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보였습니다. 그때 들리는 소리라고는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뿐...
옛 생각이 나더이다, 30년도 더 지난 옛 생각이..., 그리고 엄마 생각도 나더이다...
고3때,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 먹고 9시쯤 자서 밤 12시에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커피 한잔 타 놓고 저를 깨우셨죠.
눈 비비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그대로 밤을 꼴딱 새우고, 학교에 갔습니다.
광화문 버스 정거장에 내리면 하늘은 노랗고, 가끔은 빙빙돌면서 어지럽고, 목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걸을 기운이 없어서 하늘거리며 정동길에 접어 들곤했죠. 엄마 말씀이 '얼굴에 노란꽃이 폈었다'고...
어지럽고 목에서 피냄새는 올라와도, 그 고통을 즐겼던 것 같아요.
지난 1974년, 고3을 이렇게 보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죠...
아버지가 별을 달지 못하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시게 된 건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모아놓은 돈이 있을 턱 없는 저희 부모님들은,
아버지가 예편하시면서 일시불로 받은 1년치 연금에다 빚도 좀 얻어서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들어먹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아버지에 온실의 꽃같은 우리 엄마가 이문을 남기셨을 리가 없었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그 무렵이었어요.
눈치가 바싹한 저는 그래도 당시 일류라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 후의 앞날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딱 1년6개월 터울인 오빠가 있습니다. 1월생인 제가 7살에 학교를 들어가는 바람에 1학년 차이였죠.
오빠가 바로 위에 있는데, 보아하니 집안형편이 썩 좋은 거 같지는 않고,
아버지 연금이 나온다고는 하나, 자식 둘 다 대학에 보낼 수 있는 능력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충 가방 들고 집과 학교 왔다갔다하고, 집에 돌아오면 라디오나 끼고 밤늦도록 DJ프로를 듣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학교 성적, 물론 바닥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입학 당시 반편성을 위한 지능검사에서 전교 4등이었다며, 머리 좋은 놈이 공부는 왜 이리 못하냐고 끌탕이시고,
전 그냥 한번 눈 감았다 뜨면 여고시절 3년이 다 지나가 버렸음 좋겠다, 이러고 살았습니다.
어차피 대학에는 못갈 것이고, 무슨 희망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고2때 저희집에서 사시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위독하고, 임종하시고 하는 과정에서 고모님들이 자주 드나드셨습니다.
하루는 마루에서 고모님들이랑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 얘기가 나왔던 모양입니다.
"기집애가 공부 잘하면 뭘해"
"그럼 기집애, 대학 보낼 것도 아니고.."
이러는 고모님들에게 엄마가 날카롭게 쏘아부치셨습니다.
"형님들이 무슨 상관이세요...저...이 집을 팔아서라도...혜경이 대학 보냅니다"하더니 울음을 터뜨리시더군요.
친정아버지와 엄마 나이 차이가 열살이나 되는데다가 친정아버지 늦동이막내시라서, 고모님이 비록 우리 엄마의 시누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우리 외할머니 연세이셨습니다. 물론 평소 우리 엄마, 나이차이가 많은 시누이들 매우 어려워하셨구요.
평소답지 않은 강경한 엄마의 모습에 놀란 건 저뿐 아니었습니다, 고모님들도 큰 충격을 받으셨죠.
'엄마가, 집이라도 팔아서, 나 대학 보내준댄다...' '나도 오빠처럼 대학 간다...'
엄마 때문에, 아니 엄마 덕분에, 다시 책을 붙잡았죠...그렇게 매일 날 밤을 새우다 보니, 성적..쑥쑥 오르더이다.
고3 담임선생님, 참 잔인하게도 전교석차가 나오면 성적이 왕창 오른 녀석, 왕창 떨어진 녀석 명단을 좌악 불러줬는데...
성적이 오른 녀석에 끼어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던 차에 아버지는 다시 직장을 나가시게 됐고...전 대학에 가게 됐죠.
그후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었습니다.
진짜 집 팔아서 가르치시려고 했냐고...,아버지가 직장을 못 구하셨으면, 대학 못간거 아니냐고...
엄마는 단호하셨습니다. 정말 집 팔려고 했다고. 아들은 대학 보내고, 딸은 대학 안보내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기억이, 하룻밤 밤샘에 수면에 떠오르면서, 오늘은 어찌나 엄마가 보고싶던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질금 거렸네요.
우리 엄마, 오늘 딸이 이렇게 그리워했다는 거는 모르고, 노래교실에서 신나게 노래하셨을 겁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도 고부관계만큼이나 복잡미묘합니다, 저랑 저희 친정어머니도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별 일 아닌 걸 가지고, 둘이 삐져서 며칠씩 통화를 하지 않고 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괜히 뾰족한 말로 서로의 마음을 헤집어 놓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제 맘 속에 엄마가 애잔하게 남아있는 건...엄마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s.
핸드폰으로 찍은 우리 엄마, 실물은 참 이쁜데, 별로 이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보고 싶은 마음에 사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