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늘어난 수업으로 목요일 점심까지 푸짐하게 먹고 집에 오니 노곤해서 글쎄 할 일 다 젖히고
단잠부터 자고 말았습니다. 단 20분의 잠이지만 그 잠이 없다면 오후가 과연 지탱이 될까 싶을 정도로
달고 맛있는 잠이었지요.
피아노 앞에 앉으니 이상하게 점심 시간에 들었던 기러기 아빠를 두고 나머지 가족이 외국에 나가고
한 번 나가면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다닙니다.
그래서 피아노는 제게 명상의 시간을 주는 셈인데요,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하다가 잡념을 떨치고
집중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라도 갖게 되면 어느새 조용한 마음이 되고 그러면서 피아노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이 일종의 명상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답니다.

바이올린을 바로 연습하기엔 뭔가 몸이 무겁고, 아무래도 조금 놀고 싶어서 그림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을 읽는 날, 오늘 원급법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재발견이란 말이 딱 어울리게 저자는 원근법이 왜 발견이 아니라 발명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더군요.
시점의 동일성, 말하자면 시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여 한 가지 시점으로 수렴해서 대상을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원근법인데 그것은 사실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가정하고 정한 이론이란 점에서 발명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14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미술에 끼친 영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 인상주의의 그림도 사실은 색채나 빛에 관한
관심을 제외하곤 원근법을 사용해서 대상을 본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라고 저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위의 작품과 아래 작품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사람의 작업인데요, 두 사람이 피렌체의 세례당 문 공모전에서
경합을 벌였고 소문에 의하면 두 사람이 합동하여 작업하란 판결이 났다는 의견, 아니다 기베르티가 이겨서
결국 부르넬레스키가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갔고 일,이년이 아니라 거의 20년이 넘는 세월 로마에 있으면서
고대와 만나고, 그것이 그 유명한 돔의 건립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경쟁이 가능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업하게 된 것, 장인이라고 두리뭉실하게 호칭되는 중세와의
커다란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네요.

앞의 경쟁에서 이긴 기베르티에게 다시 주문이 들어와서 제작했다는 이 문은 나중에 미켈란젤로의 감탄사로
인해 천국의 문으로 명명되었다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는데 책의 도판에 이 작업중의 하나가 소개가 되고
이 경우 2점 원근법이라고, 그리고 두 가지만이 아니라 사실은 원근법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그러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이연실씨가 어라,내가 다 본 작품들인데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보았네
한탄을 하더라고요.

워낙 설명을 딱 떨어지게 잘 하는 줌마나님의 발제에 더하여 보조 설명을 할 수 있는 디자인 전공의 지혜나무님
그리고 이 해정씨의 설명까지 더해져서 아주 풍성한 수업이 되었습니다.
제 경우는 이번 겨울 여행에서 이 곳을 직접 가서 볼 수 있다는 것때문에 더 흥미가 배가되는 수업이기도
했지요.

부르넬레스키와 로마행을 함께 했고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그 중에서도 국부라고 불리던 코시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도나텔로, 그는 피렌체 르네상스에 상당한 영향력 있는 조각가가 되었지만
나중에 미켈란젤로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빛이 가려졌다고 해야 할까요?
헤롯의 연회라는 이 작품은 꼭 찾아서 보고 싶다고 마음에 꼽아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도나텔로 하면 물론 꼭 보아야 할 작품이 여럿이지만 이 작품 역시 제 안에서 오래 기억되고 있는 작품이어서
소장처가 어디인지 기록해서 가고 싶은 것중의 하나랍니다.

짧은 생애를 살다 갔으나 미술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마사초, 그런데 사실 그의 작업 특히
이 작품은 브르넬레스키와의 합작이라고 하는 설이 파다하더군요. 함께 어울렸던 두 사람은 원근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이고 그 안에서 힌트를 받았을 것은 당연하고, 아마 작업에도 간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도 있거든요.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도나텔로, 기베르티, 거기다 알베르티까지
한 시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보이던 시절의 피렌체
그곳으로의 겨울 여행이 벌써 마음속으로는 시작되고 있는 셈인데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빼고 아무리 마음속에서 계산을 해도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만큼은 여행 경험이 쌓인 셈이고, 현지에서 무엇에 예상하지 못하게 뒤통수를 맞고
변화될 것인가 그것은 미리 알 수 없단 점에서 더 기대를 하게 되는 여행의 신비가 아닐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