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불려 심심하게 된장에 지졌다.
국도 아닌데 국물까지 싹싹 두 대접이나 먹었다.
올 들어 두 번째 따온 상추와 쌈채, 더덕순은 쌈으로
쌈장은 양념간장이다. 참기름, 고춧가루 넣은 간장에 잣 한주먹 얹어.
돌나물 물김치와 가지무침, 죽순과 야채볶음.
김장김치 씻어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친, 묵은지 무침이다.
삶은 뜨거운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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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오전 9시쯤 돼 그가 나가 보니 시장에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12시와 오후 3시쯤에도 다시 나가 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오후 5시쯤 다시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고 대답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고 말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지불하여라.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부터 시작해서 맨 처음 고용된 사람까지 그 순서대로 주어라.’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 각각 1데나리온씩 받았다. 맨 처음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는 자기들이 더 많이 받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똑같이 1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들은 품삯을 받고 포도원 주인을 향해 불평했다.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은 고작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되게 일한 우리와 똑 같은 일당을 주시다니요?’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일꾼 중 하나에게 대답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불의한 것이 없네. 자네가 처음에 1데나리온을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자네 일당이나 받아가게. 나중에 온 일꾼에게 자네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네. 내가 내 것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선한 것이 자네 눈에 거슬리는가?’
이처럼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될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가지고 노동권과 생존권을 연결하여 사유한다.
노동과 돈, 생존의 문제는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 삶을 관통하는 가치 척도일 수 있기에,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길게 마태복음을 인용한 건 노동권과 생존권, 시간당 계산되는 임금이 아닌 생존권으로서의 임금, 이런 걸 말해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건 네가 부에 대해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돈에 대해 가져야 하는 네 삶의 태도이니 네가 사유하고 몸으로 익혀야 하는 걸 거야.
이 이야기에선 ‘맨 처음 온 사람들의 태도’를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그들은 왜 자신이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비교다.
‘나중에 온 이’와 비교를 통해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평가했던 게지.
너의 일을 무엇과도 비교하지 말거라. 괜한 비교로 누구보다 우쭐하려 하지도 말고 스스로 비참에 빠뜨리지도 마렴. 그게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나뿐 아니라, 남을 비교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부와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코뮤니타스’와 고병권의 ‘화폐, 마법의 사중주’도 추천한다. 심심할 때 읽어보렴.
‘나중에 온 이’든, ‘맨 처음 온 이’든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렴.
오늘도 행복하거라.
* 요즘 어느 당 문제로 시끄럽다. 친구들과 또는 선배들과 토론이 벌어질 수 있겠다 싶어 덧붙인다. “문제들이 생길 때 갖고 있던 생각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그 문제가 중대하면 할수록 더욱.” 이런 마음으로 친구와 선배들의 토론을 경청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