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오후 내내 두통에 시달리곤 하는데, 그렇다고 누워만 있으면 오히려 더 아프고 그럴수록 자꾸 움직여야 아픈것도 좀 덜하고 시간이 빨리가서 잘 견딜수 있곤 합니다.
그런 생각에 일을 찾아서 하느라 하루종일 부산을 떨었습니다.
오전엔 며칠전에 껍질을 벗겨둔 생강을 저며 차를 끓이고, 다시 건더기를 건져서 곱게 다져 케익을 굽고요(이렇게 한번 끓여낸 생강은 매운 맛이 많이 빠져서 케익을 만들때 쓰면 좋습니다.),
오후엔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맛이간 토마토 5개를 처리차원에서 팍팍 끓여서 토마토 소스를 만들어 두고,
다시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는 호박덩이들중 한개를 골라 손질하여 스프를 끓이고,
피자 도우를 반죽하여 발효시키고....
이러다 보니 하루가 훌쩍~ 가더라구요.

피자.
반은 얇게 썰어 그릴에 구운 청둥 호박과 채썬 양파를 토핑으로 올렸구요, 나머지 반은 그냥 토마토 소스와 치즈만 올린, 일명 마르게리타 입니다. 저 푸르딩딩한 푸성귀는 베란다에서 따온 바질 잎입니다.
소스는 연기가 나도록 달군 팬에 올리브오일 8큰술을 넣고, 다진 마늘 2큰술을 넣어 갈색으로 볶다가, 여기에 껍질 벗기고 씨를 털어 썰어둔 토마토(800그람)과 말린 오레가노 1작은술(반드시 말린 것으로. 왜인지는 몰라요. 그냥 요리책에 꼭 그리하라고 써 있더군요.)을 넣어 뭉근히 끓여줍니다. 약 5-10분 정도 중불에서 끓여 어느정도 되직하게 농도가 나면, 여기에 소금과 후추로 간합니다.
진짜 이태리식처럼 도우를 아주아주 얇게 밀어서 만들고 싶었는데...어찌하면 얇게 밀수 있을까요? 밀어도 밀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지라, 거기다가 작업대로 쓰는 도마는 너무 좁아서리...ㅜ.ㅜ;;
제가 만두피나 칼국수 얇게 미는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만, 그 방법이 어찌 피자에는 적용이 안되더군요. ㅜ.ㅜ

호박 스프입니다.
호박과 양파를 삶아서 믹서에 간 후, 우유를 조금 더 붓고 끓이다가, 소금과 후추로 간합니다.
저거 한그릇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릅니다. 저의 스프볼이 상당히 사이즈가 큰 쪽이라 절반만 담아도 만만치 않은 양이랍니다.

이렇게 저녁상입니다.
사진의 호박 피자 쪽보타 마르게리타(라고 부르자니 좀 멋쩍은...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흑! ㅠ.ㅠ) 쪽이 훨씬 맛있습니다.
신선한 바질의 맛도 상당히 즐겁구요.
지방의 어설픈 이태리 식당 표 보다는 외려 낫다고 자부합니다.

디저트로 만든 tazo님의 생강 케익.
제 입맛에 맞게 tazo님의 레시피보다는 설탕을 좀 더 넣었습니다.
이 케익은 질감이 약간 단단한 편입니다. 가루의 양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것 한쪽 먹으면 아주 든든~합니다.
디저트가 아니라 식사 대용으로도 무방할 듯.

케익 한쪽과 따뜻한 생강차 한잔.
생강차를 끓일때면 생강과 계피의 향긋한 향이 온 집안에 퍼져서 마시기 전에 코가 즐거워 집니다.
한 주전자 가득 끓여 놨으니 며칠간 즐거울듯 합니다.
...제가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는둥 그러면 오후에 어김없이 남편이 회사에서 전화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마침 일을 죽어라 찾아 하고 있다고 하면 남편은 그때부터 아주 긴장을 하지요.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남편이 퇴근을 하는 즉시, 식탁에 밥만 탁 차려주곤,
"아, 나 오늘 무진장 힘들었어. 그럼 뒷일을 부탁허이~"하곤 저는 슥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골인 하는 것이죠.
그러면, 남편은 그 때부터 아이를 먹이고, 저녁 설겆이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그런 다음 아이 목욕을 시키고, 같이 놀아주고, 재우고, 거기다가 장난감으로 엉망진창인 마루를 치우고 등등등의 모든일을 떠맡아야 하는 겁니다.
저는 내심 그런 마음의 준비를 슬쩍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에구에구...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회식이 생겼다지 뭡니까!! ㅠ.ㅠ
아쉽게도 할수 없이 이렇게 근사한 저녁을 혼자 꾸역꾸역 먹고는, 10시부터 졸립지도 않은 애 억지로 끌어안고 잤답니다. 맹순이도 못봤네요....
대신 덕분에 아침까지 푹 잔 덕에 오늘은 하루종일 날아갈듯 상쾌합니다.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아주 여유있고 긴듯합니다.
힘내서 한주를 잘 마무리 해야 하겠습니다. 아자아자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