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남양분유와 매일분유, 그리고 기저귀 커버를 반드시 함께 사용해야하는 일자형 종이 기저귀가 고작!

울 딸 태어나서 사흘 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친정에 몸조리하러 갔다가,
3주후 저만 빠져나오고 울 딸은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됐습니다.
아, 그때는 산전산후 휴가 딱 30일이었습니다.
예정일 며칠 앞두고 휴가받았는데 아이는 안나오고...아..
먹성 좋은 우리 딸, 젖이 단 한방울도 안나오는 못난이 엄마를 둔 턱에 모유 단 한방울도 못먹어봤죠.
그래도 어찌나 잘 먹었는 지 분유통 뒤에 써있는 표준량, 즉 1회 양이나 하루 횟수 단 한번도 그대로 먹어본 적 없습니다, 거의 2배쯤 먹었죠. 물론 그 덕분에 키와 체중 역시 단 한번도 표준과 부합해본적 없습니다.
이런 아이를 친정어머니 손에 맡겨 놓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아기 먹거리 사대는 일 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뻔뻔하게도 그때 울 엄마에게 수고비도 안드렸습니다)
어머니에게 아이 이유식이나 간식까지 만들어 먹이면서 키워달라고는 할 수 없어요. 월급만 타면, 남대문 도깨비 시장을 돌면서, 분유에 섞여 먹일 세레락과 갈락티나 (요새도 이런게 있는 지 모르겠네요)사고, 거버 이유식 샀습니다. 첨엔 거버 이유식이 수입되지 않아 남대문시장에서 눈에 띄는 대로 아무 맛이나 사댔는데, 곧 정식수입이 되더군요.
이유식과 과자 등 수입식품이 수입되던 당시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백화점 수입식품코너가 순식간에 동났다고, 신문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리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거 상상도 못하시겠죠?
암튼 거버 이유식은 구할 수 있어도 거버에서 나오는 아기 주스는 암시장에만 있었어요. 아주 어렵사리 아기 주스 박스 구해서 싣고가면 울 딸 목욕 마치고 2병을 그자리에서 쭉쭉~~
또 기저귀, 팬티형 기저귀를 그냥 팜파스라고 불렀는데, 그것도 아주 귀해서 아기의 사이즈와 관계없이 닥치는대로 샀어요.
집에서는 헝겊기저귀 채우지만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외출도 자주 하셨기 때문에 팬티형 기저귀가 필요했거든요.
기저귀도 손으로 빠시라고 할 수 없어서, 세탁기 한대 사드리고 아이보리 스노우라고 세탁기용 아기 세제 사다댔죠.
사기나 어디 쉬웠나요.. 그걸 사려면 찾아 헤매야 하고, 없으면 여기저기 부탁하고....
암튼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든 하루는 회사에서 땡땡이를 쳐서 아이 물품을 조달했습니다.
별 수 없었어요, 월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리휴가를 쓸 수 있는 직장도 아니고, 시장은 낮에만 열었으니까...
거버이유식과 거버주스, 갈락티나, 세레락, 팜파스 기저귀, 아이보리 스노우 이렇게 잔뜩 사서 택시로 날랐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니가 번 돈 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것 같다" 고 하셨지만, 전 넘넘 즐거웠어요...
먹으면 먹는 대로 누에 자라듯 쑥쑥 자라던 건강한 내 딸을 보는 그 기쁨...
그때 챙긴 우리딸 혼수 제 1호입니다.
우리나라에 갓 상륙했던 거버에서 이유식 병에 붙어있는 아기 얼굴 몇장 보내주면 스푼을 주겠다고 해서 응모했던 것이에요.
이렇게 2개가 오더라구요...손잡이에 아기 얼굴 보이시죠?
울 딸 나이와 동갑인데...이렇게 멀쩡합니다. 첨엔 아무 생각없이 마구 썼는데, 이제 모셔뒀습니다. 시집갈 때 주려고...
이 숟가락으로 우리 친정어머니가 우리 지은이 이유식 떠먹였듯...저도 이 숟가락으로 제 손녀 이유식 먹일 날이 오겠죠?
가을인가요? 괜히 센티해지면서, 옛 추억에 젖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