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굴비는 최고의 생선이었습니다.
갈치, 꽁치, 고등어 같은 생선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생선이었으나,
굴비는 그렇게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은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옛날 얘기 속의 자린고비가 굴비 한마리를 매달아놓고 반찬삼아 밥 한술 먹고, 굴비 한번 쳐다보고 했을까요.
두번 보면 "짜다, 한번만 봐라"했다잖아요.
굴비는 큼직한 조기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어느 정도 말린 것을 말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냥 소금물에만 들어갔다나온 것 같은, 거의 말리지 않아 생물조기나 다름없는 것을 굴비라고 팔고있지요.
거의 말리지 않은 것이라 받자마자 냉동해놓고 먹어야하구요.
또 이걸 구우면, 예전에 먹었던 그 굴비 맛이 아니어서,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랬는데, 며칠전 친정오빠가 굴비를 몇마리 주었습니다.
아마 오빠도 저 같은 불만이 있었나봐요. 요즘 굴비가 우리 어렸을 때 먹었던 그 굴비 맛이 아닌 것이...
명절에 들어온 굴비를 베란다에서 말렸다며 몇마리 주었습니다.
굴비를 주면서 " 너무 많이 말린 것 같더라"하길래, "그럼 찢어서 고추장에 무쳐먹을 때 염려놓으셔"했는데요.
아, 그게 글쎄, 어렸을 때 먹었던 바로 그 굴비 맛입니다.
보기에도 요즘 파는 굴비보다 많이 말랐죠?
맛이 궁금해서, 한마리 가스렌지에 달려있는 그릴에 구웠는데요,
수분이 적은 탓에 거죽이 보통 것보다 많이 타긴 하는데요, 맛을 보니 딱 옛날 그맛 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런데 구워보니, 왜 요즘 굴비를 그렇게 말리지않은 상태로 파는 것이 알것도 같았습니다.
아마, 조기를 말려서 팔면 크기가 많이 줄어들어 제 값 받기 어렵고,
덜 마른 것에 비해서 비린내도 심하고,
또 구워 놓으면 많이 말리지 않은 것에 비해서 양이 적어서 불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빠가 말려준 굴비를 구워먹으면서...잠시 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1983년인가, 84년인가, 근 30년전 어느 여름 저는 남해쪽에 피서를 떠났더랬습니다.
휴가지에서 전화를 했더니, 그만 아버지가 쓰러지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거에요.
아직 일정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와보니,
아버지께서는 뇌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터지는 뇌동맥류 파열로 입원중이셨어요.
당시로서는 참 어려운 수술이었던 뇌수술을 받으셨지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이시던 아버지께서 굴비가 드시고 싶다고 하는거에요.
당시 제가 다니던 신문사 바로 앞길이,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새벽이면 수산시장이 섰던 곳이어서,
신문사 앞길로는 어울리지 않게 건어물가게도 있고 생선이나 어패류 파는 가게가 여러개 있었어요.
건어물가게에 가보니 가게 앞에 큼직한 굴비가 한두름 걸려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비싸보였습니다.
한두름을 다 살 능력은 되지않아서, 한마리만 팔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하게 팔수 있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거금인 5천원을 주고 한마리 샀습니다.
길이가 20㎝도 넘는 큼직한, 그 굴비 한마리를 들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굴비 한마리를 받아든 우리 엄마는 그걸 구울데가 없어서 그걸 들고 연세대 앞 굴다리 근처의 어느 식당에 가서,
굽는 삯으로 5백원을 내고 구워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드실 때 옆에서 한점 먹어보니,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아버지께서 달게 드시는 이유를 알 수 있더라구요.
그후에 한 마리 더 사다 드리고는 더는 못사다드렸습니다.
당시 5천원이면 지금 돈으로 몇만원인데...그 굴비값도 부담스러운 가난한 월급장이였죠..제가...
지금도, 당시 사다드린 굴비의 크기며 마른 정도, 맛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데..요즘은 그런 굴비를 통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굴비를 찾을 수도 없고, 그런 굴비를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도 이젠 안계시고..
큼직하고 통통하며 많이 마른 굴비...이젠 그저 제 머릿속에만 있는 그리운 굴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