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설거지 하며 ‘아침엔 샐러드 해야지’ 맘먹었었다.
잠자리 들기 전 ‘아침에 뭐 하려고 했었지?’ 한참을 다시 생각했었다.
5시 일어나 밥물 앉혀 올려놓고 ‘멍’ 때렸다. 1분, 5분 아니 10분이던가!
냉장고 문 열고 고구마줄기 삶아 놓은 것 보며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분명 저걸 가지고 뭘 하려고 했는데 도통 생각이 안 났다.
‘찌개는 아니고 무침이었나? 뭐였지. 괜찮은 아이디어였는데…….’
이러다 냉장고 문 열렸다는 ‘삑삑’거리는 소리에 문 닿고 김치냉장고 야채 칸 열어
아무 생각 없이 주섬주섬 손에 잡히는 대로 식재료 꺼냈다.
‘표고버섯, 새송이, 느타리, 풋고추, 파…….’ 생각났다.
일요일 장 보며 발사믹 식초를 샀다. 그 발사믹 때문에 버섯샐러드를 해야지 했었는데,
고구마줄기 넣고 발사믹 식초를 뿌린 샐러드를 생각했었는데 정신머리하곤…….
다시 냉장고 문 열어 다듬어 살짝 데쳐 놓은 고구마줄기 한 움큼 꺼냈다.
후라이팬에 올리브유 두르고 다진마늘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해 센불에 살짝 볶았다.
마늘 향이 날 쯤 불 끄고 느타리 버섯 반 움큼 쯤 넣어 여열에 함께 볶아냈다.
표고와 새송이 버섯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끓는 물에 데쳐 꼭 짰다.
소금과 깨로 조물조물 무칠 생각이었지만 고구마줄기와 느타리 볶음 간이 좀 센 듯해 버섯은 그냥 올렸다.
마지막으로 어제 밤 발사믹 식초에 재 둔 연근 몇 조각 꺼냈다.
얇게 썰어 소금물에 담갔다가 끓는 물에 넣었다 빼 발사믹 식초 자작하게 부어 잰 연근피클이다.
아삭하니 씹는 맛이 괜찮다. 물론 발사믹 향은 말할 것 없고.
고구마줄기와 느타리버섯 볶음에 각종 버섯 올리고 연근피클로 마무리 하고
발사믹 식초 좀 뿌린 내 맘대로 샐러드 완성이다.
사진 찍고 보니 고추든 과채소든 붉은 색이 좀 들어갔으면 이뻤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내 맘대로 샐러드의 이름은 ‘아쉬움’이다. ‘멍 끝의 아쉬움’이라고 할까?


#2 일요일 아침 -- 그리움, 속상해진 이야기
여름휴가 마지막 아침은 잔인했다.
한 밤중인 2시 경부터 울기 시작한 매미 소리와 열어 놓은 창으로 들려오는 차 소리는
마치 길바닥에 누워 있는 것처럼 느껴진 밤이었다.
해 뜨자 매미는 더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따갑게 들어오는 햇살은 더 이상의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달콤한 휴일의 아침잠마저 박탈당한 잔인한 휴가 마지막 아침은
덥고 모자란 잠 탓에 살짝 짜증으로 시작되었다.
말복이란다. 아무리 불 쓰기 싫어도 삼계탕은 아니라도 뭐 뜨거운 찌개라도 끓여야겠다.
김장김치 이파리 쪽으로 잘라 넣고 다시마 한 조각 띄운 냄비를 불에 올렸다.
숙주 한 봉지 씻어 한주먹은 찌개에 넣고 나머지는 끓는 물에 데쳐 나물로 무쳤다.


‘숙주’ 참 서러운 이름이다. 녹두에서 나왔으나 녹두 나물로 불리지 않으니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신세다.
게다가 녹두의 본래 성질과 아무 상관없이 변절자를 조롱하여 붙여진 이름이니 더 서러운 이름이다.
언젠가 베트남 요리에 숙주가 많이 들어가는 걸 보고
‘왜 덥고 습한 곳에서 잘 상하는 숙주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녹두는 해독 작용이 탁월한 음식이라 한다.
나는 녹두하면 녹두전 보다 죽이 먼저 생각난다.
미음처럼 곱게 간 녹두죽, 어릴 적 몇 날씩 이유 없이 앓고 나면 어머닌 꼭 녹두죽을 떠 먹여주셨다.
녹두의 해독성 때문에 어머닌 녹두죽을 해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중환자실을 정기적으로 드나들던 작은아버님 병문안을 갈 때도 꼭 녹두죽을 쑤어가셨다.
지금처럼 깐 녹두를 따로 팔지 않던 시절일 텐데,
녹두 불려 껍질 까고 믹서도 없던 시절 갈고 미음으로 내기까지 참 고단했을 음식이다.
여름이면 불 앞에서 곱게 퍼지도록 젓는 건 또 좀 고단한 일이었을까 싶다.
녹두하면 H씨 K 가졌을 때 생각이 난다.
산후까지 입덧을 한 H씨 하도 못 먹기에 아프고 기운 없을 때 어머니 해주던 녹두죽 생각이 났다.
어머니께 전화 해 ‘녹두죽 어떻게 하는 거냐?’ 물었더니
“그건 왜” 하셨고 ‘아무것도 못 먹는 것 같아 그거라도 해주려고’ 대답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혼자만 입덧 하냐! 유난은, 안 죽는다.”하며 끊어버리시더라.
참 대단한 ‘시’자 노릇하신다 생각하고 외할머니께 전화해 물었더니
“왜 얼마나 심해서? 암 것도 못 먹냐?” 하시며
“쌀가게서 깐 녹두 달라고 해라” 말씀하셔서 녹두 껍질을 깐다는 것도 배웠고
“푹푹 끓이다 쇠숟가락으로 퍼지도록 저여야 한다.” 말씀하셔서 ‘죽이 퍼진다.’는 게 뭔지 알았다.
아무튼 그날 밤 녹두죽을 할머니 말씀대로 쑤긴 쑤었으나
맛이 없어서인지 몸이 안 받아서인지 H씨 못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날 어머니 회사로 전화해. “할머니한테 전화했다며…….”하시며
“녹두죽 쒀 놨으니까 퇴근 할 때 가져가라. 이구 썩을 놈!” 하셨다. 어머니 주신 죽은 어찌했는지 기억에 없다.
아버지 돌아가셨던 해 추석 때였다. 한쪽에선 음식하고 나는 설거지를 했던가?
아무튼 “어머 어떻게 해” 하는 형수 목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숙주나물 무치던 형수, 참기름 넣는다는 게 그만 들이 붓고 말았던 거다.
“어머니 어떡하죠?” 하는 형수. “얼마나 넣었기에 저런 다냐. 마늘 좀 더 넣어라.” 하시고
곧이어 형수는 “느끼해요. 못 먹겠어요.” 한다.
옆에 있던 나, “줘 보세요.” 하며 맛을 보고 “좀 느끼한데 파 좀 더 넣으면 먹을 만하겠는데요” 했더니,
어머니 “저 썩을 놈, 얼마나 해 봤으면 느끼하다고 파 넣을 줄도 알고” 하시며 또 욕 한 바가지 하셨다.


김치와 숙주나물 넣은 찌개가 끓기 시작하자
중간불로 줄이고 버섯과 듬성듬성 썬 호박 넣고 간 맞추어 한소끔 더 끓여 냈다.
숙주나물, 찌개, 먹다 남은 깻잎 볶음, 잔멸치 볶음, 고구마줄기로 말복 아침상을 차렸다.
말복인 어제 아침상은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애틋함이다. 어머니, H씨, K,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
글을 쓰다 보니 속상해진다.
더 이상 음식 어떻게 하냐고 물어볼 어머니 안계시고
“니가 그걸 왜 물어, 썩을 놈” 하고 욕하며 가르쳐 줄 엄마가 없어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