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국 끓여 먹어라.."
"끓여 먹기 싫으면 집으로 오던지.."
"생일?"
어제 엄마의 전화 받고 알았는데 5월2일이 제 진짜 생일이라는군요.
"진짜 생일?"
(5.2일이 저를 다리 밑에서 주워 온 날이래요.ㅋ)
생일이라고 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생일 날 미역국 끓여 먹어본 게
언제적 일인지 기억도 안 나요.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어?"...
"이 험한 세상에 왜 태어났니?"
요즘 같으면 "내가 정말 이 험한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싶기도 하네요.
먹고 살기,참 힘드네요. 힘들어..
젠장할,된장할,늙은 처녀 먹고 살기 힘들어..힘들어..
그래도 어쩌겠어요. 열심히 살아야죠..
"생일이 뭐라구.."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이번에 미역국 끓여 먹지 못하면 또 일 년 기다려야 하니
갑자기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두 주먹 불끈 쥐고 뒤졌어요.
"냉장고를 뒤져라!!"
멀쩡해 보이지만 찌글찌글한 오렌지와 청포도도 있구..
그럭저럭 먹을만 했던 백오이소박이도 있구..
(전에 직접 담근 백오이소박이 이렇게 익었어요.
나름 무르지 않고 먹을만...)
아..스팸도 있네...
스팸,스팸,스팸도 있네...
(저 이거 좋아해요. 매일매일 쌀밥에 먹고 싶어요.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해서 못 먹어요.0.0"")
흐릿해지는 거 빼고..
저 뒤쪽으로 보이는 게 뭘까?
자, 그럼 미역국과 괴기찬을 좀 만들어 봅니다.
미역국!!
저도 미역국은 좋아하지만 저보다 천 배쯤 미역국을 좋아하는 옆에 사는 늙은 처녀 귀신 때문에
한 솥을 끓였다지요.
"많이 먹어라..많이.."
"네 엄마도 너 낳으실 때 힘드셨을텐데..-.-"
냉동고를 털어보니 제가 얼마나 살림을 개떡같이 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겠더라구요.
매일매일 마트에 가서 사다가 얼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주루룩 나옵니다.
건미역이야 넘치게 있고 마치 내 생일을 위해 준비해 둔 것 같은 기름기 없는 땡땡 얼은 쇠고기 발견
땡땡 얼은 고기와 불린 미역,다진마늘,참기름에 달달 볶은 후
푸욱----끓여 주고..
뽀얀 국물이 나오게 부글부글 오래오래 끓여 주고..
아무 생각없이 가스가 다 해주니 미역국이 젤 편하면서 만만하더군요.
생일상엔 그래도 잡채가 떡하니 있어야 폼도 좀 나겠지요.
잡채에 고기는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이지만 냉동고에 잡채용 돼지고기가 있으니
"야호..오늘은 고기 들어간 잡채닷!!"
표고버섯도 있어서 표고도 넣고..
당근,청양고추가 잡채 채소의 전부!!
양파는 언제적부터 없었는데 아직까지 없어요. 없어...
불린 당면에 간장,식용유,참기름,설탕약간,후추,통깨,다진마늘 넣고 볶다가
볶은 야채 얹어서 섞으면 휘리릭 잡채가 완성
잡채 없었음 어쩔뻔..아찔합니다.
들어간 거 없어서 맛이 어떨까 살짝 걱정했는데 역시 생일상의 꽃은 잡채네요 .잡채..
맛이 있고 없음이 중요한 건 아니고 생일상엔 잡채가 있어야 옳아요.
냉동브로컬리, 뭔 요리를 하겠습니까?
초고추장이 진리죠.ㅋ
어제 생일의 주인공은 바로 전데 이 미역국은 또 다른 늙은 처녀귀신의 미역국이랍ㄴ다.
빠짝 말라서는 이렇게 많이 먹고 그래도 살 안 찌는 얄미운 늙은 귀신!!
테이블 옮기기 귀찮아서 벽을 보며 나란히 앉아서 먹을 수 밖에 없는 자취생의 현실!!
그래서 옆의 국그릇 비교가 더 확실히 됩니다.
날짜를 보니 4월 16일까지였던데..
어묵 한 봉 너무 많아서 3장 볶아먹고 냉동고에 넣어뒀던건데 맛,냄새는 괜찮터라구요.
냉동고를 믿어 봅니다.
괜찮겠지..
아삭이 고추,당근 넣고 어묵도 볶고..
여기에 양파가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2
양파의 빈자리를 두 번째로 느끼고..
냉동삼치도 있으니 한 토막 구워 볼까?
소금간을 해서 얼려 놨던거라 그냥 굽기만 하면 되는데..
전에 한 토막 구워 먹었는데 비린내가 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생선의 비린내를 그래도 좀 잡는 법을 알려 드릴게요.
소금간을 한 생선을 뜨겁게 달군 팬에 앞,뒤 노릇하게 구워줍니다.
생선이 노릇하게 구워졌으면 통마늘(편마늘도 가능)을 넣고 남은 기름에 마늘도 노릇하게 구워줍니다.
마늘까지 노릇하게 구워졌음 그 마늘기름에 로즈마리를 넣고 살짝 향을 내줍니다.
마늘과 로즈마리 향이 나온 기름을 마지막에 끼얹어 주면 생선에서 마늘의 향과 로즈마리 향이 나서
비린내가 좀 덜 납니다.
물론 마늘,로즈마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생각해 보셔야 할 듯!!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느 생일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죠.
1년에 한 번 상다리가 휘어지는 게 생일 날이라는데
저는 그냥 있는 재료로만 만들어서 생일 상 치고는 비실비실합니다.
하지만 쇠고기까지 넣은 미역국은 1년에 딱 한 번 생일 날에나 먹을 수 있다지요.
자취생들에게는...
"에게...먹을꺼이 아무것도 없네.."
졸면서 얘기하다가 갔구, 시어머니가 없으니 설거지 안 하고 내일 해도 되겠지만 그럴수는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