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보다 서점이 가까이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요즘 주말이면 서점에 놀러가는 재미에 빠졌다.
새로 나온 책, 베스트셀러를 들춰보기도 하고
주욱~ 제목만 훑어보다 서가 구석에서 반짝거리는 보석을 찾기도 한다.
책 구경이 백화점 구경에 뒤지지 않는 즐거움을 준다는 걸 미처 몰랐었다.
게다가 맘에 드는 책 뽑아들고 얼마든 볼 수 있으니…….
내가 가는 분당 00문고는 서점 한 가운데 커피전문점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천재토끼 차상문’ 기괴한 제목만큼이나 난해한 도입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이걸 읽어 말어’망설이게 했던 소설.
‘뭐지?’ ‘뭘 말하려고 이러는 거야?’ ‘토끼영장류는 무슨 의미지?’ 이런 의문을 품으며 읽다 빠져들었다.
태생부터 현대사의 폭력과 맞닿아 있는 차상문, 한 토끼영장류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본주의’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작가의 상상력과 사유에 어느 새 동참한다.
팽팽한 긴장으로 토끼 영장류와 출현의 비밀을 물어가던 상상력이 “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라는
명징한 문구로 실토해버린 작가의 뒷심에 맥이 풀리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이런 책은 공짜로 읽으면 안 될 것 같아 비록 다 읽은 책이지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K가 읽어도 좋고 누군가에게 선물해도 좋을 듯싶어.
주위에 있었을지 모를, 땅이 놀랄까 쿵쿵 걷지 않는 토끼영장류에게 혹여 상처준적은 없을까 되물으며.
차상문이 벌이는 행각 중
‘헉~ 하도록 슬펐으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 세 가지씩 말하기’ 같은 기발한 놀이의 유쾌함은
그 장소(룸살롱) 때문에 통쾌하기도 신선하기까지 한 덤이다.
아무래도 주말이면 서점에 놀러가는 요상한 소비 취향은 당분간 지속될듯하다.
봄이 오고 있으니 활짝 핀 벚꽃 길을 걸어 들리는 서점의 즐거움은 더 깊어지겠다.


다시 쌀쌀해졌다.
봄이 마음만큼이나 오락가락하나 보다.
두부와 콩나물을 넣고 끓인 시원하고 따뜻한 된장찌개다.
금요일 저녁 H씨가 준비한 심심한 된장찌개와 깻잎반찬에 밥이 모자랐다.



전날 된장찌개를 먹었으니 다음날은 고추장 두부찌개를 끓였다.
냉장고서 2주째 굴러다니는 콜라비는 나박하게 썰어 간장, 소금, 참기름, 고춧가루로 무쳤다.
고명으로 건포도와 잣 한줌 넣으니 달고 시원한 맛이 그만이다. 맛을 본 H씨 칭찬에 너무 춤췄나보다.
욕심을 내 향까지 보태보겠다고 허브(타임)을 뿌렸는데 상상했던 향은 어디가고 김치 군내가 났다. OTL (ㅠ.ㅠ)
뭐든 적당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아침 먹고 H씨와 공원을 걷다 서점서 본 천재토끼 차상문.
고백하건데 한번도 ‘진화의 종착지가 인간일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프레임 밖을 감히 나올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만큼 충격이었다.
이래저래 심란해지는 요즘 토끼영장류들이 번성한 세상을 상상하며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