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고 그동안 쓴 글을 한 군데로 모으고 가끔씩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마음속이 복잡한 날,그 마음을 담아놓곤 합니다.
그런데 그저께 접속을 했을 때 보니 너무나 의외의 리플이 올라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친구에게서 부처를 쏴라라는 책을 선물받은 날,그녀에게 오강남 선생의 책을 추천한 적이 있어서
그것을 기록해놓은 것이 있었거든요.그런데 검색하시다가 그 이야기를 읽으신 모양인지
캐나다에 사는 오강남이라고,자신의 책을 추천해준 것 고맙다는 간단한 메모를 남겨두셨더군요.
얼마나 놀랍고 감사했던지 그 기분이 지금도 손에 잡힐 듯한 기분이네요.
처음으로 저자로서의 오강남교수의 책을 읽은 것은 길벗들의 대화였습니다.
지금은 표지가 바뀌었네요.그 때 놀랐던 기억,이런 글이라면 계속 따라가면서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 이후의 글들을 출간될 때마다 따라서 읽어왔지요.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도덕경에도 관심을 두고 자신의 방식으로 도덕경을 풀이해서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 책과 이현주 목사님의 도덕경,두 권의 책이 제게 도덕경을 읽는 안내서 역할을
해 주었던 기억도 새롭네요.

기독교적 배경에서 자라난 저자가 이웃종교로서의 불교를 읽은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제겐 조금 어렵다고 느껴져서 언젠가 새롭게 다시 읽어보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갖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대학시절,친한 친구들이 거의 교회에 다니는 바람에 저도 따라서 3년정도 대학부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예수,그가 지닌 부드러우면서도 혁명적인 힘에 끌려 신약성서를 읽었지만
부활한 예수,신앙고백의 대상으로서의 예수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결국
대학을 마치고는 교회와 멀어졌지만 그 때의 시간들이 몸속에 축적된 것일까요?
가끔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바람이 좋은 날 혼자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음치라서 가락도 맞지 않는
찬송가의 한 구절을 허밍으로 흥얼거리는 때도 있어서 혼자 웃곤 합니다.
피아노를 연습할 때도 간단한 멜로디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성가곡을 치게 될 때도 있어서
묘한 느낌을 받곤 하지요.
한동안은 한 달에 한 권 정도 성경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는 글들을 구해서 읽곤 했었는데 왜 완전히
그 세계로부터 떠나지도 못하고 몸담지도 못하는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에 만난
예수는 없다,제게 자유를 준 책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곤 했던 기억도 나네요.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정작 아직 저 자신은 못 읽고 있는 책인데요,다 읽으면 빌려 읽어야지 하고
책을 사지 않았는데,멀리 살고 서로 바쁘다 보니 책을 빌리려고 일부러 시간을 내긴 어려워서 미적거리던 중
다른 책들에 밀려 잊고 있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블로그에 올라온 리플로 인해 갑자기 그 때 그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이 생각나기도 하고
책이 궁금해지기도 해서요.
지금 종교를 갖고 있지만 의문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내 종교가 확고하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뭔가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들,본인은 신앙이 투철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가
주변 사람들과 마음이 부딪히고 있는 사람들.종교가 없지만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굳었던 마음에 틈새기를 내는 그런 책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는
저자,오강남 선생을 한 번 만나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