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기억으론 밀가루 묻혀 계란 옷 입힌 호박전은 추석과 설 명절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추석 땐 생 호박전을 설에는 말린 호박전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주일이면 주먹만 하던 게 얼굴만큼 자라는 호박을 먹다먹다 건조기에 말렸었습니다.
여름이 가려는지 한밤부터 울어대던 매미 덕분에 잠도 설쳤고 더위에 지치기도 하고
H씨 출근 않는 주말이라 게으름 피며 늦잠을 즐기는데.
“밥 먹읍시다.” H씨 소리 들립니다.
“자기가 좀 하지!” 뒹굴 거리며 대답하니
“다 해놨어.” 반가운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아침을 먹는데 말린 호박전이 있습니다.

“호박 많은데 왜 말린 걸로 했어요.” 말하자
“맛이 어떤가, 그냥!” 합니다.
맛있게 먹다 말고 급히 사진 한 컷 찍고 ‘예전엔 겨울에나 먹는 말린 호박인데’ 하며
가을볕에 바짝 말린 호박, 다시 물에 물리고 갖은 양념에 재 놓았다 무쳐도 주고 볶아도 주던
어머니 손맛이 그리워 ‘올핸 호박이나 잔뜩 말려야겠다.’ 하고 있는데.
“밥 먹고 우리 서울 가요. 광화문 광장도 가고 인사동도 가고 차도 마시고…….”
H씨 말합니다. “나야 좋지. 그런데 K는? 피카디리서 영화도 볼까.” 하니
“얘야 학원 갔다 독서실 가면 되고 피카디리 극장 아직도 있나?”
“아마 있을 걸” 하는 대화가 오고가는데
밥 먹던 K “엄마 왜 영화관을 극장이라고 해” 묻습니다.
순간 잠시 멍하던 나
“예전엔 영화관이 영화만 상영한 게 아니라 공연도 했거든 그래서 다 극장이라고 했어.”
“무슨공연?”
“나훈아 리싸이틀 같은 거”
대답해주고 보니 세대 차이는 영화관과 극장이란 단어에서도 나는 구나 싶었습니다.
영화관과 극장을 동일시하는 내가 이상한건가 이걸 분리하는 K가 이상한건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부지런히 아침 먹고 치우고 학원가는 딸내미 따라 집나와 서울 광화문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앞선 승객 덕분에 부부 따로 앉았고 마땅히 할 일도 없기에 눈 감고 있으니
자동차 에어컨 바람에 잠이 스르르 들었습니다. 30여 분 만에 H씨 깨워 눈을 뜨니 종각입니다.
집에서 출발할 땐 멀쩡했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소나긴지 뭔지 모를, 한바탕 퍼붓다 멈췄다하는 비속을 H씨 양산 같이 쓰고
인사동 골목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참 많이 변했습니다. 간혹 인사동은 가본 적 있지만 갈 때마다 낯섭니다.
‘밥은 굶어도 차는 마셔야 한다.’고 연애시절 들락거렸던 ‘경인화랑’서 오랜만에 차도 한 잔 마시고
옛날 얘기, 아이 얘기하다 관광객 사진도 찍어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경인화랑 마당, 예전엔 연못이 있었던듯 한데.... 낙숫물과 툇마루는 정겹다>
말만 들었지 가본 적 없는 광화문 광장에 가니 아마 옛 세종문화회관 앞 지하차도를 이용해 만든 것 같은
세종이야기와 충무공이야기 관은 그나마 부수고 새로 짓는 짓 하지 않아 좀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중앙통로에서 쏟아지는 비 구경하며,
“고등학교 때 이 뒤 골목길에 냉면집 많이 갔는데…….” H씨 말에
“냉면 먹을까.” 하며 골목길 찾아가는데 길도 변하고 건물도 변하고 가게도 바뀌고 못 찾겠습니다.
무엇보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기에 그냥 눈에 띄는 ‘할머니국수’ 집이란 곳에 들어가
비빔국수와 따뜻한 국수, 김밥 시켜놓고 점심 먹으며 젖은 옷 좀 말렸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중앙통로, 계단위 풍경. 빗속에 코끼리가 흐릿하니 곧 사라질 듯 보인다>
사실 비 그치길 기다리며 김치전에 막걸리 한잔이 간절했으나
“낮부터 무슨 술이냐!”는 H씨 퉁박과 혼자 먹는 술 맛 없을 것 같아 참았습니다.
비 그치고 청계천 따라 좀 걷다 피카디리극장에서 영화보기는 포기하고
명동서 버스타고 집에 오니 오후 3시가 넘었습니다.
이상은 여름휴가 말미 심심한 중년부부의 토요일 데이트 였습니다.
딸 점심은 ‘나 몰라라’하고 나갔다 집에 오니 K는 엄마 아빠 있을 땐 못 먹던 피자 시켜 먹고 있더군요.



<인사동 쌈지길>
<쌈지길 계단참에서 바라본 풍경 '우리나라 만세'라는 음식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만세라!!!!!????????????>
<낙서한 까만 벽과 빗속 인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