 예견된 결말처럼 조르바들이 옳았고 시간도 넉넉하게 저희는 무사히 마지막 셔틀보트에 올라탔습니다.
아테네에 도착해서는
들어간 델리숍에서 영어가 안통해서 간만에 사먹으려는 간식을 못먹을뻔했지만 (외곽이어서 그런가)
영어할 줄 아는 친절한 그리스인 아저씨가 도와주셔서 무사히
햄.치즈.토마토 샌드위치도 하나 사먹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만드시는것 좀 구경하려니 그리스말로 계속 이따 갖다줄테니 가서 앉아있으라고 하십니다.
아니라고, 그냥 전 구경하는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전 알아들었는데 아저씨가 제 이야기를 알아들으셨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샌드위치는 맛! 있었습니다!!
배에서 먹었던 아마도 마지막 점심. 피타빵에, 타지키소스를 얹은 수블라킨가? 뭐 그랬던것 같습니다.
이스탄불에서 내리는 날에는 아침을 먹고 나중에 간식으로 먹을 바바나 하나를 챙겨가려고
과일부스앞에서 음식을 나눠주고 계시던 아저씨한테 "저 바나나 하나 들고 가도 될까요?" 물어보았습니다.
사실 일주일이상 같은 배를 타고다니니 얼굴도 많이 익숙해지고 여객선이란 특성상 마주치기만 하면 항상 인사를 해서 정도 많이 들어 "저 오늘 내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인사를 하니 아저씨들이 오늘 내리냐고 잘가라며, 엄마도 드리라고 바나나를 하나 더 건네주시는데, 안그래도 감성적인데 몸이 아파서 더 그랬는지 오버모드가 풀가동되어 눈물이 다 나려고 하더군요.
다시 들린 이스탄불에서
혹시 선물살게 있나 들려본 그랜드 바자르 앞의 케밥가게
시장 앞 공터에서는 많은 터키사람들이 케밥을 먹으며 쉬고있는데, 고양이들이 혹시나 케밥을 나눠줄까
저렇게나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옆에 바로 쭈그리고 앉아서 사진을 찍는데
고양이가 절 올려다 보며 "너, 케밥좀 사서 나좀줘라"며 야옹~합니다. (순전히 제 자의적인 해석)
야...미안하다.. 나먹을것도 없다.
나행히 나중에 지나가시는 터키아줌마가 고양이에게 케밥을 나눠주셔서 시식중이십니다.
케밥도 포기하고 그디어 사먹은 고등어 샌드위치.
워낙 파는데가 많아서 어쩌다 비피해서 들어간 곳이었는데 맛있었습니다.
터키 홍차와 먹은 고등어 샌드위치의 비밀은... 그냥 신선한 재료인것 같습니다.
맛있는 빵에 신선한 고등어를 구어서 야채랑 같이 끼워서 레몬을 뿌려먹는게 전부이지만
재료가 신선하다면 정말 맛있는 샌드위치입니다.
빨리 배로 돌아가고 싶으셔서 고등어샌드위치에 목메고 있는 제가 좀 불만이셨던 엄마도 맛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터키 홍차잔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공항에서 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가져가면 쓸데없다고 안샀는데...다시봐도 예쁘네요.. 고속터미널 지하에 터키그릇파는상점 생겼던데 가면 있을까요?
배에탄 유일한 동양아이인데다 엄청 귀여우셔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던 한국인 꼬마아이가 나눠줘서 맛봤던 터키의 동그란빵.
여기까지가 제 그리스 이야기입니다. 음식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너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사실 제가 이렇게 그리스 이야기를 길게 쓴이유는... 그리스가 재정파탄으로 섬을 매각한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에요. 미코노스 섬의 일부를 매물로 내놓고, 로도스섬의 일부도 장기임대시키려고 하고 관심을 보이는 국가가 중국하고 러시아라는 아주 우울한 기사를 읽고 마음이 너무 안좋았거든요. 월드컵에서 우리랑 경기해서 졌을때만해도 "에고, 힘들다는데, 안되었다"생각만했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엄마랑 전 그 섬에서 참 즐거웠었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판다는데,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다른나라 사람들이 와서 개발한다고 이 아름다운 곳을 다 망치지는 않을까...
다행히 그리스정부가 그 기사는 오보라고 반박을 했다네요. 그리스의 재정문제가 잘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다 그렇게 된건가요?....
월드컵기간이라 신나고 즐거운일도 많지만, 멕시코만에서 유출되는 기름은 아직도 안막힌다는데 또 놀라고. BP가 하루에 일억달러씩 쓰면서도 구멍을 못막는다는데, 막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도 들리고, 한달이걸린다, 일년이 걸린다 이야기를 한다면 화내며 잘한다 못한다 욕이라도 할텐데, 할수 있는걸 다 하고 있지만 기약할 수 없다는 말에는 절망에 가까운 무력함을 느낍니다.
끝이 너무 무거웠나요? 주말 행복하게 시작하시고. 아름다운 지구에서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만들 수 있는 하루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