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니 조직개편이며 인사 이동 철이 겹쳐 점심 약속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평일엔
도시락을 안 싸게 되네요. (사실은 핑계.. ^^;)
대신 남편이 주일 마다 등산을 가는데, 꼬박 꼬박 김밥을 싸주고 있어요.
회사 선배랑 같이 가는데, 이 분이 제 김치 김밥을 몹시 좋아라 하신다며 김밥 먹는 재미에
꼬박꼬박 등산 가자고 하신다네요. (웬 선배 핑계래요. 자기가 좋아하면서... ^^)
포천에 주말 농장을 하시는데, 거기서 약수를 20리터씩 떠다 주세요. 받아 마시는 게 있다
보니 이제 안 쌀래야 안 쌀 수가 없답니다. 완전 물물 교환이죠? ^^

아무래도 김치 김밥은 재료다 단촐해 성의 없어 보여 처음엔 이렇게 두 종류로 싸줬는데,
역시 김치 김밥이 최고래요. 모양도 때깔도 모다 필요 없다네요.

김치 김밥은 김치만 맛있으면 어떻게 싸도 맛있는데, 제가 싸는 방식은요...
다시마를 넣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 참기름, 소금, 깨로 양념을 하구요, 김치는 길게 찢어서
참기름, 설탕, 후추 약간 넣어 조물 조물 무쳐놔요. 김치가 많이 시었을 경우엔 설탕을 조금 더
넣어주구요, 김치가 아주 맛있을 때는 양념을 거의 하지 않아요.
햄, 크레미, 달걀. 달랑 세 종류만 넣을 거라 달걀 지단은 다른 때 보다 두껍게 부쳐주구요, 햄도
좀 굵게 썰어 구웠어요.

내용물을 두께 맞춰서 차곡 차곡 쌓아야 나중에 썰었을 때 모양이 이쁘답니다.
재료는 꾹꾹 눌러서 잘 말아줘요. 그래야 썰 때 잘 부숴지지 않아요.

김밥 썰때 두개를 같이 썰면 서로 지지대가 돼서 잘 안 부숴지고 쓱쓱 잘 썰려요.

김치 김밥입니다. 참 없어 보이지만 맛있다니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도시락에도 스타일이라는 게 있는데 좀 아쉬워요.

대신 간식을 좀 럭셜하게 준비 했어요. 스넥 오이가 아삭아삭 하니 등산 하면서 먹음 그만이에요.
스넥들은 다 남겨 왔더라구요. 다음 부터 스넥류는 패스.

다음에는 스타일을 좀 살려서 주먹 초밥을 만들기로 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랍니다.
엄마는 김밥 싸고 나면 남은 재료들을 모두 총총 다져서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는데,
전 김밥 보다 그게 더 맛있었어요.
재료는 뭐든 다 가능해요. 이번엔 바짝 구워 기름기를 뺀 베이컨과 흰살 햄, 단무지, 당근을
다져서 배합초를 섞은 초밥에 섞어 줘요.

초밥틀에 잘 섞은 밥을 꼭꼭 눌러 담아줘요. 최대한 잘 눌러 담아야 떼어냈을 때 안 부숴지거든요.
이 초밥틀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주고 가신 거예요... 남편이 영동으로 침 맞으러 다니던 무렵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곤 했는데, 엄마가 싸주시던 주먹 초밥이 생각나 초밥틀 어디서
사냐고 여쭈었더니, 엄마가 쓰시던 걸 깨끗이 씻어서 주셨어요. 30년도 더 된거네요.
그 해 5월에 주셨으니까 돌아가시기 한달 전이에요.
이거 주시면서 '딸은 도둑이라더니 엄마 살림 야금 야금 잘도 가져간다' 그러면서 웃으셨는데,
도둑이 채 배부르기 전에 아쉬움만 잔뜩 남긴 채 가셨네요...
4월 27일이 엄마 생신이고, 6월 26일에 돌아가셔서, 5, 6월이 저에겐 너무 힘겹기만 합니다.
5월에는 엄마랑 크게 싸운 적도 있어요. '엄마 없다고 생각해라'하고 매정하게 돌아가셔서
1주일 동안 연락도 못 드리고, 매일 매일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
했더니 신호 한번 가니까 받으시더라구요. 첫마디가 '전화해줘서 고마워, 우리 딸.'
평생 그렇게 엄마랑 자매 처럼 티격태격 재미나게 살 줄 알았는데...

김치 김밥과 주먹초밥이에요. 초밥틀에서 떼어 낸 초밥을 흰살햄, 구운 베이컨, 김을 둘렀구요.
달걀초밥은 후라이팬에 달걀물을 조금 부어 그 위에 굴려주면 돼요.
베이컨 위에 시금치를 묶어 주면 더 이쁜데 없어서 생략.
그래도 도시락은 뚜껑을 열었을 때, 이렇게 '이야~'하는 맛이 있어야... ^^

전날 불고기 양념해서 구운 차돌백이, 당근, 피망, 단무지를 총총 썰어 미리 준비해 뒀어요.
밥알 크기 보다 작게 썰어야 잘 뭉쳐져요.

이날은 유부초밥이었답니다. 김밥은 항상 6줄 씩 싸요.
등산 하고 와서 저녁에 또 찾거든요. ^^

홈플러스에서 사온 친환경 종이 도시락이에요. 이거 크기도 높이도 딱 맘에 들어요.
일회용품 쓰는 거 꺼려지지만 남자가 빈 도시락 통 챙기는 거 가오 상할 것 같아서. ^^;

도시락과 인삼 먹인 배즙, 그리고 물티슈와 냅킨, 과일, 항상 이렇게 챙겨줘요.
배즙이 기관지에 그렇게 좋대요. 그래서 황사도 물리칠 겸 등산 갈때 꼭 배즙을 챙겨줘요.

지난 주말에는 장어 초밥을 곁들였어요.
마트 가서 민물 장어 한마리 손질해 달라고 해서 밀가루로 깨끗이 씻어 점성을 제거해줘요.
기름기를 빼기 위해 살짝 쪄준 후, 등쪽에 촘촘히 칼집을 내어 간장 양념
(간장+굴소스+설탕+맛술+다진마늘+생강즙+후추+물)에 졸여 줘요. 식당에서는 양념을
발라가면서 굽는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그렇게 하면 양념이 잘 배지 않아 싱겁다...고 해요.
실은 장어 구이는 집에서 처음 해봤어요. 이제 별 걸 다하죠. ^^
밥은 물과 쌀을 동량으로 잡고, 다시마 서너 장을 넣어 쿠쿠 한테 김초밥 용으로 해달라고 부탁.
뜨거운 김을 날려가며 배합초를 골고루 섞어준 후 식으라고 두고, 김밥 말기. 김밥 6줄을
말고 나면 초밥이 알맞게 식어요. 생와사비를 물에 개어 조금씩 발라주고, 장어를 적당히
잘라(꼬리랑 몸통 넓이가 너무 차이나서 같은 크기로 자르기가 정말 힘들어요.꼬리부분은
사선으로 잘라주고, 몸통은 직선으로 쓱쓱.) 김을 감아서 밥과 장어를 밀착 시켜 줘요.
장어 초밥 최고로 맛있었다고 문자가 오네요. 장어를 향한 남자들의 로망이란...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해주는 센스. ^^
무려 5일 연휴로 쉬고 나니 출근해도 몽롱해요. 연휴 중에는 남편과 함께 꽃박람회가 열리는
호수공원에 몇번 나가 봤어요. 오리도 보고, 잉어도 보고. 참 한가롭고 좋더라구요.
꽃박람회 구경한다고 친구 가족들도 간간히 일산까지 와서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나름 알차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답니다.
저녁엔 증권 회사 다니는 친구랑 사주 카페에 가기로 했어요. 언제쯤 돈을 벌게 될지
궁금하다며. 저는 앞으로 다가올 제 40대가 몹시 궁금해요.
20대는 일을 찾아 사랑을 찾아 눈물 흩뿌리며 청승 떨며 보냈고,
30대에 들어 남편 만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엄마를 보내면서 참 많이 단단해졌거든요.
40대에는 나와 가정 외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50대를 함께 누릴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