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먹는데 초연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공짜로 잘 먹을 기회가 있다고 우르르 몰려갈 때도 저는 속으로
"그렇게 먹어봤자 4시간 후면 라면이라도 끓여먹자고 할텐데 뭘..."
하고 껴본 적이 없습니다.
부페 가도 맛난 코너에 줄 서서 기다려본 적도 없고,
맛집 찾아 먼 길 가는 건 절대로 스스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맛나고 건강에 좋은 요리라고해도 만드는 과정이 길고 복잡하면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뭐 먹고 싶다며 징징대는 사람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변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부터인 듯 합니다.
아니, 그것이 계기가 아니라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부터인 듯합니다.
그 계기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정성들인 음식을 먹어보질 못했습니다.
아니, 그런 음식은 보고 먹어봤으나, 저를 위해 차려준 음식은 먹어보질 못했습니다.
사는 것이 힘겨웠던 제 부모는 정성들여 음식을 해서 자식들에게 줘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뭔가 만들 때는 정성을 들였으나 그것은 일회성이었을 뿐,
그래서 제게 '식사'란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고 한끼 채우는 행위였을 뿐입니다.
저는 먹는 것, 입는 것에 치중하고 몰두하는 것을 경멸했습니다.
캠퍼스를 나오면서 어느 집에 맛있는 뭘 먹으러 가자고 선동하고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내심 경멸했습니다.
무슨 옷을 입고 싶다고 밤잠 못자고 울었다는 동급생이나, 그 핸드백을 꼭 사겠다고
부모에게 데모를 하며 돈을 타냈다는 동급생을 내심 비웃었습니다.
어차피 다 사라질 것들, 그게 뭐라고...

먹을 것에만 초연한 게 아니라, 집안을 꾸미거나 화초를 가꾸거나 장식품을 사는 것...
모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먹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땐 스스로 '내가 먹는데 아주 목을 매고 있구나...'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저는 이런 자신의 변화가 아주 대견스럽습니다.
저는, 자신을 많이 돌보고 아끼게 되었으니까요.
전에는 저 자신을 위해 맛난 음식을 해줘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드는 음식 모두가 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남에게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게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저 자신에게 주기 위해 반나절 사골에서 피를 빼고 밤새 삶아서 사골국물을 냅니다.
그리고 온전히 저 자신에게 선물합니다.
가을에 열심히 김장을 담궈서 자신에게 맛난 김치찜을 해서 안깁니다.
내가 먹고 싶은 빵을 열심히 만들어서 맛난 빵을 만들어 커피와 함께 자신에게 줍니다.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
그러나,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본인은 잘 못 느낍니다.
자신을 사랑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음식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대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에 좋은 현미밥을 하고, 매끼 막 만든 음식과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밑반찬으로 식사를 대접합니다.
절대로 라면이나 사온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게 하지 않습니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어려운 손님을 대접하듯, 자신에게 매끼 식사를 대접합니다.
일년 내 먹을 매실을 열심히 담가서 맛난 매실액기스를 담그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깨끗하고 싱싱한 채소를 거둡니다.
한가지 재료로 만든 반찬이면 지루할까봐, 같은 가지를 가지고도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반찬을 해서 맛이 좋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해줍니다.
새싹을 기르면서 저는 기르는 즐거움보다도 그것으로 만든 건강한 요리를
먹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저는 '자신에게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것들을 알뜰히 요리해 먹다보니, 어느새 그 음식을 대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얼마전 친구에게 갔더니 내 음식 이야기를 듣고는 "네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그렇게
잘 만들어먹는다니 너무 안심이 되고 기쁘다"라고 하더군요.
친구는 행여나 제가 대강대강 끼니를 때우지나 않을까 걱정했나 봅니다.
자신에게 맛나고 따끈한 밥상을 매끼니 대접하다보니
먹는 일이 즐거워지고 자신이 대견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비로소 저는, 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상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내겐 그립고 따뜻한 밥상의 기억이 없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우습게 생각했고 무시했던 '먹는다'는 개념이...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는, 입안에 음식을 밀어넣는 행위가 아님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는 아주 좋은 레시피를 만나면, "이걸 만들어서 나 자신에게 먹여야지"하는 생각을
먼저합니다.

내 자신이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존중하면서부터,
다른 이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을 위해 수고하는 시간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배고픔을 덜기 위한 속물적인 행동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는 행위는, 그를 가장 깊이 사랑하는 행위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 새끼 목구멍에 먹을 거 들어가는게 가장 보기 좋다는 말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을 만들기 위해 몇시간 부엌에서 동동거리는 주부의 손길이
얼마나 존중받을만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혼혈아 미식축구선수 하인즈 이야기를 보면,
흑인주거지역에서 살았는데, 그 지역에서도 하인즈 엄마(한국인)는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지역은 대개 자식들의 교육에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는데
하인즈 엄마는 새벽에 일하러 나갔어도 하인즈 일어나 밥 먹을 때는 반드시 귀가해
밥을 차려놓고 다시 일하러 나가곤 했다고 합니다.
하인즈의 친구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놀랐다고 하더군요.
하인즈는 거의 일만 하는 엄마에게서 자랐어도, 끼니를 꼭꼭 차려주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래 전 감명받은 영화 중에 <바베트의 만찬>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잔잔한 영화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라 TV에서 재방할 때마다 봤습니다.
덴마크의 작은 해변가 마을에 아주 엄격한 목사 밑에 두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청교도적으로 열심히 선을 행하며 마을 사람의 중심이 되어
살았지요. 그런데 이들에게 어느 날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바베트.
그녀는 그녀들 집에서 음식을 하며 살게 해달라고 하고 그들의 가족이 됩니다.
그 청교도적인 자매는 너무너무 살림을 알뜰하게 하는데 바베트는 그 청교도적인 삶을
철저히 따라서 살아가줍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마을 사람들이 서서히 분열되고 헐뜯고 갈등이 깊어집니다.
자매는 너무 고민하지요.
그런데 어느날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자매에게 말합니다.
자매는 바베트가 이제 떠나겠다며 슬퍼하지요. 바베트는 그들에게 마을 사람들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합니다. 자매는 그렇게 하라고 하지요.

그러자 바베트는 멀리서 듣도보도 못한 온갖 식자재부터 고급 식기까지 몽땅 들여옵니다.
커다란 자라같은 것이 들어오자 자매는 바베트가 무슨 엄청나게 무서운 음식을
먹일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동네에 소문이 다 퍼집니다.
그러나 바베트에게 아무도 그런 말을 못하죠.
마침내 만찬일, 외부에서 온 귀한 손님까지 같이해서 마을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습니다.
생전 보도듣도 못한 요리에 마을 사람은 어리둥절하는데, 외부손님은 '이런 요리는
프랑스 1급식당에서나 맛본 것이다'며 감탄하며 먹죠.
그제사 사람들은 안심하며 그가 먹는대로 따라 먹습니다.
그리고...
그 정성이 깃든 맛있는 요리를 하나하나 먹으면서, 사람들은 차츰 마음이 녹아내려갑니다.
혀를 적신 행복은 차츰 몸을 기쁘게 하고...이어서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음식이 가진 그 능력을 이 영화는 과장 없이 보여줍니다.
마을 사람들은 만찬을 끝내고 집을 나서며 예전에 했던 것처럼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하며 진정한 화해를 합니다...

먹을 거리도 다양하지 않았던 옛날.
우리네 사람들은 흔한 재료를 오랜 불에 끓이고 삶아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가마솥 앞에 오랜 시간 나뭇불을 지피며 오래오래 콩도 삶고 우거지도 말렸습니다.
요즘 먹을거리는 지천으로 깔려서 넘쳐나지만
저는 먹을거리가 많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사먹을 메뉴는 그렇게도 많은데 툭하면 "왜 이렇게 먹을 게 없어?"하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 자신에게 먹을거리를 대접하면서부터
세상에 해먹을 게 그렇게도 많은 겁니다...
지금도 제 레시피함엔 레시피가 넘쳐나고, 당장이라도 해먹어야할 요리 레시피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나 언제 해먹어줄거유~하고...
머잖아 다 만들어서 나 자신에게 대접할겁니다.
어릴 적 누구에게도 대접받지 못했던 보상을 제가, 제 자신에게 할 겁니다.
누가 내게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자신에게 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면 어느 하세월에 그게 이뤄질지 알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내 자신에게 해주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누구는 그럽니다.
나라면 그런 거 할 시간에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라고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나에겐, 나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일이 지금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가장 생산적인 일입니다.

생산적인 일이라는 일에 몰두하고 집에 돌아와서 지친 몸에 대강 끼니를 때우고
잠을 청하는 일을 이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싸고 고급스런 음식은 아니더라도, 내 정성과 마음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서
자신을 가치있게 대접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면서, 그러한 생각은 생활 여기저기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신경 쓰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욕구와 소망을 외면하고 무심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좋은 것이라는 게 나에게도 좋은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소리에 먼저 귀기울입니다.
내 말을 들어줄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이니까요.
내가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이의 부당한 요구나, 책임성 없는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지요.
남들이 뭐라고 하거나, 내게 꼭 필요한 일이면 합니다.
내게 책임져주지 않는 남, 내게 애정을 가지지 않은 남의 요구보다
내 자신의 요구를 먼저 챙깁니다.

오늘 밤, 저는 식빵을 구웠습니다.
찢어지는 보드라운 빵결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정성을 들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임을
음식을 만들면서 비로소 뒤늦게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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