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만해도, 매달 한번씩 명동성당이며 정동이며, 절두산이며...여기저기 다니시곤 했는데,
4,5년부터 3년간 해마다 한번씩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시면서 바깥활동, 많이 줄이셨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행동반경이래봐야, 고작 집→ 성당→ 노인정→ 집, 이게 거의 전부입니다.
이따금 다른 아들네며 딸네로 가시긴 하지만...그것도 많아봐야 일년에 한두번...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행동반경도 너무 좁고, 얼굴을 대하는 사람도 뻔하고, 그날이 그날인 것을...
제가 가끔 나가서 외식을 하는 건...단순히 제가 밥 하기 싫어서만은 아닙니다.
사실 요새 나가서 화학조미료 많이 넣은 음식 먹고 들어오면 배가 부글부글 끓어서, 외식이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외식을 하러 나가는 건....'어머니 바람 좀 쏘여드렸으면...' 하는 속마음도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식당 다 젖혀두고...먼 곳에 있는 식당으로 고르는 거죠.
저희 친정어머니는 아직 연세가 젊으셔서 여기저기 친구분들과 잘 다니시는데다가,
주말이면 남동생과 오빠(주로 남동생)이 번갈아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거 사드립니다. 저희 시어머니에 비하면 참 팔자가 좋으시죠!
(*환아 *중아 고맙다...오빠도 감솨!! )
그런데 저희 시어머니께서....그렇지 못하셔서...
저는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어서...계절을 느껴 보시라고..외식하자고 하면...가끔은 제 속마음도 모르시고,
"그냥 있는 대로 집에서 먹자, 난 집밥이 제일 좋더라..."하십시다.
지난 주말에도, 모시고 외식하려 했더니..싫다고 하셔서...ㅠㅠ
오늘은...지난 주 거절하셨던 때문인지...선뜻 그러고마 하셨습니다.
울 어머니...이젠 연세 탓에 영 기운이 없으신 듯 합니다.
워낙 민물장어 좋아하시는데다가 민물장어가 보양식이길래 장어나 사드릴까 하고 모시고 나왔더니, 장어 싫다고 하시네요.
요즘...집 반찬이 주로 생선과 나물이어서..아무래도 기운 차리시려면 고기를 드셔야할 것 같아서 고깃집엘 모시고 갔었습니다.

20년전...제가 다니던 신문사의 정기휴일은 월요일이었습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꼬박 근무하고, 월요일날 쉬는 거죠.
당시 우리 신문사 미혼남녀들, 우스개소리로 '신세계백화점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과 미팅시켜주세요'였습니다.
휴일 때문에 영 데이트를 할 수 없으니..월요일날 휴무인 이성을 만나야한다는 거였죠..^^
이렇게 일요일날 근무를 하다보면..아무래도 평일에 비해서, 점심시간도 길고..근무가 다소 느슨합니다.
게다가 당시 모시고 있는 부장님이 서울 시내의 전통있는 맛있는 집들을 많이 알고 계셔서..
그때 참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으러 다녔더랬습니다.

그때 가본 고깃집 중 하나가 마장동 우시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고기를 둥근 팬에 구워주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식당이름은 기억나질 않아서..어딘지도 몰랐었죠.
그랬는데..82cook에서 그곳이 왕십리의 대도식당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둥근 팬 사진을 보고...
일산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저희 집으로 오다보면 행주산성 부근 오른쪽에 '40년 전통..'어쩌구하면서 대도식당이라고 써있는데...
예전에 제가 갔던 식당이 바로 그 식당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는...그저 그런 식당에 불과했었지만,
이름을 알고나서는 한번은 가봐야할 그런 식당이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시인의 '꽃'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요..^^;;)

어머니께서 장어는 싫다고 하셔서...대도식당엘 갔습니다.
오후 3시쯤 찰떡을 드셨다고..별 생각이 없다고 하시고, 저는 요새 평소 식사의 ⅓~½ 수준으로 식사량을 줄이고 있어 많이 먹지 못하고...
세 식구가 등심 2인분을 시켰습니다.
이 집 등심은 250g. 다른 곳은 200g, 심지어 150g인 집도 있던데...많은 편이잖아요. 가격은 1인분에 3만3천원.
가격은 보통인데, 다른 곳에 비해서 고기양이 많은 탓인지...밑반찬류는 거의 없었습니다.
깍두기, 양배추와 고추장, 파무침이 전부...
메뉴도 달랑 등심 한가지뿐이었습니다. 그 흔한 갈비도 없이, 오직 등심뿐...
다양한 반찬과 여러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먹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라면...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할듯...
그리고 고기는 여전히 둥글고 두꺼운 무쇠팬에 구워주네요.^^

고기 맛은 좋았습니다.
같은 등심이라도..왜 여러 부위가 있잖아요? 이 집 등심이 그랬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러 부위가 있더라는...
입에 맞으셨는지 별로 드실 것 같지 않던 어머니, 구워진 고기를 드시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놓아드리니..
놓아드리는 대로 잘 잡수시네요.
그래도 고기는 2인분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밥을 두공기 볶았어요. 오직 김치만 넣고 밥을 볶아주는데..맛이 괜찮았고, 특히 누룽지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해가 너무 일찍 지는 바람에, 요새는 오후 6시만 되어도 어둡기 시작하더라구요, 바깥 경치를 짧은 시간밖에는 못보셨지만...
차 타고, 좀 나온 탓에 기분전환도 좀 되신 듯 했습니다..우리 어머니...
돌아오는 길에..말씀 드렸어요...
"어머니, 제가 외식하자고 하는 거는요...저, 밥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구요. 밥도 먹고 어머니 바람도 쏘여드리려고 그러는 거에요.
가시자고 하면..그냥 따라 나서세요...싫다고 하지 마시구요...집이랑 성당만 왔다갔다하시니까 답답하시잖아요..."
"그러긴 그렇다만..."
아마, 이제는 제가 나가서 드시자고 해도 싫다고는 안 하시겠죠??
더 추워지기 전에...저 멀리, 반구정에 있는 장어집 한번 모시고 가야겠어요.
해가 빨리 떨어지니까..아주 일찌감치 가서....임진강 강물도 보시고...석양도 보시고...하시게... 날 잡아서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p.s. 글 쓴 후 댓글을 보니..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해서...덧붙여봅니다.
저희 친정부모님에 대한 글이나, 시어머님에 대한 글을 쓸 때..참 조심스럽습니다.
자칫...제가 효녀나 효부로 여겨질 것 같아서요..저 절대로 효녀 효부가 못됩니다...효녀 효부 아닙니다...오해...세요.
친정부모님께는 마음은 있지만, 시간과 몸이 받쳐주지 못하며,
시어머니께는 몸도, 시간도 따라주나...마음이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늘...이 점 때문에 괴롭습니다...
다만..'나도 사람이다.., 사람이니까 모자라는 것이다...' 이러면서 제 스스로를 달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