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젊디젊은 할머니인데, 왜 제 기억 속에 할머니는 그저 전형적인 노인으로서의 할머니 모습일까요? 어쩌면 할머니 머리카락이 유난히 하얘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할머니가 해주시던 토속적인 음식의 이미지와 결부되어서 그렇게 인식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남들보다 일찍 결혼하고, 일찍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그리고 무엇이 그리 급한지 환갑도 되기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외할머니...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추떡을 먹으면 외할머니 생각이 저절로 나곤 해요.
우선 먼저 고추를 썰어두어요.
저희 할머니는 길쭉하게 세로 방향으로 썰으셨지만, 이 멕시칸 고추 (할라피뇨)는 과육이 두꺼워서 입안에서 잘 부서지라고 가로 방향으로 이렇게 썰었어요.

다음은 밀가루 반죽을 할 차례입니다.
중력분을 사용했지만 강력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반죽이 더욱 쫄깃해서 식감이 좋을 것 같으니까요.
반죽의 비율은 밀가루 두 컵에 물 한 컵, 그리고 된장을 밥숟갈로 서너개 정도 되게 넣었어요. 짠 것을 꺼리는 분이라면 된장의 양을 줄여도 괜찮아요.

반죽의 되기는 스푼으로 떠서 떨어뜨리면 아주 천천히 뚝 떨어질 정도가 좋아요. 이 정도...?
너무 질면 떡을 찔 때 퍼져버리고, 너무 되면 식은 후에 딱딱한 감이 드니까 되기 조절을 잘 해야 해요.

밀가루 된장 반죽을 고추와 섞어줍니다. 이렇게 하면 반죽을 섞을 때 고추가 부스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김이 오른 찜솥에 반죽을 떠넣습니다. 저혼자 먹으려고 만들 때는 이것보다 크게 뜨는데요, 이 날은 함께 드실 손님을 고려해서 약간 작은 크기로 만들었어요.

5분 정도 찌면 밀가루 반죽이 다 익어요. 고추는 아삭한 감이 남아있어야 맛있으니까 너무 오래 찌지 않는 것이 좋아요. 찜솥 뚜껑을 덮은 채로 보니 아련한 수증기 너머로 구수한 고추떡이 외할머니의 추억처럼 보이네요.

저희 동네에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 계시는데요, 일도 열심히 하시고 (유방암 연구하시는 과학자 랍니다) 운동도 잘 하시고 아이들도 잘 키우는 만능우먼 언니예요. 그런데 그 분의 딱 한가지 제게만 불편한 점은 채식주의자 라는 거예요. 계란도 안드시고 생선도 조개도 안드시는 분이라, 같이 밥먹자고 부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만든 음식은 그 분과 함께 나누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네요. 매운 음식을 좋아하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였지요.
혹시... 고추떡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모르셨다면 한 번 만들어서 드셔보세요.
참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