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결과에 만족하든 아쉬워하든 선거는 끝났습니다.
달콤한 휴일을 즐기셨든, 나름 권리를 행사하셨든, 휴일은커녕 동동거리며 일하고 투표까지 하셨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무튼 저마다의 일상을 담고 눈부신 한 낮의 꿈처럼 간, 6월 2일은 이제 어제입니다.
화요일, H씨 ‘몸이 안 좋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체 했는지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설쳤다.’며 ‘일찍 올 수 있냐?’ 묻더군요. ‘약속이 있어 좀 힘들겠다.’ 했습니다. 이런 경우 열 일 제치고 집에 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이상하게 아플 때 옆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상 반성은 하지만 그 반성은 어린 시절 반성문 보다 못한 경우가 많지요.
뭐 약속이라는 게 별건 아닙니다. ‘술’ 먹는 일이지요.
중간에 전화하니 ‘괜찮은 것 같다.’ 하더군요. 그러다 결국 “술 잔뜩 먹고 들어오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괜찮으면 됐지”하고 볼멘소리로 답하고 아침 준비했습니다.
딱 한 숟가락쯤 솥에 밥이 있더군요. 누룽지를 죽처럼 좀 되직하게 끓이려 합니다. 한 술 밥 있는 솥에 누룽지 넣었습니다. 물 넣고 물이 졸아질 때까지 팍팍 끓입니다.

누룽지 끓는 동안 우뭇가사리 무쳤습니다. 혹 입맛 없다 못 먹을까봐 시금치 국도 준비했습니다. 소화에 부담 없는 된장국물이라도 마시라고요.
꽈리고추 조림, 콩 햄 등 먹다 남은 반찬들 꺼내 차린 아침상입니다.
누룽지는 일부러 뒤적이며 좀 치댔습니다. 고소해지라고요. 참기름 넣을까 하다 그냥 깨만 조금 얹었습니다.

아침 먹고 텃밭에 갔다 왔습니다. 여름 상추 씨 뿌렸습니다.
점심엔 샌드위치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2박 3일 일정으로 수련회 갔다 돌아오는 날입니다.
좀 웃기는 학교입니다. 휴일인 선거일을 끼어 수련회 일정을 잡았더군요.
私기업에서도 ‘선거일’ 대체휴무가 쉽지 않을 텐데. 개념이 없는 건지 아이들 하루라도 더 공부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인지 아무튼 좀 용감한 학교입니다.
반쪽짜리 단호박 굴러다니는 게 눈에 거슬렸는데 드디어 해치웠습니다.
쪄낸 단호박은 마요네즈와 버무리고 파프리카 맛 나는 ‘당조’라는 고추와 상추까지 얹으니 그럭저럭 모양도 납니다.

좀 늦은 점심을 커피에 샌드위치로 먹고 투표하러 갔습니다. 10여년만의 투표입니다. 20분쯤 줄 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H씨 “줄 서긴 처음이네, 투표율 높을 모양이네.” 합니다. 투표소가기 전에 선거공보물 한 번 훑어보았습니다. 참 후보 많더군요. “교육의원은 당도 없고 이거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가네.” 라고 하는 H씨와 둘이 파란색 공보물 부터 골라내고 남은 것 중 ‘무상급식’이 공약에 있나 확인하는 것으로 투표준비를 했습니다.
투표 마치고 나온 학교 운동장, 참 좋습니다. 6월의 빛은 5월과 또 다릅니다. 5월이 여린 순의 색이라면 6월은 하루 볕만큼씩 색이 짙어집니다. 그렇게 짙어지고 있는 가로수 길을 둘이 잠시 걸었습니다.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기도 했고요.
우리 일상은 하루 볕만큼씩 짙어지는데 선거 결과가 부여하는 정치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얼핏 비바람과 햇빛에 영향을 무지 받는 다이나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지막 잎새’처럼 가짜인 경우가 많더군요.
수많은 김씨, 이씨, 박씨님들……. 디씨님까지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