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내 몰라요.
아내, 남편 알아요. 사소한 것 까지 너무나도 다른 부부생활을
심층적으로 파헤쳐보는 부부탐구생활, 세번째 시간이예요.
마지막 글 올리고, 엄청난 부담에 허덕여요.
이제 그만 쓸까 어차피 더 기다리지도 않겠지 재미없음 어쩌지
오만가지 잡생각이 아내의 머릿속에서 오래달리기를 해요.
그러다가, 아주 오랜만에 글을 써요.
원래 잊혀질 만 할때 나타나는 "초강력 울트라 감질작전"이 반가운 법 이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맘 속 깊은곳에서 살림의여왕이 강림해요.
혼자 먹는 아침인데 정성을 들이 부어 뚝배기밥을 지었어요.
너무 잘 됐어요. 역시 난 못 하는게 없다고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줘요.
밥 짓는데 온 힘을 쏟아버리니, 반찬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요.
냉장고를 열어요. 한숨쉬고 닫아요. 냉장고를 열어요. 김치통을 꺼내요.
그리곤 한 입 먹는데..어머나!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면 이런 맛 일까요
너무 맛있어요.
진국은 이거예요. 이렇게 먹다보니, 신랑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되겠어요. 못 살 지도 몰라요. 신랑은 돈을 벌어다주니까요.
신랑 출근시키고, 동생이랑 술판을 거나하게 벌여요.
생각 같아선 비싼 바에 가고 싶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니까요.
아줌마 되고 나서 나한테 왜이리 박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날 위해 돈을 쓴게 언젠지 기억이 안나요.
빤쓰에 구멍이 나서, 엉덩이가 맑은 공기를 마구 흡입하고 있지만
새 빤쓰를 사자니 왠지 가계부에 빵꾸날까 걱정이 돼요.
아가씨 때 즐겨마시던 저 술 한병을 못사고 벌벌 떠니
동생이 사줬어요. 결혼하기 전엔 망할 지지배였는데, 어느새 천사가 되어있어요.
둘다 술이 떡이 되서, 라면을 끓였는데..
어머나! 내가 취한건지 세상이 취한건지..라면 냄비에 코뿔소가 있어요.
라면으로 다이빙을 하고 있어요.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떡이 없고 며칠전에 먹다 남은 칼국수면은 해치워야겠고.
쫄볶이를 만들어요. 한 입 먹는데, 오 마이 갓. 이건 천상의 음식이예요.
이런 걸 만들어 낸 내가 대견스러워 궁디 팡팡 삼만번을 스스로 해 줘요.
12월엔, 왜 그리 선물 할 데가 많은지
오븐이 "한번만 더 날 돌리면 이 집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갔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모카번을 만들어요. 키친에이드 같은 고급 물건이 있을 리 없는 내 집에선
그저 튼튼한 팔뚝이 최고예요. 팔뚝 살 빼자는 심산으로 반죽을 하고, 빵을 다섯개를 집어 먹어요.
젠장. 체중계 선생님이 "너 이러다 바지 안맞겠다"라고 하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최후의 보루 고무줄바지가 있으니까요.
내조의 여왕 시리즈 1탄으로 꽈배기를 만들어 남편 출근길에 들려보내요.
직원들이 올레를 외쳤대요.
내조의 여왕 시리즈 2탄으로 고로케를 만들어 남편 출근길에 들려보내요.
직원들이 빵집 하나 차려주라 했대요.
내조의 여왕 시리즈 3탄으로 카스테라를 만들어 남편 출근길에 들려보내요.
직원들이 못하는 게 없는 와이프라며 추켜세워줬대요.
아, 근데 이제 못해먹겠어요. 괜히 힘들고 일이 점점 커져요.
이사님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롤케이크를 하나 구워달래요.
..귀찮지만 해줘요. 나는 내조의 여왕이니까요.
옆가게 사장님이, 아는 거래처 사장님이, 아는 형아가...
뭔놈의 아는사람들이 총 출동해서 케이크를 주문해요.
케이크값 따윈 받은 적 없어요. 슬슬 내조의 여왕은 부아의 여왕으로 바뀌고
케이크들을 하루에 한개씩 구워서 들려보내며 웃음도 사라져요.
저 시키들을 아오지 탄광으로 싸그리 보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배꼽 깊숙히서 올라와요.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곧 받을 크리스마스 선물이 뭘까 기대하며
내조의 여왕 놀이를 계속해요. 진저브레드 쿠키를 밤 새 구웠어요.
동생 생일날 먹고싶은 케이크를 물어 만들어줘요.
저냔은 주둥이도 고급이예요. 저 케이크 원가만 얼만지 생각하면
자다가도 쉬가 나올 지경이예요.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기에 생일상을 차려서 갖다줘요.
아끼는 한우양지 넣고 미역국을 끓여요. 잡채도 만들어요.
신랑 생일날도 저렇겐 못 해 줄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엔 역시 통나무 케이크가 제격이예요.
이젠 눈 감고도 케이크쯤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내조의 여왕 놀이고 뭐고, 휴가 내고 혼자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나 없으면 라면-짜장면-라면-짜장면으로 연명 할 불쌍한 우리집 덩치를 생각해서 참아요.
내조의 여왕은, 남는 케이크 짜투리들도 그냥 버리지 않아요.
저렇게 뭉치고 쌓아 만든 케이크는 집에서 먹어요.
한입 먹어요. 또 한입 먹어요. 계속 먹어요. 세상에. 저만큼이나 먹었네요.
이젠 바지가 아니라 빤쓰도 작아졌어요. 이러다 신랑 빤쓰 훔쳐입을 지경이 될 것 같아요.
며칠 내내 오븐을 돌리느라 소홀했던 냉장고에서 두부가 생을 마감하고 있어요.
숨이 끊어지려는 두부를 강정으로 재 탄생 시켜줘요.
동치미도 담가요.
겨울엔 저녀석만큼 입을 행복하게 해 주는 녀석이 드물어요.
반찬하기 귀찮은 날엔 요 녀석이 효자예요.
저렇게 한 끼 먹고, 남은 걸 다음날 다시 먹으려는데
아놔 당근밖에 안남았어요. 누구 소행인지 확증이 서요. 가서 잡아다가 암바를 하고 싶어요.
버리긴 아깝고, 그냥 먹자니 왠지 맛 없고. 하지만 당근을 하나하나 씹으며 최면을 걸어요.
"가슴아 커져라, 가슴아 커져라".....커질 리 없어요. 이런 헛소문은 누가 퍼트린건지 모르겠어요.
조카의 시베리아 십장생의 십첸치짜리 신발장 같으니라고. 길 가다 잡히면 뒷통수 조심하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밤은 길고, 남편은 코를 곯며 잠을 자고.
밤이 길면 뭐해요, 저 인간은 쓸모가 없어요.
혼자 육두문자를 날리며 국수를 끓여 먹어요.
먹다보니, 쏘주가 생각나고. 마시다 보니 안주가 모자라고.
냉동실에 있는, 한 입 베 물면 촉촉하고 쫄깃해서 술이 술술 넘어간다는 촉촉오징어를 꺼내요.
쯔유에 마요네즈, 땡초를 섞으면 전대미문, 맛있어서 죽은 오징어가 살아 바다로 간다는 소스가 완성되요.
다음날, 숙취가 나를 잡아요. 만둣국으로 해장을 해요.
"어흐~" 40대 담배에 절은 직장인 아저씨 목구멍에서 나올만한 소리가 절로 나요.
이런 숙취! 나쁜 찍찍이 같은!!
간만에 쿠키도 구워요.
이 쿠키와 함께 우리 부부의 허리둘레도 늘어날 것 이예요.
시아빠 생신엔, 사랑받는 이쁜 며느리 작전을 펼쳐요.
폐백때 받은, 냉동실에 봉인 된 그것들을 꺼내 떡케이크를 만들어 드려요.
한 해 동안 뻔찔나게 사 먹고 쌓인 포인트로 아이스크림을 사 와요.
녹차 아이스크림은, 신랑하고도 바꿀 수 있을만큼 좋아해요.
하지만, 신랑과 바꾸진 않아요. 신랑이 저걸 백만개를 사 줄 수 있으니까요.
다시 생각해보니, 안 사줄지도 몰라요. 순간..바꿀까..하고 맘을 바꿔요.
요샌 깔맞춤이 대세예요.
동생이 사 준 세트 컵과 컵받침에 과일을 귀엽게 담아요.
우아하게 먹으려고 했지만, 30초만에 마셔버리고 말아요.
혹시 보고 있을 남편 여러분.
우리 주부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것에 굉장히 야박해요.
남편이 좋아하는걸 사는 건 별로 고민을 하지 않지만
내가 먹고싶은 걸 살 때는 햄릿이 했던 "죽느냐 사느냐"보다 더 큰 고민을 해요.
여러분이 벌어오는 금같은 돈, 아내들은 다이아몬드처럼 아껴요.
그러니 가끔씩 아내를 덮치는 지름신의 결과로, 아내들을 구박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하늘은 아내의 눈물 방울의 숫자를 세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저 방울 수 대로 곤장을 치면, 너는 맞다가 황천 갈 지도 몰라요.
아내 여러분. 화이팅이예요!
--------------------------------------------------
아직도 사진이 많이 남아있어요^^;
다음번부턴 그냥 올려야 하려나봐요. 흐흐~
드뎌, 잔고 0원의 늪을 벗어나
결혼하고 8개월만에 적금 몇 개를 들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또다시 입출금통장 잔고는 바닥이 되었지만
정말이지 눈물나게 기분이 좋아요. 열심히 모아서, 예쁘게 살겠습니당~
축하 해 주실꺼죠?헤헤-
날씨가 많이 춥네요. 아까 보니 눈발도 조금 날렸구요.
다들 별 탈 없이, 좋은 새 해 보내셨음 좋겠어요.
모든 레시피는, http://blog.naver.com/prettysun007 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